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남편이 이런말을 하는데...nbc 앵커 망언 관련이요
일본 식민지를 옹호하는건 아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진일보한것은 사실이다
조선은 정말 너무 후진 국가였다
그당시 근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이후의 경제적 성장도 없었을것이다 라는것은 팩트라고..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이 강해서 자본주의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없어지지 않았을거라고...그런 상황에서는 경제발전과 근대화는 없었을거라고 하는데..
그러면서 식민지를 옹호하는건 아니라고 굳이굳이 강조하는데
저는 너무 어이가 없는데
객관적인 팩트로 반박하고 싶어요
감정적인거 말구요..
좀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주실분 계실까요? ;;;;;
1. ㅇㅇ
'18.2.15 1:19 PM (111.118.xxx.4)근대화가 없었을꺼라구요? 무슨 소리인지 ㅋㅋ 아프리카 가도 부족들 핸드폰 쓰고 오토바이타고 다니는 마당에 뭔....
2. 그러니까
'18.2.15 1:21 PM (117.111.xxx.103)근대화가 지금 이룬것만큼 빠르게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거다..라는거 같아요
고리타분하고 꽉막힌 유교사상을 가지고 이만큼의 성장을 이루기는 힘들다는거죠3. 그따위
'18.2.15 1:22 PM (14.40.xxx.74)그 이후의 경제적 성장이 없었을거라니, 누가 그런 결론을 함부러 낸답니까? 무슨 근거로?
4. 그기 바로 뉴라이트!!
'18.2.15 1:23 PM (211.243.xxx.4) - 삭제된댓글조선의 위정자들이 정신 차렸더라면, 외세에 빌 붙어먹으려는 매국노들이 없었더라면 속도는 늦었겠지만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단계였기 때문에 자력으로 근대화에 충분히 이르렀을 거예요. 일본이 그랬던 것 처럼...
이미 조선말은 내부 모순 때문에 폭발 직전의,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기였어요.
일본 때문에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말 만큼이나 어리석은 말은 이 지구상에 더는 없어요.ㅋㅋㅋㅋ5. 그냥
'18.2.15 1:24 PM (117.111.xxx.103)화내는거 말고 좀 설명해주실분 없나요?ㅠㅠ
저도 윗분처럼 화냈는데
뭔가 근거를 들어 설명하고 싶어서요..6. 근대화가
'18.2.15 1:25 PM (106.102.xxx.172)언제 돼도 되었겠지만
흥선대원군 생각하면 한참을 늦게 되지 읺았을까요7. 그런 식으로
'18.2.15 1:37 PM (73.193.xxx.3)생각하는 것을 식민지 근대화론이라 해서 일제를 정당화하는데 쓰인다고 비판받는데 현대에는 뉴라이트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해요. 그에 반박하는 학자들이 내세우는 것은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이 있다고 하네요. 이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은 자본주의 맹아론과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맹아론은 외세개입없이도 내재적으로 자본주의가 이루어졌을거라는 관점이구요.
이쪽 입장을 지지하는 학자 인터뷰가 있어서 링크겁니다. 읽어보세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214248. 그러면
'18.2.15 1:43 PM (125.185.xxx.193) - 삭제된댓글근대화 더 잘 되게 독립하지 말걸 그랬네요
당시 일본의 기술이 더 발달한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할수는 없죠
오키나와처럼 민족과 언어와 국가를 잃어버리고 2등국민으로 조금 더 나은 기술혜택을 받는 것이 더 좋은 길일까요?
일제시대의 악랄한 그 통치와 근대시설 몇개를 바꾸어도 될까요?
그때 일제 폭압속에서도 우린 일본이 아니다 일본의 통치를 원하지 않는다고 목숨과 바꾸어 투쟁한 독립지사 덕분에 우린 한국말쓰며 마음껏 대한민국을 응원하며 어떤 부분은 일본을 능가하고 있는 겁니다
일본이 우릴 위해 근대화시켜준게 아니라 일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릴 이옹하였기에 그들의 통치를 미화할수 없습니다
남편분도 가난한 부모보다 부자 새엄마 아니 선진국 입양이 과연 더 행복한 건지 묻고 싶습니다. 또한 부자부모밑에 있으면 자식은 더 잘 살까요? 그런 노력없는 부의 세습을 막으려면 일제잔재부터 청산해야합니다
우린 조금9. 그러면
'18.2.15 1:44 PM (125.185.xxx.193)근대화 더 잘 되게 독립하지 말걸 그랬네요
당시 일본의 기술이 더 발달한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할수는 없죠
오키나와처럼 민족과 언어와 국가를 잃어버리고 2등국민으로 조금 더 나은 기술혜택을 받는 것이 더 좋은 길일까요?
일제시대의 악랄한 그 통치와 근대시설 몇개를 바꾸어도 될까요?
