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날씨를 예상못하고 나선 2월이 끝나가던 수요일 11시는
어쩜 그렇게 햇빛이 무지갯빛으로 산란되어 흩뿌려지는지 따스한 바람이 가득찬 하늘과
길가도 봄의 열기로 부풀어올라서 제 겨울옷이 난감할정도였어요.
마로니에의 노랫말가사중의 향기로운 칵테일같은 그런 날씨.
그렇게 봄이오려는 길을 건너 어제 오픈했다는 미용실에 들어갔더니.
중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44세가 되도록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대학졸업후 미용사로 십년넘게 일해왔다고 하는데
그 십년전에 머물던 그곳의 지명을 듣는순간 그 부근에 있던 친구네 자취방에 너무 자주갔던
그 20대초반의 내가 잠시 떠오르는거에요.
그 친구네 집을 가려면, 반드시 푸른색 차양이 드리워진 화장품가게앞에서 내려 작고 앙증맞은 종이 달린
유리문에 부딪치지않게 조심하면서 크고작은 집들로 에워싸인 담벼락으로 시작하는 골목길을 한참 올라가야 했어요.
미젤이라고 쓰인 그 화장품가게, 말간한 유리창너머로 화사하게 빛나는 립스틱들,
그리고 피어리스나 한불화장품 모델들이 붙여진 푸른 차양밑의 그 가게.
한창 가난하고 가진것 없던 그 시절의 내가 어쩌면 처음 접해본 유리창 너머 화사한 색조가 모인 곳.
그 골목한켠에서 불을 밝히고 열심히 살아왔을 그 동갑내기 친구는 여전히 미혼.
그 세월동안에 저는 두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오늘 저녁메뉴를 무엇으로 할지를 메인테마로 떠올리는데
그 친구는 여전히 소녀같아요.
그리고 맘만 먹으면 전국 어디든 떠날수있는 그 자유,
저녁마다 맛있는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려주는 엄마와 함께 살고있는 그 아이.
친구들중 자신이 제일먼저 시집갈줄 알았다고 웃는 그 아이.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데도 우린 금방 서로를 알아보았어요. 게다가 그아이는 너무도 순수하게 보이는거에요.
머리를 손질하고 나서 점심먹고 가라는 그 친구말에
좀 앉아있는데 얼마안있어 6살된 둘째가 엄마를 찾는 전화가 오네요.
그 친구에게 결혼할거냐는 말은 묻지 않았어요.
남자친구가 있느냐는 말도 묻지않았어요.
혼자 있어서 너무 프리해보이고 너무 자유로워 보이니까요.
게다가 자신의 일도 너무 소중하게 보이거든요.
아, 저도 결혼을 안했으면 더 편안했을텐데.
저도 아이들이 다 크면 그렇게 프리해질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