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가 발생한 동시에 피해 사실을 즉각 깨닫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많은 경우, 피해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똑바로 인지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받는 일은 지난하며 그에 더해 성폭력 피해자라는 정체성이 개인의 다른 많은 정체성을 폭력적으로 위협하는 구조까지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피해 사실을 인정받지 못하면 꽃뱀이 되고, 그 모든 어려움을 뚫고 피해 사실을 인정받으면 피해자 정체성만 남고 다른 모든 가능성이 지워질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끝없이 꽃뱀이라는 의혹에 찬 시선을 받거나 아니면 티끌없이 환영받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생은 끝장나고 가련한 피해자로서의 정체성만 간신히 남겨져 힘을 잃거나 정신적 문제를 안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하게 살아남는 삶. 여성들에게 이것은 피해 사실에 더해 거대한 짐으로 공포로 다가온다. 그래서 어떤 여성들은 피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나도 원했다고 자기 최면을 거는, 아무하고의 대결을 결심하지 않아도 되는 좀더 쉬워 보이는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강간이 발생한 뒤에 자발적으로(과연 이것이 자발의 범주에 들지도 의문이지만) 가해자와 섹스를 몇 차례 하거나, 친근하게 대화하거나 장난스럽게 카톡을 주고받거나 친구들에게 그 일에 대해서 일부러 가볍게 이야기하거나, 그 일도 성적 접촉자체도 아무 의미도 아니라는 것을 자기자신에게 과장되게 증명하기 위해서 성적으로 쿨하고 자유로운 척 행동하고 다니는 일은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멀지 않은 주위의 여성들이 그런 일을 겪었고 짧게 혹은 길게 혼란의 시간을 보낸 것을 나는 안다. 그것은 피해 사실을 받아들이고 싸움을 결심하는 데 너무 많은 용기와 각오와 결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 빠르게 대처한 영민하고 용감한 여성들은 망설이지 않았다는 까닭으로 '피해자 진정성'을 의심 받아 꽃뱀 취급을 당한다. 늦게 인정하고 행동한 여성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늦게라도 용기내서 발언한 여성들도 똑같이 꽃뱀 취급을 당한다. 이 경우에는 지난 시간의 망설임과 공백, 그 공백 기간 동안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 여성이 꽃뱀이거나 거짓말쟁이거나 관종 사이코라는 증거로 채택된다.
결국 어떻게 하거나 웬만해선 꽃뱀 취급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꽃뱀이 아닌 '진정한' 피해자로 인정되면 그 다음부터는 나의 모든 개성과 정체성을 지우고 성폭력 피해자 정체성 하나로 획일화하려는 시선의 폭력과 긴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구조. 여성들에게 너는 무슨 일이든 당할 수 있지만. 어떤 일을 당해도 순종하고 입 다물고 살라는 사회적 협박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쪽의 말을 다 들어야 한다고 소리지르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당신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결심과 용기를 쥐어짜내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일, 또다른 가해를 각오하고 대비하지 않아도 되도록 당신이야말로 생각 없는 그 입을 다무는 일이다.
2차가해 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예전에 써놓은 글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