그때 일제 폭압속에서도 우린 일본이 아니다 일본의 통치를 원하지 않는다고 목숨과 바꾸어 투쟁한 독립지사 덕분에 우린 한국말쓰며 마음껏 대한민국을 응원하며 어떤 부분은 일본을 능가하고 있는 겁니다
일본이 우릴 위해 근대화시켜준게 아니라 일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릴 이옹하였기에 그들의 통치를 미화할수 없습니다
남편분도 가난한 부모보다 부자 새엄마 아니 선진국 입양이 과연 더 행복한 건지 묻고 싶습니다. 또한 부자부모밑에 있으면 자식은 더 잘 살까요? 그런 노력없는 부의 세습을 막으려면 일제잔재부터 청산해야합니다10. ...
'18.2.15 1:46 PM (180.92.xxx.125) - 삭제된댓글전형적인 친일파들의 주장이네요.
그 말이 맞다면 한국보다 더 오래 식민지배 당한 아프리카, 인도, 베트남, 필리핀은 한국보다 더 근대화되고 발전했어야죠.11. ..
'18.2.15 1:49 PM (175.115.xxx.188)피를 빨기위한 근대화가 근대화라고 할수있나요
지금 이나마라도 사니 저런 개소리로 사기를 치는거죠12. ...
'18.2.15 1:51 PM (180.92.xxx.125) - 삭제된댓글Nbc앵커의 발언도 제3국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백인우월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예요.
13. 뭔소리
'18.2.15 1:52 PM (125.177.xxx.55)얼마전 케베스 다큐멘터리 보니 구한말 고종이 일본보다 먼저 전기를 들여왔다고 하더군요
미국의 한 부유한 저택의 주인이 꺼낸 조선말기 신하들의 초상화들...그게 그 주인의 할아버지가
조선에서 고종의 전기 설치 주문받고 전기회사 세우고 창덕궁에 전기를 최초로 넣은 분이라고
좋은 마음으로 링크해드리니 남편분 공부좀 시키세요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00333.html
고종은 1887년 아시아 최초로 전등을 도입해 경복궁 건청궁에 전깃불을 밝혔다. 에디슨이 미국에서 전구를 발명한 지 불과 8년 만이었고, 일본과 중국의 궁궐보다 2년이나 앞선 일대 사건이었다. 고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개인 돈을 내놓아 1898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력회사이자 한국전력의 시초인 ‘한성전기’를 설립했다. 서울 종로에는 도쿄보다 3년 먼저 전차가 다니게 됐고, 전력 수요 충당을 위해 75㎾ 규모의 발전소를 동대문에 세웠다. 한성전기 설립 2년 만에 일반 가정에까지 전등을 보급했다. 안팎의 압력과 감시로 운신의 폭이 좁았지만, 고종은 당시로서는 도깨비불처럼 낯설었을 전기를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도입하겠다는 혁명적인 구상을 한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00333.html#csidx6eabe4825c94c638c...14. 뭔소리
'18.2.15 1:53 PM (125.177.xxx.55)창덕궁---경복궁으로 정정~
15. ...
'18.2.15 1:53 PM (223.62.xxx.201)우리민족의 저력을 너무 과소평가하시는 듯 하네요
16. ...
'18.2.15 1:54 PM (180.92.xxx.125) - 삭제된댓글전형적인 친일파들의 주장이네요.
그 말이 맞다면 한국보다 더 오래 식민지배 당한 아프리카, 인도, 베트남, 필리핀은 한국보다 더 근대화되고 발전했어야죠.
nbc 앵커의 발언도 제3국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백인우월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예요.
식민지 자본 착취로 유럽 서구는 60년대까지 엄청난 호황 누리고 잘 살았죠. 일본도 마찬가지고.17. 반박꺼리로
'18.2.15 1:54 PM (223.38.xxx.251) - 삭제된댓글중국,북한의 예를 들면 되잖아요.
비식민지 상태에서 근대화하면서 반유교주의에 입각해 비권력층이 나라를 뒤집으면서 공산주의힘을 빌려
나름 멋진 근대화를 이룩했을것임 .
공산당이 새로 집권 세력이 됐겠죠.
과거 쭝국 짱꼴라 공산주의처럼.
ㅎㅎㅎ18. 딱 뉴라이트네
'18.2.15 1:54 PM (116.121.xxx.93)꼭 누구 입을 통해서 얘기하더만 남편이 그러던데 이런식으로 접근하더만요 그리고 조선이 생각처럼 그렇게 후진 나라도 아니였어요 일본보다 개방을 늦게 했다뿐이지
19. ...
'18.2.15 1:55 PM (180.92.xxx.125) - 삭제된댓글전형적인 친일파들의 주장이네요.
그 말이 맞다면 한국보다 더 오래 식민지배 당한 아프리카, 인도, 베트남, 필리핀은 한국보다 더 근대화되고 발전했어야죠.
nbc 앵커의 발언도 제3국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백인우월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예요.
식민지 자본 착취로 유럽 서구는 60년대까지 엄청난 호황 누리고 잘 살았죠. 일본도 마찬가지고.20. ...
'18.2.15 1:57 PM (180.92.xxx.125)전형적인 친일파들의 주장이네요.
그 말이 맞다면 한국보다 더 오래 식민지배 당한 아프리카, 인도, 베트남, 필리핀은 한국보다 더 근대화되고 발전했어야죠.
nbc 앵커의 발언도 제3국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제국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예요.
