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음식 못하는 자에 대한 고찰 두번째.

흠... 조회수 : 2,501
작성일 : 2018-02-20 14:26:18
이번에는 시어머니 흉이 좀 들어갈 거예요. 하하하

해마다 명절이 되면 2-3일 전에 통화를 해요. 이번에는 음식 뭐 해갈까요, 하고. 
뭐 으레 해 가던 메뉴들 선정하고 나니 문득 시어머니가 이번엔 아구찜을 하려고 아구를 사다놨다 하시는 거예요. 
어머니 아구찜도 할 줄 아시냐고, 저는 할 줄 모른다고 했더니 이번에도 역시나, 음식 잘하는 이모님(시어머니의 언니)에게 배워놨다는 거죠. 흠... 뭔가 오묘한 기분으로 시댁엘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이모에게 배워놨다더니 재료 밑준비만 해 놓고(사실 이것만도 감사하죠. 생물 아구 던져주고 아구찜 해라, 하는 것보다는 나은 거 아니겠어요?) 싱크대 저만치 떨어져서 시이모한테 배워놨다, 내가 배워놨다, 배워왔다... 만 반복. 
-_- 배워왔으면 하시라구요. 

시댁가기 전날 밤새워서 시댁 명절 음식 준비 하고 차에서 몇시간 잔게 전부인 피곤한 몸으로,
결국, 

어머니 그러니까, 제가 할까요? 

했더니, 아, 그럴래? -_- 

제가요.... 음식하는 거 싫어하진 않는데요, 정말 하기 싫더라구요. 그런데 재료만 잔뜩 꺼내서 식탁위에 늘어놓고는, 내가 배워왔다, 배워왔다, 입으로만 반복하면서... 불 앞으로 오지도 않는 거 있죠. 

결국 제가 폰으로 아구찜 레시피 찾아서 양념을 만드는데,

고춧가루 주세요, 했더니... 고춧가루를 꺼내 주시는데, 고춧가루에 제피가루(아시나요? 경상도에서는 많이먹는 향신료 중에 하난데요, 추어탕 같은데 넣는 향신료예요. 경상도에서는 김치 담을때도 제피가루를 넣기도 해요. 초피라고도 합니다. 약간 맵고 특유의 톡쏘는 향이 있어요)를 섞어놓은 걸 꺼내시는 거죠. 그래서 어머니 이거 제피가루가 들었어요, 했더니 아니래요, 들었어도 아주 조금 들었을 거래요, 그리고 그거 말고는 고춧가루가 없대요. -_-

그래서 일단 그 제피가루 잔뜩 든 고춧가루를 베이스로 양념장을 만드는데, 마늘을 넣었더니 갑자기 달려와서는
마늘을 그렇게 조금 넣어서는 안된다며(그럼 어머니가 음식 하시든가요!!!!!!!!!!!) 제가 넣은 마늘양의 세배에 달하는 양을 때려 넣으심.(미리 찧어두셨더군요.)-_- 저도 마늘 좋아하지만, 어머니... 레시피라는 게 있잖아요?

마늘에 제피가루 범벅이 된 양념장을 만들어 숙성시키느라 옆에 두고,

아구를 익히려는데, 아우 진짜.... 조갯살은 왜 그렇게 좋아하시는지, 또 바지락 살을 잔뜩 넣어서 하래요. 
제가 미더덕(없으면 만득이라도...)을 찾았더니 미더덕은 없대요. -_-(경상도 아구찜엔 미더덕이 꼭 들어가요.)
바지락이랑 아구 익히고, 콩나물을 찾았더니 내 주는데,

아니 찜에 넣는 콩나물을 대가리를 하나도 안 따놓은거예요. 
그래서 어머니, 콩나물 대가리를 안떼셨네요, 했더니 이번에도 그 이모님 말씀이 등판

이모가 말하길, 급하면 콩나물 대가리 안떼고 넣어도 된다, 하셨대요. 

그래서 콱 질렀죠. 어머니 대체 뭐가 급하셨길래 콩나물 대가리를 못떼셨냐고.

