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오월 찬가, 두 편

snowmelt 조회수 : 765
작성일 : 2018-05-01 15:49:19
오월




-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은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


푸른 오월

- 노천명

청자(靑瓷)빛 하늘이
육모정(六角亭)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正午)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 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 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딴 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 냄새가 물큰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납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IP : 125.181.xxx.34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계절의여왕
    '18.5.1 3:53 PM (221.147.xxx.221)

    오월에 대한 아름다운 시 ~ ~
    감사합니다

  • 2. 안나파체스
    '18.5.1 5:21 PM (49.143.xxx.131)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솟네 왜 찔렀지? 왜 쏘았지? 트럭에 싣고 어딜갔지..

  • 3. snowmelt
    '18.5.1 6:34 PM (125.181.xxx.34)

    찾아보니 5월을 노래한 시가 참 많네요.
    그 중 다른 분위기의 시가 있어 공유합니다.

    ---

    五月의 나무

    - 황금찬

    5월은 저 푸른색으로 찬란하게 단장을 하고
    식장으로 나가는 신부처럼 6월을 향하여 걸어오고 있다.

    누가 신록을 5월이라 했느냐.
    한 마리 산새가 날아간 자리에
    그만한 부피로 푸른 구름이 쌓이고
    물소리가 흘러간 귓가에도
    5월의 흔적이 수놓여 있다.

    5월이 오면 자라가는 그 생명의 파도 속에서
    어제를 잃고 서 있는 이 병든 나무를 바라볼 때
    지금이 5월이기에 처량함이 이리도 큰 것일까?

    약동하는 생명의 5월은 태양이러니
    그러나 5월에도 잎이 없는 나무는
    아! 차라리 10월보다 외롭구나.

    본래 5월을 모르는 가련한 나무는 없었다.
    세월이 마련한 고독이란 열매가
    연륜과 함께 가지에 안개처럼 감겨 올 때
    나무는 5월의 대열에서 추방되어
    5월에 섰으면서도 5월을 저리도 멀리하고 있다.
    5월은 영롱한 종소리를 울리며 오지만
    병든 나무에겐 성모의 손끝 같은 구원도 없구나.
    언제부터 나도 이 병든 나무의 대열 속에 섰는지 모른다.

    하루 해가 질 무렵이면 가벼운 주머니로 주막을 찾아
    한 잔의 탁수(水)로 목을 축이고
    허청허청 돌아가는 대열 속에 나도 서 있다.

  • 4. 멋져요.
    '18.5.1 9:51 PM (180.229.xxx.38)

    오월을 노래한 글에 취해서
    글을 읽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812498 5.18 추념식 보고 난 소회 4 유채꽃 2018/05/18 1,394
812497 라메종 볼륨 스프레이 써보신분 1 후기조언 2018/05/18 4,227
812496 읍이와 경필이의 운명 10 경기재보선가.. 2018/05/18 1,156
812495 경기도지사까지만...그래..대통령까지만.. 20 무말랭이. 2018/05/18 1,643
812494 90년대 모델하면 떠오르는 그녀들 9 .... 2018/05/18 2,764
812493 문과 입시 논술에 관해 20 barrio.. 2018/05/18 2,297
812492 월세 재계약시 계약서 2 ㅡㅡㅡ 2018/05/18 1,766
812491 거실에 가족사진 걸어놓으신 분 7 사진 2018/05/18 3,043
812490 더위많이 안타고 추위잘타는데 실링팬 어떨까요? 4 사과 2018/05/18 1,202
812489 룸쌀롱 과일 남편 글은 또 여기저기서 퍼갔네요 5 ㅇㅇ 2018/05/18 3,168
812488 예쁜 샌들 찾아요)발사이즈 255~260입니다. 4 신발 2018/05/18 1,331
812487 부족함 없이 키우면 아이 장래가 어떨까요? 17 ... 2018/05/18 4,469
812486 신랑이나한테 가슴은크면서 맘은쫌팽이라고 8 ar 2018/05/18 2,838
812485 정말 살고 싶은 아파트 있나요? 12 ... 2018/05/18 4,887
812484 이문동이 직장인데 아파트 추천좀부탁드립니다 3 --- 2018/05/18 1,317
812483 옥션 구매확정 안하면 정산 기간이 몇달 걸리나요? 26 .. 2018/05/18 5,884
812482 엄마가 자유한국당 후보를 만나셨을때 12 iu 2018/05/18 2,517
812481 다이어트에 관련된 내용의 책인데요... 2 책 좀 찾아.. 2018/05/18 1,115
812480 관사 잘 아시는 분 5 절실하다 2018/05/18 924
812479 청소기 먼지봉투가 좋을까요? 먼지통이 좋을까요? 7 비비 2018/05/18 1,742
812478 만 86세 현역 최고령 모델.jpg 12 ..... 2018/05/18 6,729
812477 텔레비전 사고 소파 붙박이 됐어요 3 월드컵 2018/05/18 1,500
812476 바나나 우유 만들때 3 ... 2018/05/18 1,368
812475 헬스할 때 신기 적합한 운동화 추천해주세요~ 4 .... 2018/05/18 1,811
812474 급질입니다. 종합소득세와 관련입니다 9 북한산 2018/05/18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