식민지 자본 착취로 유럽 서구는 60년대까지 엄청난 호황 누리고 잘 살았죠. 일본도 마찬가지고.21. 전형
'18.2.15 1:57 PM (14.52.xxx.72) - 삭제된댓글전형적인 식민지근대화론이죠...그래도 일본이 도움이 된거 아니냐??? 이거죠
우리나라도 스스로 발전 하고 있었고요.
일본애들이 기찻길 놓고 도로 깔고 한 것은
조선을 효과적으로 수탈하기 위한 방법이었지 진정 조선을 생각해서 한 일이 아니라는거에요.
목적이 정당하지 않았어요.
새마을 운동과 경부고속도로를 깔아줬기 때문에 박정희가 역대 최고 대통령이고 박근혜도 대통령 뽑아줘야 한다는 논리와 같은거죠. -.-
윗분 말대로 오랫동안 식민지 지배 당한 나라의 지금 현실이 어떤가 보세요.
근대화를 시켰다? 그렇다면 그들이 남겨놓은 쓰레기 (식민지 잔재들)은 어찌할까요.
그걸 아직 처리하지 못해 이 고생입니다...22. 친일파 논리는 이것
'18.2.15 1:58 PM (125.177.xxx.55)-대한제국을 일제는 왜 무능한 나라로 왜곡했나.
“식민통치의 합리화를 위해서였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에 대한제국의 근대화는 자력으로 이미 진행 중이었다. 일제는 그걸 부인해야 했다. 조선이 괜찮은 나라였다면 식민지배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래서 ‘망국책임론’이란 프레임을 씌웠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고종 정부의 무능함, 둘째는 유교 사상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것이다. 구시대 사상인 유교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는 야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게 식민주의 역사학의 가장 큰 굴레다.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대한제국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해오지 않았나.”
http://news.joins.com/article/2200233923. 근대화
'18.2.15 2:12 PM (211.33.xxx.77)남편의 주장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고 뉴라이트 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고요
근대화의 필수조건은 정치-민주주의,경제-자본주의,사회-평등사회,문화-합리주의 가 되어야합니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를 우리가 뽑았나요? 민주주의 아니죠.
식민지 수탈경제가 자본주의 였나요? 아니죠.
조선인과 일본인이 평등했나요? 아니죠.
신사참배를 경요한 일본 잡귀신 숭배가 합리주의인가요? 아니죠.
따라서 남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여기서 조선은 이미 근대화가 되어있었습니다.
조선의 정치는 정당정치(붕당 정치)로서 왕이 독재하는 나라가 아니고 신화와 논쟁과 합의를 통해 정치하는 양반 공화정이었습니다.
조선의 경제는 영정조때 자본주의가 형성됩니다. 정조때 금난전권이 폐지되어 독점적으로 경제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자유로운 상업활동이 보장되었고 자본과 노동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광작으로 한사람이 넓은 땅을 경작함으로서 소작농들이 일자리를 잃고 광산노동자로 전업한 일도 있었습니다.
신분제도 유명무실해지고 있었습니다. 경제활동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양반족보를 사서 신분상승을 하기도 하였고 영조 말때는 양반 수가 늘어나서 납세자가 줄어들어 공노비를 해방시킵니다. (납세자 늘리기위해) 머슴은 세경을 받는 임금노동자였고 노비가 아닙니다. 17,18세기에 사노비(도망가면 재산인 동산을 잃음)대신 머슴을 씁니다.
천주교를 스스로 받아들임으로서 평등사상이 퍼집니다. 중국을 왕래하던 양반들이 학문으로 천주교를 연구하다가 스스로 천주교도들이 되고 기독교 사상이 평등사상이 전파됩니다.
조선후기 실학(실용주의)이 펴집니다. 이성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학문을 연구하는 합리주의입니다.
따라서 조선은 이미 근대화되고 있었고 오히려 일본의 수탈로 우리의 발달이 저해되었습니다.
조선의 아쉬운 점은 정당정치가 권문세족의 1당 독재(안동김씨나 파평윤씨등)로 인해 부패되어가며 조선의 몰락이 왔다는점...역시 독재정치는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위에 분이 쓰신대로 일본보다 먼저 전기와 전차가 들어왔고 일본의 야만적 통치가 없었다면 그리고 독재정권(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 없었다면 미국 다음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참 아쉽고 안타깝습니다.24. Fortune
'18.2.15 2:13 PM (67.40.xxx.11)포춘지에 딱 그런 소리 하면서 nbc에서 하차한 레이모를 두둔하는 글이 나왔는데 정말 속상해요. 이건 왜 이슈가 안 되나요? 딱 원글님 남편이 하는 소리 하고잏네요. 일본에서 한국이 많은 것을 배운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이런식으로 말하고 있네요. 저런 소리 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알본에 전해준 문화가 얼마나 되는지 하나도 모르겠죠.
http://fortune.com/2018/02/12/joshua-cooper-ramo-korea-nbc-winter-olympics/25. 푸른연
'18.2.15 2:30 PM (39.113.xxx.80)남편 재일교포신지....?
