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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 많이 보세요 : 2018 아카데미 후보 지명작 순례 (9)

... 조회수 : 1,968
작성일 : 2018-03-23 13:26:06
그저께 8번글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으려고 했는데, 어제 한편을 보고 다시 한번 뽐뿌 불끈하여 한편 더 씁니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 관람을 계획하신 분은 다음으로 진행하는 것을 신중하게 고려하세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저희 동네에 괴짜 서점 사장님이 한분 계십니다.
요새 같은 세상에 책팔아 돈 얼마 남는다고 희안한 사업을 벌이셨답니다.
압구정, 강변, 건대, 홍대, 광화문에나 가야 볼 수 있다던 예술영화,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만드셨습니다.
장사 안되서 방뺀 패밀리 레스토랑 자리를 덥썩 잡아서 50여석 남짓한 소규모 영화관, 아주 소박한 갤러리, 한구석 책방, 세미나실, 작은 공연무대, 카페까지 몽조리 한군데 모아서 복합문화공간을 만드셨습니다. 서울시내 끄트머리 베드타운 동네에...
여기 생기고 나서 영화보러 '시내' 나가는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보고 싶은 영화는 서울시내를 전부 훓어야 내게 맞는 시간을 찾을 수 있어서 힘들긴 하지만 집앞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선택지가 하나 생긴 건 참 감사한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관객이 절반이상 든 적이 없고, 심지어 달랑 3명이 본 적도 있을 만큼 안스럽기 짝이 없는 상태라 늘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극장입니다.

어제 퇴근 후, 슬렁슬렁 극장에 갔더니, 이게 웬일...
평일 저녁에 자리가 만석이더랍니다. 
달랑 두 자리 남은 걸 좌석 선택의 여지 없이 허겁지겁 제가 하나 줏어가고 제 뒤에 서계시던 분이 '헉' 소리를 내면서 잽싸게 구입하시더라구요. 전광판에 바로 '매진' 이라는 빨간 단어가 반짝반짝... 
표 판매하시는 분이 '이 영화가 인기라서요....' 이러는데 참으로 납득이 안되더이다.
이 영화가 이렇게 인기가 있을 소재가 절대 아니거든요.

아무튼 10여분을 기다려 난생처음 만석인 극장에 쭈그리고 앉아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의 최고 파격은 이 작품을 작품상 후보에 올린게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각색상에 그쳤지만, 이 작품이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그간의 보수성에서 빠져나와 진보적인 생각을 받아 들인게 아닐까 싶더라구요.
'쓰리 빌보드'도 참 파격이었지만, 이 작품의 파격에 비할 게 아닌 듯 싶네요.

이제와 생각하면 작품상을 '셰이프 오브 워터'에게 안긴 것은 후보작 가운데 그나마 가장 보수적인, 아카데미 회원 취향에 부합하는 선택이었구나 싶네요. 아직은 변화의 바람 정도만 알린 것이겠지만, '쓰리 빌보드'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비슷한 반열에 올린 자체도 한걸음, 아니 다섯걸음 이상 변화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대와 우려가 반반쯤이었던 제임스 아이보리의 각색은 눈물날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아흔 노인네가 아무리 거장 감독이었더라도, 젊은 시절에 동성애에 너그러운 전향적인 성향이었다 할지라도 그 시대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현재는 올드한 구닥다리 할배 시선일 것이고 그렇다면 실망스럽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동성애는 지지하고 반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개인의 취향을 뿐이죠.
그 시기에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대상이 보통은 이성이지만, 가끔은, 누군가는 동성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일 뿐.... 
가르치려는 의도도, 우기고 주장하려는 의도도, 심지어 '미화'하려는 의도 없이 그저 한 10대 소년 시절의 빛났던 사랑, 이별 그리고 극복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립니다.

영화가 흐르는 내내 나도모르게 미소를 띄며 봤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주인공 엘리오와 아버지의 대화는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아버지의 주옥같은 대사는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어요.
진심으로 이 장면을 추천하고 권하고 싶어요.
상처를 제대로 수습하지못하고 마음에 큰 흉터를 갖고 감추며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어른들에게도 어울리는 말이거든요.

이 영화는 퀴어 영화일까요? 남성끼리 사랑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요?
10대 남녀로, 아니 성인 남녀로 주인공을 치환해도 아무 무리없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전체를 반짝반짝하게 빛내던 이탈리아의 그 눈부신 햇살같았던 그 빛나는 시절의 추억...

제임스 아이보리의 각색이 빛나게 보였던 이유가 아마도 여기 있지 않나 싶습니다.

