할머니가 95세의 나이로 미국에서 생을 마감하셨어요.
저도 장례식장에 갔었죠.
할머니는 이북에서 넘어오신 분이었고
한국에서는 성수동 골목의 작은 집(화장실도 밖에 있는)에 혼자 사셨는데
늘 웃고 계시고
손주들 가면 뭐 하나라도 더 해먹이려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분이었어요
음식도 잘하시고
공원 나가서 친구들과 운동하시며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내던 모습이 기억나요
기독교 신자셨는데 365일 새벽기도를 다니셔서
볼이 찬바람에 홍조가 있을 정도였고
자다 깨서 할머니 보면 늘 엎드려서 기도하고 계셨어요
작은 일에 기뻐하고 웃으시고
없는 돈 모아서 아들이랑 손주들 주시고
광고지 하나, 볼펜심 하나 허투르 쓰시지 않으셨죠.
그러면서도 얼마나 멋장이신지..곱게 하고 다니셨어요.
할머니랑 놀 때 할머니가 보자기를 솜씨 좋게 접어서 쥐도 만들어서 슝~ 날려주시고
(아직도 신기함 손바닥위에서 슉 하고 움직임)
우리가 티비를 보든 하루종일 만화방에서 살든
늘 아무 잔소리 없이 먹을 것만 챙겨주시고 그러셨어요
덕분에 할머니 댁 며칠 가 있으면 힐링 되는 기분이었어요
우리 첫애가 말도 못하게 낯을 가리는 아이였는데
1-2살 무렵 할머니(제 아이에게는 증조할머니죠)와 처음 만났을 때 한번에 안다가가시고
옆에 툭 앉아서 딴데 보며
장난감 하나씩 아이쪽으로 쓰윽 밀어넣으시다가
서서히 다가가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니
어느새 아이도 할머니랑 놀고 있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절대 그런 아이가 아니거든요.전무후무해요.
미국에서 한 30년 가까이 노년 보내시다가 돌아가셨는데
거기서도 늘 운동하시고 이웃들과 즐겁게 지내셨어요
끝에 10년 정도에는 노환으로 치매가 오셨는데
얼마나 얌전하신지...아들도 못알아보면서
제가 우리 아이들 데리고 갔더니
그 와중에도 애들보고 '누구지..아이 예쁘다 예쁘다' 하시고
치매인데도 해코지 한 번 없이 조용히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는 영상을 보았는데
심지어 유언이 '예뻐,, 졸려' 이더라고요.
저의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며느리인 우리 엄마가 미울텐데도
저한테 전화해서
예수님이 우리 죄 위해서 돌아가셨는데
나는 (우리 아들 피눈물 나게 한 ) 너희 엄마 용서했다..하시더군요.
할머니가 남기신 낡은 성경 찬송가 두 권
싸구려 옥가락지 한 개.
유물은 그게 전부인데
할머니는 저에게 사랑을 남겨주셨어요.
미국에서 있었던 장례식장에서 작은 아빠가 하신 말씀
'어머니는 사랑이셨습니다'
아빠도 할머니에 대해 말씀하실 때
'천사같은 분'...
할머니는 성공한 인생을 사셨어요.
오늘 할머니 냄새가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