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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관련 너무나 멋진 후기

추천추천 조회수 : 4,858
작성일 : 2018-02-26 08:23:51
박은하
6시간 ·

생애 첫 올림픽이었던 서울올림픽 때 나는 무려 직관도 했으며 배구선수 장윤창의 팬이었고 3살 주제에 굴렁쇠 소년 태웅앓이도 했다고 한다. 황영조와 김기훈의 금메달부터는 기억이 난다. 올림픽 매니아로서 아쉬움을 주체할 수 없어 글로 달래본다. 정작 시작은 냉담했다.

*2011년 7월 6일은 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발표하는 날이었고 나는 수습을 뗀지 100일쯤이었던 사회부 기자였다. 총회는 남아공 더반에서 열렸다. 즉 마감시간이 끝나고 발표된다. 캡은 평창이 개최지로 선정될 경우와 선정되지 않았을 경우로 나눠서 미리 시민들의 반응 기사를 써 놓으라 했다. 그렇게 기사를 만들어 일단 마감을 하고 최종 결과 나오면 빠르게 손보는 것이다. 캡은 말했다. “나는 2002년 월드컵 때 이길 경우/질 경우/비길 경우 나눠서 기사를 써봤어. ㅠ.ㅠ”

강원도 출신인 대학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나는 올림픽 개최에 시큰둥했다. 올림픽의 경제적 효과는 과장돼 있다고 생각했고, 국제대회를 통해 민족주의적 정서를 과열하는 것이 싫었으며, SOC 투자 등 소위 토건사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기 때문에 더욱 토건은 서울에서 진보적 관점으로 글을 쏟아내는 그룹에서는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이고 부패한 투자로 간주돼 있었다.

많은 이슈에서 나와 생각이 비슷했던 이 친구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강도로 올림픽 유치에 찬성했다. “나는 강원도 출신으로서 올림픽이 꼭 됐으면 좋겠어. 강원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 너무 열악해.”

평창올림픽 유치 소식에 시민들이 환호한다는 내용으로 기사를 쓰고 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의문을 품었다.

내 관점은 인프라와 문화 여건에 부족함 없는 수도권 시민의 편향된 시각 아닐까. 올림픽 경제효과 만큼 편향된 시선 아닐까. 가라왕산의 문제를 떠올리면 더 혼란에 빠진다.

*경북 의성군은 2016년부터 언론에 여러 차례 등장했다. 인구는 약 5만 명. 65세 이상 인구 100명 당 20~39세 가임기 여성 17명이라는 신박한 지표로 ‘지방소멸’ 1순위 지역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그 드물다는 의성 출신 20대 여성들이 주축이 된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을 보면서 감동한 동시에 씁쓸한 상상을 했다.

의성에 컬링센터가 지어졌을 때 내가 알았더라면 예산낭비라고 생각했을까 안 했을까. ‘지방소멸’은 일본에서 2015년 책이 출간되고 2016년 한국에 번역됐다. 2017년에는 지방소멸에 소개됐던 ‘압축도시’란 개념이 보다 부상했다. 모든 지자체를 다 지키려다가는 다 망하는 수가 있으니 선택과 집중을 해서 지역마다 핵심 거점도시를 살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될놈될과는 좀 다르다. 이 관점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으나 바로 의성컬링센터 같은 것이 복병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가성비’의 관점에서만 보면 올림픽 은메달 배출하자고 수백억 들여 센터를 짓고 유지하는 것은 비합리적 지출일 수 있다. 그러나 비합리적 지출 때문에 발견할 수 있었다.

