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20대 중반인 할아버지가 4, 3 사건으로 총살당하였습니다.
당시 3세였던 우리 아빠는 그 아래로 간난 동생 둘.
자녀 셋을 둔 엄마가 돈을 벌어오는 일은, 지금도 그렇지만 너무 어려운 일.
고모와 삼촌은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했고,
아버지는 중학교만 겨우 졸업할 뻔했는데, 공부를 너무 잘해서 주변 친척들이 도와
고등학교까지 다니게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빚쟁이들 피해 할머니가 도망가 있는 일이 잦았고요.
그럴 때는 돌보는 어른 없이 굶는 일도 잦았다고 해요.
아빠, 고모, 삼촌 모두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를 부모 부재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군입대를 했고
군대에서 훈련 받고도 밤에 후레쉬를 켜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제대 후에 시험 응시해서 바로 합격했고요.
검정고시로나마 삼촌 졸업시키고 공부시켰습니다.
삼촌도 머리는 좋았기 때문에 검찰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서
서울까지 와서 면접 시험까지 보았는데, 신원 조회에서 탈락했습니다.
아버지가 4, 3 사건 희생자라는 이유 때문에요.
그래서 제주도로 다시 내려와 우리 아빠처럼 지방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들 돌보고, 군 제대하고 나서는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어
가족들을 부양하고, 이런 게 아빠의 삶이었습니다.
우리집은 가난했지만 점점 형편이 좋아지긴 했고요.
아빠는 부모 부재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정에서 아빠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이 '책임감'만으로 달려 온 삶이었기 때문에
자녀들에게도 역시 그러기를 원했지요. 그다지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살해한 것이 나의 조국이었는데,
이제 세상이 바뀌어 잊혀진 할아버지의 이름을 기억해 준다고 합니다.
제 나이가 이제 마흔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할아버지,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그리고 아빠,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