조선이 아니고 물론 고구려나 고려였다면, 지금 우리가 훨씬 살기 편했겠지만, 조선도 그렇게 후진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조선후기 들어서 성리학 만 숭배하고 성리학 외에는 이단시하는 풍조 때문에(뭐든지 한 곳으로만 치달으면
그 사회는 후퇴하기 마련이죠) 자체 발전 동력이 늦어지긴 했고, 정조 이후 정치가 세도정치로 변질되어
사리사욕만 채웠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근대화할 타이밍을 놓치긴 했지만요.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과 간섭, 그리고 식민지 수탈을 하지 않았더라면 천천히 근대화했을 겁니다.
현재 우리가 이렇게 발전한 것에는 높은 교육열도 한 몫했는데, 이 교육열은 조선시대에서 온 거고요.
조선은 가난한 집에도 책이 집집마다 있었던 드문 나라였고 문맹률도 그 당시 유럽에 비해서도 낮았고요.26. 푸른연
'18.2.15 2:35 PM (39.113.xxx.80)한국인들 중에도 우리가 정말 지지리 못 살다가 갑자기 근대화되어서 단군 이래 가장 잘 사는 것처럼 알고
얘기하는 사람들 많은데요,
유럽도 중세 때 농민들 지지리못 살았고 기근으로 굶어죽는 사람들 숱했고요, 그네들도 돌아가면서 지배받고
살았답니다.
고려는 그 당시 기준으로 선진화된 나라였고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그 당시 세계 기준으로 기록문화나
문물제도가 후진국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후기 성리학 하나만 붙잡고 있다가 점차 근대화가 늦어졌고
세도정치 시기에 본격적으로 타이밍을 놓쳐서 우리 나라가 잠시 못 살게 되었다가
다시 회복해서 더 올라간 것이지, 원래부터 풀 뜯어먹고 살았던 것은 아니랍니다.27. rolrol
'18.2.15 2:38 PM (112.167.xxx.85) - 삭제된댓글너무나도 결과론적 시각이라고 생각해요.
엠비씨가 망가졌을 당시 했던 유명한 뉴스가 있었죠.
PC방에서 게임의 폭력성을 실험한다면서 강제로 전원을 내려버린 일이 있습니다.
그 순간 사람들이 욕설을 터뜨리고 기자는 그것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보도한다고 내보냈지만
그것이 얼마나 비웃음을 샀던가요?
자주와 주권을 가진 민족이 스스로 근대화를 이룰 기회를 강제로 빼앗아
이미 너희들은 스스로 근대화를 할 능력이 우리의 강압에 의해 해주겠다는 논리로
사실은 근대화가 아닌 주권을 빼앗는 행위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구속하고 강제하고 핍박하고 학살하고 노예처럼 부린 행위를
근대화라는 미명으로 옹호해 줄 수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이후의 우리 역사가 또한 증명합니다. 우리는 시행착오도 겪었고
더디기도 했고 뒷걸음질도 많이 쳤지만 스스로 역사의 발전단계를 이뤄갈 수 있고 그렇게 해 온 민족입니다.
우리가 역사의 고비마다 얼마나 회복력이 빠른 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근대화를 해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뒤쳐졌더라도 근대화를 이루어낼 잠재력이 우리에게 있었으나 그 싹을 미리 자르고 일본의 공인양하며 일제가 저지른 모든 만행을 상쇄하는 관점은 너무나 자주적이지 못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나 기타 여러가지 지식에 대해 그리 깊지 않지만 흔한 일반인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저의 생각입니다.28. ,,,
'18.2.15 2:38 PM (1.240.xxx.221)민족정신을 말살하고 온갖 약탈을 일삼았는데 이걸 고맙게 생각하는 개돼지가 있죠
소위 뉴라이트 친일매국이죠29. rolrol
'18.2.15 2:38 PM (112.167.xxx.85)너무나도 결과론적 시각이라고 생각해요.
엠비씨가 망가졌을 당시 했던 유명한 뉴스가 있었죠.
PC방에서 게임의 폭력성을 실험한다면서 강제로 전원을 내려버린 일이 있습니다.
그 순간 사람들이 욕설을 터뜨리고 기자는 그것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보도한다고 내보냈지만
그것이 얼마나 비웃음을 샀던가요?
자주와 주권을 가진 민족이 스스로 근대화를 이룰 기회를 강제로 빼앗아
이미 너희들은 스스로 근대화를 할 능력이 없을 지경이니 우리가 강압으로 해주겠다는 논리로
사실은 근대화가 아닌 주권을 빼앗는 행위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구속하고 강제하고 핍박하고 학살하고 노예처럼 부린 행위를
근대화라는 미명으로 옹호해 줄 수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이후의 우리 역사가 또한 증명합니다. 우리는 시행착오도 겪었고
더디기도 했고 뒷걸음질도 많이 쳤지만 스스로 역사의 발전단계를 이뤄갈 수 있고 그렇게 해 온 민족입니다.