두 남자 주인공이 정말 비주얼이 끝내줍니다.
이쁩니다.
그런데 그 이쁜 것이 참 슬픕니다.
아무리 세상이 전향적이고 동성애에 관대해졌다고는 하나 무차별적인 배척이나 거부감을 심적으로 완전히 극복하기는 어려웠나 봅니다.
이 두 주인공은 그리스 신화나 미술품에 나오는 신처럼 생겼습니다.
특히 엘리오 역할의 배우는 큐피드를 바로 연상시킵니다
올리버 역할의 배우는 아폴론이나 마르스처럼 건장하게 멋있습니다.
의도적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 두 인물은 실존하는 인간이 아니라 실재하지 않는 신화속의 존재들, 고미술속에서 이상적으로만 존재하는 인물들같은 비현실적인 사람처럼 보입니다.
다른 등장인물 가운데 유독 이 두 인물만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때마침 주인공의 직업적 배경이 고고학이라 첫장면부터 그리스 고미술 작품들이 줄줄이 보여집니다.

제게는 이렇게 이쁜 두 사람의 사랑은 아직도 현실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비현실적인 것을 암시하는 것같아서 슬프게 느껴지더이다. 감독이나 제작자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요? 각색자의 의도였을까요? 아무튼...

동성애라면 거부감있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영화는 그 안에 한정지어 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거부감이 없는 분이라면 시간되시면 한번 보세요.
아깝지 않은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 작품상 주고 싶습니다.
IP : 220.116.xxx.252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8.3.23 1:28 PM (119.207.xxx.31) - 삭제된댓글

    왓차 감상평 보세요
    짤지만 굵은 한줄 평


    남주 얼굴이 개연성이다 ㅋㅋㅋ

  • 2. ...
    '18.3.23 1:30 PM (39.121.xxx.103)

    제가 그런 작은 영화관 가지는게 꿈인데...
    오래된 추억의 영화들...독립영화들..
    한번씩 어떤 배우..어떤 감옥 주간 만들서
    그 사람들 영화만 1주일 내내 상영하고...
    관객 적일땐 같이 밥도 먹고^^

  • 3. ^^
    '18.3.23 1:32 PM (14.43.xxx.66)

    파이팅^^
    원글님 쓴글 타입 너무 좋아서 댓글로ᆢᆢ
    그 복합공간 만드셨다는 분? 정말 대단하셔요
    가까우면 꼭 가보련만ᆢ^^
    맘묵고 펼치신 일 승승장구ᆢ하시길

  • 4. 윗님
    '18.3.23 1:34 PM (221.139.xxx.127)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 5. ㅇㅇ
    '18.3.23 1:34 PM (175.223.xxx.137)

    제임스 아이보리가 동성애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 6. 더숲
    '18.3.23 1:35 PM (59.5.xxx.223)

    헐 삼점님. 같은 동네 사시나봐요.
    더숲 말씀하시는거죠?
    저는 근처 초등학교에서 엄마들 동아리에서
    영화관람을 잡아서 거기에 처음 갔는데
    갔다가 감동먹었어요.
    영화가 너무 좋아서 정말...
    다시 태어나도 우리...보러 가서 얼마나 울었는지...
    그리고 그 공간 생기기까지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 몰랐어요.

    주말에는 콜미나 보러가볼꺼봐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7. ...
    '18.3.23 1:50 PM (220.116.xxx.252)

    ;;;;;님, 저는 남의 감상평에 별로 관심을 안 둡니다.
    어떤 분에게는 개연성이 없어보이는 스토리일 수 있지요.
    다만,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그것과 상관없이 생각해 볼 필요는 있죠.
    그런 평을 하는 분이 계셔서 감독이 잘 생긴 남주를 뽑아야 했나봅니다.

    점셋님, 웃는 눈썹님, 윗님님, 은근히 그런 로망이 있는 분들이 계시군요?
    그럼 그 사장님은 성공한 덕후? ㅎㅎㅎ
    암튼 어디 인터뷰를 보니 계속 적자라고는 하더라구요. 제가 봐도 적자일 수 밖에 없어 보여서 없어질까봐 불안불안하긴 해요

    ㅇㅇ님, 그렇군요.
    그렇지만 제임스 아이보리의 성적 취향을 알고 모르고 와는 별개로 이 영화는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의 성적 취향이 소재를 고르는데는 영향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보편타당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는 별 상관은 없어 보이는군요.

    더숲님, 그렇게 콕 찍어 맞추시니까 민망하네요.
    극장 안 없어지게 열심히 다녀 주세요

  • 8. ^^
    '18.3.23 1:53 PM (220.116.xxx.34)

    이 영화는 패스 하려구 했는데 원글님 덕분에 꼭 보는 것으로...

  • 9. 308동
    '18.3.23 2:07 PM (211.196.xxx.178)

    꼭 봐야 하겠네요...감사합니다^^

  • 10. 엘리오
    '18.3.23 2:25 PM (14.43.xxx.51) - 삭제된댓글

    방금전 10시 조조보고 들어왔어요.150석에 20명정도 1명의 남자관객말고는 다 여자관객들이 더구나 다 혼자였어요..세이프오브 워터도 거의 비슷했구요.
    고고학과 큐피트.마르스? 필연적인 소재였고...
    엄마 나 좀 데리러 와주면 안돼? 에서 아직 저렇게 애인데 싶었어요.
    시리즈 영화추천 감사드려요.

