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다니고 있는 직장맘입니다.
아이가 두 살 때부터 시부모님과 같이 살았습니다.
지방에 사시면서 전화 하면 늘 아프다, 돈 없다. 가게 하고 있는데 가게세도 못 내고 열 달치 밀려 있다 등
소리 하시는 거 들으면서 남편이 외아들이라 어차피 언젠가 같이 살게 될 거 그냥 다 정리하고 올라오셔서
아이라도 돌봐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두 분은 그야말로 빈털터리로 올라오셨구요.
22년을 같이 살았는데 단독주택 위 아래층에 살면서 제가 직장에 다니니까 하루종일 부딪치는 건 아니지만
같이 산다는 게 늘 머리 위에 돌덩이 하나 얹고 사는 기분이었습니다.
시어머님과 저는 성격이 너무 다른 스타일이라 스트레스 받은 거는 길게 말씀드리기 그렇고 그래도 그냥그냥
겉으로 평온하게 잘 지냈습니다. 시어머님도 저와 생활하시면서 많은 걸 참고 사셨겠지만 같이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한번 부딪친 적이 있는데 그 분풀이를 모두 아이에게 쏟아내시는 걸 보고 제가 살면서 두 번 다시 죽어도
부딪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갈등 상황을 피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몇 년 전부터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어요.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겹쳐서 그런 것 같은데
공황장애 같은 증상이 나타났어요. 여러 번 응급실 갔다가 신체적으로 별 문제는 없으니 신경정신과 가 보라는
진단을 받았고, 한의원에서 화병이라고 해서 약을 오래 먹고 많이 좋아졌어요.
어찌어찌 시부모님과 몇 달 전에 분가를 했는데 시아버님은 치매 증세가 있으시고 시어머님이 미끄러지셔서
골절이 되시는 바람에 한 달 넘게 우리 부부가 회사생활과 병간호로 정말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고 지금은 두 분을
같은 요양병원에 모시게 됐어요.
문제는 22년을 버티고 표면적으로 잘 지내 왔는데 제가 정말 이상하게도 병원에 가기가 싫은 거예요.
저도 이제는 제가 원하지 않는 거는 하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는지 당분간은 그 마음대로 살고 싶더군요.
그래서 지금 두 달여 동안 병원에 안 가고 있어요. 남편은 매일 전화드리고 자주 찾아 뵙고 있지만요.
다시 가기는 가봐야 할 텐데라는 마음은 있는데 아직은 안 가고 싶네요. 그동안 착한 여자 컴플렉스로 너무 참고 살다가
오히려 순식간에 악녀로 변해 버린 느낌이에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하면서 시간이 흘러가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