우리가 역사의 고비마다 얼마나 회복력이 빠른 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근대화를 해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뒤쳐졌더라도 근대화를 이루어낼 잠재력이 우리에게 있었으나 그 싹을 미리 자르고 일본의 공인양하며 일제가 저지른 모든 만행을 상쇄하는 관점은 너무나 자주적이지 못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나 기타 여러가지 지식에 대해 그리 깊지 않지만 흔한 일반인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저의 생각입니다.30. 흠
'18.2.15 2:41 PM (1.238.xxx.253)딱 식민사관 그대로에요.
같은 논리가 박정희가 경제 발전을 이뤘다는 말이죠.
강점기 동안의 수탈을 생각하면 얼마나 어이없는 사관인지 말이죠.31. 일제강점기가 없었더라면
'18.2.15 2:43 PM (211.215.xxx.107)훨씬 더 빠르게 근대화가 됐겠죠
당연한 추측 아닌가요?
인재 말살에 자원 강탈에..그게 다 근대화 훼방 놓은 거죠.
인도 보세요. 영국에게 수탈당해 어떻게 망가졌는지
한국 전쟁 이후 유례 없이 빠르게 이룬
한국 경제 발전 보고도 그런 개소리를 하느냐고
남편 뒤통수를 때려 주세요32. 그럼
'18.2.15 2:44 PM (125.178.xxx.57)근대화는 식민지가 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인가요?
일제 때 당한 수탈이 얼만데
강도가 도둑질하려고 길 닦아 놓은 걸 고맙다고 해는거랑 똑같아요33. 333
'18.2.15 2:50 PM (112.171.xxx.225)전두환이 경제정책을 잘 펴서 경제가 최고로 성장했다는 식이네요.
당시 중동정세가 안정돼 있어서 세계경제가 성장추세여서 우리나라도 지디피가 거의 두 자릿수에 근접했던거죠.
일본식민지 덕분에 조선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게 됐다고요?
일언지하로 말한다면 개소리!!!
책 한 권도 안 읽는 무식자의 단면인 이유!!!
김민웅의 '시대와 지성을 탐험하다'를 강추할게요!!!
그 책 165쪽 중간에
고 리영희 교수님의 일갈이 나옵니다.
박정희 경제발전론에 대해...
남편 수구적 뇌에 찬물을 끼얹을~!!!34. ........
'18.2.15 3:30 PM (121.137.xxx.195)그런 남자랑 어찌 삽니까......
소름35. 제가 말할게요
'18.2.15 3:52 PM (49.175.xxx.168) - 삭제된댓글엄청난 자본으로 몇십년전부터 일본의 서울대 역사학자 뉴라이터 지원으로 지금도 문제많고요
그리고 절대 조선은 후진 국가 아니에요
근대화의 단어의뜻을 알아야 합니다
서양의 역사학 용어입니다
역사적으로 정의가 있는 명칭이고요 어느사회가 중세에서 벗어나서 근대사회가 된다하면
4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정치는 민주주의(주권은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
경제는 자본주의(누구나 자유롭게 경쟁을 해서 시장을 통해서 경재문제를 해결하는)
사회는 신분사회가 사라진 평등사회(신분제를 극복한 평등사회)
문화는 이성을 바탕으로 한 합리주의(이성을 중시하는 합리주의)
이게 있어야 근대화입니다
일제 강점기 에는요
조선총독 우리가 뽑았어요??????왕정보다 못한 식민지 정치였어요~민주주의 개뿔이였음
경제가 자본주의이냐?????핵심이 자유경쟁체제인데 자유경쟁안함
일본의 앞잡이들만 국민의 재산을 민족자본가들한테 돈을 빼앗아 조선총독부의 특혜를 받아서 괴물같이 운행한 일제경제 ~침탈경제(침범) 수탈경제(강제) 착취경제였음 이게 무슨 자본주의입니까??
평등사회 아니였음~일본인하고 조선인 철저하게 차별
들어갈 수 있는 학교부터 교육도 차별 모든게 차별이었음
이성을 중시한 합리주의~일본 귀신한테 절 하라고 신사참배 시켰음
그래서 이명박근혜가 추진한 국정교과서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우리아이들한테 교육시키려고 자릴을 했건 것임
그들이 국정교과서를 만든 이유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국민입니다
이 국민이 제대로 된 주권을 행사하려면 필요한 게 올바른 역사관입니다
국민이 제대로 된 주인의식을 갖고 역사의식을 똑바로 하면 조국이 발전하게 됩니다
그것 막아야 일본놈들이 한반도에 다시 들어올 수 있는것임36. 지나가다
'18.2.15 4:05 PM (1.239.xxx.189) - 삭제된댓글한국의
근대역사는 동아시아 일반에서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더불어 시작된다.
[그러면 침략 이전의 조선사회는 과연 오랜 잠 속에 빠져 있었던가. 그렇지는 않다.]
내제적 발전을 계속해 온 조선사회는 왜란과 호란의 양 난을 겪고 나서부터는 그 발전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17, 18세기를 통해 농업, 수공업, 광업의 생산력은 증대되어
상품생산이 가능해지고 상업도 꽤 진전되었다. 이어 19세기 초에는 화폐자본을 다량
축적한 상인자본이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중엽에는 유기류에서 볼 수 있듯이 지방수공업
일부에서 자본가적 경영도 발생하였다.