팀 킴은 여러모로 지금까지 우리가 살았던 방식을 뒤집는다. 우리 스포츠계에 엘리트란 국가가 조기 발굴해 집중적으로 관리시키는 태릉선수촌 모델이거나, 부모의 헌신적 희생과 열정으로 재능 있는 아이를 글로벌 스타로 만드는 박세리/김연아 모델 두 가지가 있었다. ‘팀 킴’은 다른 모델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줬다. 서울에서 또 다른 사교육 아니냐고 비난받는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생각지도 못하는 데까지 확장시켰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놀 게 없어서 컬링을 선택한 건담 좋아하는 누나야와 영미는 본인들이 새로운 모델의 엘리트가 됐다기보다 엘리트와 비엘리트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지방정부와 학교가 그 중심에 있었다. 한 번쯤 만들어보고 싶었던 모델의 가능성이 이미 여기 있다. 가장 낙후됐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고다이라의 경우와 더불어 사람과 시스템의 관계에서 감동을 먹은 건 오랜만이다.

팀 킴을 보면서 어쩌면 나에게 뉴요커보다 먼 존재일 수 있는, 의성에 사는 사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하는 원문에서 보세요. 나머지 글도 너무 좋아요)


https://www.facebook.com/eunha.park.9406/posts/1488154824630178

IP : 14.39.xxx.44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추천추천
    '18.2.26 8:24 AM (14.39.xxx.44)

    https://www.facebook.com/eunha.park.9406/posts/1488154824630178

  • 2. 하이디쿨럭
    '18.2.26 8:54 AM (110.10.xxx.146)

    기자가 되려면 이정도 글은 써야지! 정말 영리하게 잘 쓴 후기예요

  • 3. 추천추천
    '18.2.26 8:58 AM (14.39.xxx.44)

    평범한 시민들이 느꼈을 법한 부분들을 어쩜 이렇게 잘 정리했는지 혼자 보기 아까워서 전하는 거랍니다.

  • 4. ...
    '18.2.26 9:17 AM (220.116.xxx.252)

    막연하게 느끼고 있는걸 꼭꼭 집어 써주어서 아주 시원하네요.

    그리고 '끔찍한 자기부정에 시달린 2년이라 17일 간의 이 긍정의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이 대목, 아주 좋네요

  • 5. 추천추천
    '18.2.26 9:21 AM (14.39.xxx.44) - 삭제된댓글

    '17일 간의 이 긍정의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라는 그 문장이 저도 너무 좋아서 이 글을 가져왔답니다.
    편창 올림픽에 대한 결산 글로 정말 만점을 주고 싶은 글이어요.
    82님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 6. 추천추천
    '18.2.26 9:21 AM (14.39.xxx.44)

    '17일 간의 이 긍정의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라는 그 문장이 저도 너무 좋아서 이 글을 가져왔답니다.
    평창 올림픽에 대한 결산 글로 정말 만점을 주고 싶은 글이어요.
    82님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 7. 덕분에 좋은 글
    '18.2.26 9:28 AM (43.230.xxx.233)

    잘 읽었어요. 당장 적자가 얼마냐 얘기 나오는데요. 국민들이 누린 즐거움의 크기도 대단한 가치죠.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 , 평화로운 한국의 이미지를 알린 것. 이렇게 안정되고 번영을 누리는 나라에 전쟁을 일으키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낸 것.

  • 8. 우와
    '18.2.26 10:12 AM (61.72.xxx.238)

    잘쓴 진솔한... 잘 읽었어요^^

  • 9. 와우
    '18.2.26 11:20 AM (220.116.xxx.3)

    뉴요커보다 먼 존재일 수 있는, 의성에 사는 사람을 처음 확인했다

    문장도 내용도 참 좋네요
    감사합니다

  • 10. 쓸개코
    '18.2.26 1:25 PM (218.148.xxx.44)

    아 글 좋네요. 원글님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 11. 야무짐
    '18.2.26 11:26 PM (175.192.xxx.216)

    기자역할 제대로 하는 기자네요.

    ' 예전처럼 1등에 매우 집착하지 않는 사람들, 2002년 월드컵 때와 달리 손님과 함께 놀 줄 아는 모습들, '

    ' 전반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긍정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번 올림픽이 한국에 뭘 남긴다면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이거였다고 생각한다.'

    박수 짝짝짝 ~ !!! 정말 이번에 느낀 감정 어쩜 이리 표현을 잘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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