그랬더니 막 민망하게 웃는데, 시어머닌 콩나물 대가리를 떼기가 싫었던 거예요. 대가리도 나름 영양가가 있을 건데 넣고 싶었던거죠. 아놔... 이건 아구 찜인데. ㅠ.ㅠ 찜인데...............

대가리 안 뗀 콩나물 넣고 한김 쐬어 익힌 다음 양념장을 넣는데... 제피가루가 워낙 향이 강한 향신료라,
이건 뭐... -_- 찜에서 제피향만 풀풀.... 
마지막으로 이제 전분물 넣으려고 전분을 찾으니

내가 준비해 놨다! 하면서 가져오는게... 믹서에 간 찹쌀. 그래요, 찹쌀가루 넣어도 되죠. 근데 색깔이 이상해요.
찹쌀 간 거라는데 황토색이야. 이게 뭐냐 물었더니 땅콩도 넣으면 맛있다고 또 이모가!!! 그래서 땅콩도 같이 넣어서 갈았대요. 그러면서 그 찹쌀땅콩가루에 물을 넣어서 개는데... 양이 너무 많은 거예요. 제가 한 2/3만 넣고 마지막으로 미나리 파 넣어서 뒤적거리려고 하는데 또 저만치서 달려 오더니, 남은 찹쌀땅콩가루물을-_- 남기면 아깝다며 한꺼번에 다 때려 부음. 아 놔.............

완성해놓고 보니... 아구찜인데 일단 색깔이 -_- 노오란색 콩나물 대가리들이 반짝반짝 고개를 들고, 
강렬한 제피향에 희한한 땅콩향 가득한.... 
그래도 간이라도 보시라고, 국물 조금 떠서(볶음주걱으로 뜬거라 숟가락으로 뜨면 두숟가락도 안 될 양) 접시에 부어드렸더니, 간을 보시곤, 그래 간이 맞네, 하고는 그 접시에 남은 국물을! 도로!!!!! 찜솥에 부으심. 아 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전 막 면박도 주고 할 말은 다 하는 며느리라,

아니 어머니 그 국물을 거기다 다시 부으시면 어쩌냐고!!!!! 막 그랬더니,
또.... 아깝잖아... -_- 두숟가락도 안되는 그 국물이요?

집이 작은지라 음식하는 과정을 온 가족이 다 지켜본 참이라 다들 뭐라 말은 못하고...
제피향과 땅콩향으로 범벅이 된 그 찜을 콩나물 대가리와 함께 우적우적 씹었죠... 뭐 다들 먹다 말다...

우리 시어머니 말씀... 우리 애들은 찜도 싫어하나 보다. -_-
아놔....... 제가 그랬죠. 앞으로 명절에 개운하게 찜요리가 먹고 싶으시거들랑,

얘야, 이번엔 아구찜도!!! 해 오너라, 하면 제가 해가지고 올 게요, 했더니
우리 시어머님 말씀. 너 아구찜은 할 줄 모른다며? -_- 오늘 아구찜은 누가 했나요, 어머니? 

재료 준비를 정말 희한하게 해 놓으시고는, 내가 다 준비해 놨다, 넌 준비할 거 없다, 하시더니, 
에휴....... 너도 아구찜은 잘 못하는 구나. 이러기 있기 없기?
IP : 1.227.xxx.5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8.2.20 2:30 PM (182.226.xxx.163)

    ㅎㅎ 참 재밌게 글쓰시네요..이동네고 저동네고 시어머니들은 다 왜그럴까요..명절생각하니 또 혈압이..^^;;

  • 2. 고찰
    '18.2.20 2:31 PM (211.219.xxx.38) - 삭제된댓글

    고찰 [考察]
    국어 뜻 연구의 대상 따위를 깊이 생각하여 살핌

  • 3. ..
    '18.2.20 2:37 PM (59.6.xxx.219) - 삭제된댓글

    그렇네요..무슨 고찰씩이나ㅎ

  • 4. 고찰이란게 학문적으로
    '18.2.20 2:42 PM (210.210.xxx.231)

    접근한게 아니라,해학적으로 접근한 고찰이잖아요?

    글은 너무 재밌는데ㅎㅎ 속은 좀 타다말다 함..