[`한국현대정치사`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침략과정 중]
조선 중 후기를 간략히
(`교양 한국사`를 중심으로 `한국 ㅁㅈ사` `한국근대사` 인터넷 등 짬뽕)
정치
16세기 말 왜의 침략 이후 이를 수습하기 위해 문.무 고관 간의 지혜를 모으는 합의기구
필요성. 이미 설치돼 있는 비변사(備邊司)의 기능 확대 강화. (비변사=국방에 관한 협의
기구, 16세기 초 중종 때 임시기구, 명종 때 상설화). 의정부 기능까지 흡수, 초정부적
기관으로 변모. 이는 정치구조의 변질. 곧 왕권의 약화로 이 왕권의 약화는 본격적인
붕당정치(朋黨政治) 및 붕당의 분화(分化)와 붕당끼리의 정쟁(政爭)으로 발전.
경제
[농촌경제]
왜란 호란 등을 겪어 황폐해진 농토는, 조선왕조 사회가 농업 생산을 근간으로 하였기에,
거국적 농촌복구사업을 활발히 하여 왜란 이후 약 1세기가 지난 18세기가 들어설 무렵에는
왜란 전의 상태로 복구되었다. 크고 작은 저수지도 많이 신축 및 수축. 18세기 말 그 수가
6000개. 이와 함께 농업기술의 발달 농촌 경제도 변화. 벼와 보리의 이모작. 견종법 보급.
이앙법의 전국 보급. 노동력을 줄이는 농법으로 1인당 경작면적의 확대. 부농 자작농들
머슴이나 임금(賃金)노동자 고용, 이것은 곧 자본주의 경제체제.
상품.화폐경제의 발달로 상업적 농업이 가능. 인삼 담배 목면 체소 과일 약재등 상품화를
위한 재배. 청(淸) 왜(倭)에 수출도 함. 자본의 축적. 경영형 부농 출현. 자본주의 시작.
[수공업과 광업]
조선 후기 공장(工匠)들, 관장체제(官匠體制)에서 이탈 독립. 민영수공업자로. 무기 자기
종이 활자 비단 유기 등의 제조에서도 늦으나마 민영화 됨. 대동법 실시 후 공인(貢人)의
관납물품 시장 구입 조달로 민영수공업 활기 발전. 수공업자들 자본 축적과 임금노동자
고용, 분업적 생산. 이는 곧 자본주의의 발전.
청과 무역에 필요한 은광 개발. 17세기 말 전국적으로 70개소. 금광과 동전 주조를 위한
동광, 화약 제조를 위한 유황광도 개발했으나 동광 유황광 개발은 부진.
[상업]
조선 전기는 상업이 국가의 강한 통제로 부진하였으나, 후기로 오면서 한양 인구의 증가와
대동법(쌀로 국세징수 1608.경기도, 1708.전국적) 등으로 공인(貢人)들의 구매력 증가.
이는 상업활동의 활성화 상업 발달 거래 규모가 큰 독점적 관납도매상의 자본 축적. 사상
(私商)의 상업 활동도 활발, 한양의 京江商(한강 이용) 개성의 松商. 이들 사상은 지방에
지점 설치 대외무역, 義州商과 東萊商을 매개로 청.일을 연결하는 국제 중계무역도 함.
인삼을 직접 제배해서 교역로를 따라 국내외에 판매.
조선의 대외무역은 원래 사행무역(使行貿易)과 왜관무역(倭館貿易)으로 제한.
17세기 이후 민간상인(私商)의 청.일을 상대한 대외무역 활발. 유통경제 활성화 상업자본
축적. 상업과 수공업 발달에 의한 상품경제의 발달은 돈(상평통보)이 필수, 화폐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짐. 이러한 것들은 곧 오늘날의 시장 위주의 자본주의 체제와 같음.
조선 후기사회는 바로 자본주의 체제의 출발 및 초기 발전 단계.
[신분제도]
16세기에 이미 양반의 분해. 19세기 중반 그 수가 전체 인구의 반을 넘음, 달리 말해
그것은 양반의 특권계급의로서의 위치가 무너지는 것, 엄격한 계급구조사회의 붕괴
본질적으로는 기층민 및 전체적으로 국민의 기본 인권의 상승이라 할 수도 있음. 계층간
이동 현상. 특히 하층민의 지위 상승과 정당한 권리와 지위 요구, 기존 질서에 저항.
1801년(순조 1) 대부분의 노비문서 소각. 소수 특수기관과 지방관아의 노비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노비는 양인(良人)으로. 사노비(私奴婢)는 갑오경장까지 존속.
실학
[實學의 形成]
실학은 조선 후기에 전통적 사회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를 이루려는 의욕을 나타낸
일련의 사상체계이다. 이러한 실학은 조선 후기에 여러가지 모순이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학문적인 반성에서 형성되게 되었다. 이미 16세기경부터 변질되기
시작한 조선왕조의 통치 질서가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내게
됨으로써 이에 대한 본질적이고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게 되었다.