  • 11. ㅇㅇ
    '18.3.23 2:31 PM (175.223.xxx.56)

    보고나서 조금은 가슴이 아팠고
    한켠 따뜻해지던 영화였습니다.
    코발트색 하늘을 배경으로 등을 맞대고
    뒷목을 비낀 포스터가 얼마나 예쁘고 멋지던지
    슬쩍 가져다가 바탕화면으로 두었습니다.

  • 12. 콜미바이유어동네서점
    '18.3.23 3:27 PM (221.138.xxx.73)

    어느동네인지말해주세염제발부러워죽어여

  • 13. 아이딸리아
    '18.3.23 5:32 PM (112.161.xxx.40)

    개인적으로 셰이프 오브 워터 보다는 이 작품이 더 많은 여운을 남겼어요.
    엘리오 역을 한 티모시 샬라메는 남우주연상을 받아도 괜찮았을텐데 싶을만큼 연기가 좋았어요.
    특히 크레딧 올라갈 때의 그 눈빛이 참 뭐라고 정리가 안 되는 ~~~^^

    이 영화에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올리버가 엘리오에 비해 나이가 너무 많다는 거였어요.
    영화가 조금만 밸런스를 잃었더라면 아동성애자에 대한 영화가 될 수도 있을 만큼 아슬아슬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풋풋한 엘리오의 사랑을 끌어내기 위해서 올리버가 조금 더 어렸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엔딩 부근의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도 참 무섭게 심오(?)하더군요.
    저처럼 듬성듬성 읽어내는 사람은 절반 알아들은 것 같아서 한번 더 보려구요.

    어쨌든, 막바지까지 원글님이 이해하신 것처럼 그냥 두 젊은이 사이의 사랑과 이별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받아들일 뻔 했는데 엔딩 부근의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감독이 친절하게 이 영화는 그냥 사랑 이야기가 아닌 동성애에 대한 영화라고 정리를 해주어서 저는 이 영화는 퀴어 영화가 맞는 걸로 결론내렸습니다. ^^

    이 영화는 원글님의 소개가 없었더라면 안 봤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 14. ...
    '18.3.23 6:08 PM (220.116.xxx.252)

    아이딸리아님, 보셨군요.
    맞아요, 엔딩 크레딧에서의 엘리오의 눈빛은 정말.... 저도 표현하기 힘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님 말씀처럼 올리버 나이가 좀 많은 느낌이네요.
    올리버랑 엘리오랑이 짝꿍 맞는지 영화보면서 한참 헤메다가 다른 인물을 찾고 있기도 했어요. ㅎㅎㅎ
    영화 보기 전에는 나이가 엇비슷한 친구정도 되나 했는데, 설정상으로 올리버가 24살, 엘리오가 17살이었다네요. 무려 7살 차이니... 그런데 올리버 배우를 24살로 보기에도 나이는 좀 많아 보이긴 하네요.

    위에 엘리오님이 말씀하신 '엄마 나 데리러 오면 안돼?'라고 전화하고 막 울어대던 대목에서 이런 엄마라서 그래도 위로가 되겠다 싶었다가 아빠와의 대화에서... ㅠㅠ
    이 상처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다음 사람이 마음에 들어올 수 있는 여백을 가질 수 없다고 했나?
    저도 제대로 기억이 안나서 다시 봐야할 것 같은데, 그 대목에서 울컥했어요.
    저는 나중에 그 여백에 다시 들어올 사람이 꼭 남자는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엘리오 아빠처럼...
    그래서 아이딸리아님과는 달리 퀴어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나봐요.

    즐겁게 보셨다니 제가 다 감사하네요.

    ㅇㅇ님처럼 포스터가 맘에 들긴 하지만, 전 아직 버티고 있는 바탕화면을 바꾸지는 않았답니다. ㅎㅎㅎ

    웃는 눈썹님과 308동님도 즐겁게 감상하게 되시길...

  • 15. 보리
    '18.3.24 12:39 AM (180.224.xxx.186)

    볼까말까 몇번을 고민하다가 시부적~보러갔는데,
    이틀동안 허우적거리고 있네요ㅠ.ㅠ

    아...퀴어영화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라서
    너무 아름답고 절절했어요..

    거기다 아름다운 이태리 마을풍경에 음악에..
    보는내내 너무 행복해서 영화가 계속계속 되면
    좋겠다..생각했어요..
    그냥 다 좋았어요.. 전부....또 보러갈래요~~♡

  • 16. 원글님
    '18.3.26 4:42 PM (1.210.xxx.133)

    덕분에 모르고있다 보게됐어요.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엘리오 얼굴은 다비드를 연상시키더라고요. 눈부신 이태리 시골풍경과 한적한 생활 아름디운 사랑... 영화는 환상일수 있지만 아버지의 대사가 이게 현실에 가능함을 보여주죠. 엘리오의 마지막 장면과 연기도 좋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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