    배웠는데 일을 못하니 며느리 올때만 기다리고 일을 시킴..다음엔 배우든 말든 그냥 뻣대세요.

    일한 공도 없이,너 아구찜 할줄 모른다며라니~

    그냥 대~~~충 물말아서 밥먹고 와야죠.나는 모릅니다 어머니~~~

  • 5. ...
    '18.2.20 2:47 PM (218.238.xxx.234) - 삭제된댓글

    저 요리 잘 못하는데 지난번 님 글을 읽고 제가 스스로에 대해 깨달은 부분이 있었어요 정량을 지키지 않고 대충대충 아까우면 다 때려넣고 몸에 좋으면 다 때려넣고 하는 제 모습이요 ㅋㅋ 깨달음을 얻고 이번 차례상은 신중을 기하고 도를 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려고 애 썼더니 아이가 제가 만든 갈비찜을 먹더라구요
    작년엔 느끼하다고 손도 안대더니만 암튼 깨달음 주신 원글님께 감사드려요 시어머니 남같지 않으셔요 ㅋㅋ

  • 6. ㅇㅇ
    '18.2.20 3:03 PM (73.254.xxx.237) - 삭제된댓글

    재밌게 잘 읽었어요 ㅎㅎ
    맛이 상상이 안가네요

  • 7. ...
    '18.2.20 4:09 PM (183.98.xxx.95)

    할 말 다하시고 눈치가 있으신 참한 며느리세요~
    어머님이 속으로 대견해 하시겠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781850 전문대 입학식 많이 가시나요? 6 ? 2018/02/21 1,444
781849 나물 좀 쉽게 다듬는 방법 없을까요? 15 구찬 2018/02/21 2,007
781848 연희단거리패 내부자 "이윤택 '성폭행 부인' 사전연습.. 15 ㅇㅇ 2018/02/21 4,388
781847 어린이집 졸업..샘께 다들 선물하나봐요ㅜ 13 ㅂㅅ 2018/02/21 2,159
781846 내용 지웠습니다 34 주말부부 2018/02/21 5,445
781845 일일 일식 할만한가요 6 느낌 2018/02/21 2,165
781844 왜 시어머니는 너네 아줌마 진짜 할일 없겠다고 계속 그러실까요?.. 15 아놔 2018/02/21 5,105
781843 '미투' 주도한 캘리포니아 여성의원, 남직원 성희롱 의혹 1 2018/02/21 1,006
781842 요실금 수술 하신분들 남자의사분께 받으셨나요? 4 rhdwn 2018/02/21 1,838
781841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팀추월 2018/02/21 1,391
781840 재판 넘겨지는 ‘강제추행’ 부장검사…안태근 전 검사장 소환 임박.. 4 oo 2018/02/21 1,099
781839 냉동브로콜리 냄새 2 맹랑 2018/02/21 1,387
781838 외국인 눈에 비친 한국 "주68시간 근무 어떻게 가능하.. 1 ........ 2018/02/21 1,266
781837 일체형 비데 vs 일반 양변기 비데 따로 1 고민 2018/02/21 1,100
781836 제 아기가 저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18 두리곰 2018/02/21 7,005
781835 여수에 사시는 어머님들~ 3 여수맘 2018/02/21 1,216
781834 급질) 남자애 교복 바지 길이 어디까지 줄이나쇼 13 에구 2018/02/21 1,487
781833 김상조청원이 성공해야 빙상연맹 개혁도 가능해요 14 ㅂㅅㅈ 2018/02/21 972
781832 대학입학식에 아이 본인이 안 가기도 하나요? 13 하늘땅 2018/02/21 2,017
781831 사모님이라는 소리는 몇살때 부터 듣는가요? 21 헤헷~ 2018/02/21 3,504
781830 컬링 잘하고 있어요^^ 컬링 2018/02/21 538
781829 아이 대학 못가면 15 싸움 2018/02/21 3,356
781828 중3되는 아들 어디까지 케어해야 할까요 15 생각 2018/02/21 2,460
781827 축하해주세요 ^^ 24 대학합격 2018/02/21 3,413
781826 쇼파사려는데 추천 좀 해주세요~~~~ 9 쇼파 2018/02/21 2,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