士林兩班들의 性理學적 가치관에 입각한 名分을 바탕으로 한 空理空論. 權威主義化한
身分主義的 社會原理와 中華主義的 世界觀(오늘의 모 국위주의)만을 고집. 당시 정치 사회적 제 矛盾 극복을 위한 노력을 외면.
일부 선각 유학자들이 성리학 중심의 문화의 한계성을 깨닫고 이를 반성. 성리학 비판과
동시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혁신, 부국강병과 민생안정, 이로써 당시대 모순을
극복하자는 움직임. 이런 일련의 思想體系가 바로 實學. 현실개혁을 위한 비판.
집권층에 대한 비판.
정치 .경제 . 사회 등의 역사와 현실을 밝힘으로써 개혁의 방향을 제시.
經學.史學.地理學.自然科學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광범한 연구. 실학은 현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새로운 학문. 理氣說보다는 社會科學이나 自然科學 에 중점을 둠. 당근
연구 방법이 實證的. 近代指向적. 民族主義적 民衆적 現實 학문.
[농업 중심의 改革思想]
조선 왕조는 농업사회였기에 농촌 현실에 대한 학문적 접근. 自營農民의 생활 안정을
기반으로 토지제도나 조세제도, 정치.군사.교육.관리선발 등 여러 방면에 개혁 치중.
이들을 經世致用學派라.
유형원(柳馨遠 1622~) 반계수록(磻溪隨錄)
정치 군사 사회 문화등 각 방면의 개혁안을 체계적으로 제시. 농촌문제는 경작자인 농민
위주로 해결, 균전론(均田論)의 입장에서 관리와 사 농 공 상에 토지 재분배하여 자영농
육성해야. 자영농 바탕으로 병농일치의 군사조직, 사농일치의 교육제도를 실현 시켜야
한다고 제안. 문벌숭상(門閥崇尙) 적서차별(嫡庶差別) 노비제도(奴婢制度) 등을 비판.
이익(李瀷 1681~1763) 성호사설(星湖僿說) 곽우록(藿憂錄) 등
유형원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킴.
투철한 주체의식과 비판정신을 토대로 당시의 사회제도를 실증적으로 분석.비판하여
정책적 대안을 제시. 중농사상(重農思想)에 입각하여 전제(田制)개혁의 방향을 개인의
토지점유 제한으로. 전주(田主)의 몰락 방지하려는 한전론(限田論)의 입장, 토지 소유의
평준화를 이루자. 노비제도(奴婢制度) 과거제도(科擧制度) 양반문벌제도(兩班門閥制度)
등을 비판. 노비신분을 점차적으로 해방시키라. 당쟁의 발생은 이해(利害)의 상반에서
오는 것이라고 분석, 양반도 산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사농합일(士農合一)이론을 주장.
인재등용은 과거제도에만 의존하지 말고 공거제(貢擧制)를 실시할 것.
정약용(丁若鏞 1762-1836) 與猶堂全書(여유당전서) 등등등
19세기 전반. 중농주의 실학. 중앙정치조직을 논한 경세유표. 지방행정을 논한 목민심서.
刑政에 관한 흠흠신서 등. 井田制 국가가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모든 토지를 사들여
농민에 분배 자영농 육성. 벌연(가문)정치 비판. 노비제도 비판. 민의가 반영되고 민권이
존중되는 정치개혁안을 체계적으로 제시.
[상공업 중심의 개혁사상]
18세기 후반, 청의 발달한 상공업에 자극받은 학자들이 중심.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을
진흥시키고 기술을 혁신하여 사회 번영을 이룸. 利用厚生學派. 청의 발달된 문물 받아
들이자고 주장. 북학 북학파. 노론 계통의 집권층.
유수항(柳壽恒1694∼1755) 迂書(우서)
18세기 전반. 관직제 개편.신분제 철폐.교육의 기회균등.국민의 직업적 평등 전문화 주장
국부의 원천으로 상공업 진흥과 화폐의 유통확산을 강조. 소상인들의 합자에 의한 대규모
경영, 상인의 생산 판매 주관. 지방상점 개설 등을 요구. 모든 상업활동 국가 통제로.
무리한 전제개혁에 의한 자영농 육성보다는 농업경영과 기술 혁신, 생산성과 상업성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
홍대용(洪大容)(1731~1783). (湛軒書(담헌서).林下經綸.의山問答.燕記 등).
북학파의 선구자 과학자 수학자. 1765년 청에 가서 서양 문물 견학. 음양오행설부정 지구
자전설 주장 성리학을 극복해야. 균전제 부병제를 통한 농촌문제 해결 경제개혁 주장.
기술혁신. 신분제도 철폐. 화이관(華夷觀)의 타파가 부국강병의 핵심이라고. 8세 이상의
어린이 신분차별없이 교육 주장(혁신적 교육제도 오늘날의 기본 공교육 제도와 똑같당).
박지원(朴趾源1737~1805) 열하일기.
그 역시 상공업 진흥 중시.수레 선박이용 국내 상업과 대외 무역 발전 시키고, 화폐의
유통을 활발히 주장. 농업에서는 한전제(限田制), 영농 방법의 혁신, 상업적 농업의 장려,
농기구 개량, 관개 수리시설 확충 등 농업경영과 기술개선 등을 통한 농업 생산력 증대가
방법이다. 양반문벌의 허위성과 비생산성을 비판.
박제가(朴齊家 1750~1805) 北學義(청 견문록)
가장 혁신적이고 실용적인 실학자
넓은 안목으로 시대가 당면한 제반 문제점과 함께 부국.부민을 위한 개혁사상을 제시.
수레와 선박의 필요성 강력 주장. 산 많고 평지 적지만 삼면이 바다인 점을 이용 뱃길을
이용하자. 또 육로 운송은 산이 많으니 수레 이용이 이동량 많고 빠르다는 점을 강조.
수레의 이용을 강조한 이유는 지역간의 물자 교류가 많아야 화폐경제가 발전할수 있고
화폐경제 발전으로 인해 상업이 발전 할 수 있다고. 박제가의 혁신적인 주장 두 가지.
첫 번째, 조선은 자원부족 수출이 살 길. 자원을 수입해 가공하여 수출해야 한다는 이론.
당시 조선의 상태는 자급자족 파격적인 개혁사상. 두 번째 '절약의 역설'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점을 주장한 것으로 혁신적인 주장. 상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화폐를 안쓰고
절약해서 집에 짱박지 말고(은행에저축하지마) 화폐를 쓰고 생산품을 소비해야 상업이
발전하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살아 갈 수 있다는 주장, 내수의 강조 또한 주장.
위의 두 주장은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형태를 보여 주는 것으로 당시엔 혁신적인 것.
청과 통상 증진. 청에 있는 양놈들 데려와 천문지리 등의 각종 기술을 도입 주장.
상공업 중심의 개혁사상은 농업 중심의 개혁보다도 토지 분배보다 생산에, 농업보다는
상공업에, 자급자족보다는 교역에, 사농일치보다는 사농공상의 분업과 전문화 강조.
[國學]
성리학지상주의를 표방하고 모화적(慕華的)이었던 조선왕조사회에서 우리의 민족의식의
성장.발전은 저해되었다. 그러나 왜란과 호란같은 외침을 통해 뼈저리게 체험된 우리
나라 현실의 극복을 위한 시대적 요구와 여기에 수반되어 일어난 유학의 대내적 비판,
그리고 새로 전개된 서학과 고증학 자연과학 등은 학자들 사이에 자아반성과 자아의식을
크게 불러 일으켰당. 이러한 분위기는 특히 실학자들에 의해 조성되어 국학에 대한 관심
을 고조시켜, 우리의 역사 . 지리 . 언어 . 금석학 등 여러 분야에서 국학이 발달하게
되었당.
역사학에서 종래 지식인들은 중국역사에만 치중, 우리 역사 소홀. 우리 역사 서술에서도
유교문화 중심으로 치우침. 18세기 접어들어 실증주의 사조와 새로운 역사의식 고조.
우리 민족사에 대한 관심 높아짐. 이에 따라 많은 사서(史書) 편찬. 우리 민족사의
체계가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함.
이익(李翊, 1629~1690) 사론(史論) (위 이익과 다른 이익)
역사가의 기본자세를 단편적인 사실(史實)의 시비를 따지는 것이 아닌 시세(時勢)를
정확히 파악 이해하는 것이라 함. 역사를 실증적인 방법으로 연구할 것을 강조.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의 민족사가 체계있게 새로 저술되어야 한다고 함.
안정복(安鼎福 1712~1791) 강목체(綱目體)의 동사강목(東史鋼目).
자주적 ·객관적 ·실증적으로 한국사를 재구성.
외적의 침략에 항거한 장수들을 내세워 민족의 활기를 찾으려고 함. 중국 중심의 사관에서
벗어나 한국사 자체의 정통성과 독자성을 내세워 단군조선으로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체계를 세우고 치밀한 고증에 의한 역사를 서술.
한치윤(韓致奫 1765~1814)
우리 민족사의 옳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국내 자료만으로는 부족, 중국 및 일본의 자료
500여 종 중에서 한국관계 기록을 뽑아 기전체(記傳滯) 형식을 빌어 해동역사(海東繹史)
를 저술. 단군조선에서 시작되는 민족사의 정통성을 체계화. 실증적 서술.
이긍익(李肯翊 1736~1806)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고증학자. 조선시대의 역사를 400여종의 국내 문헌을 참조하여 객관적 실증적 입장에서
자료 중심으로 서술.
만주가 고대 우리 민족사의 무대(우리 땅이란 말이징)였다는 인식하에 쓰여진 사서가
많이 나옴.
이종휘(李種徽 1731∼1797) 東史
단군 고려로 이어지는 북방 만주의 역사를 우리 민족사에 포함.
이득공(李得恭).
渤海考를 써서 발해사를 우리 민족사에 편입시키는 동시에 신라시대를 남북국시대
(南北國時代)로 할 것을 강조.
실학자들은 역사 뿐만 아니라 역사지리서, 인문지리서 등 저술.
선조 때 한백겸의 東國地理誌. 영조 때 신경준 彊界考 道路考 山水考, 순조 때 한진서의
海東繹史地理考, 등등, 일부 생략. 대동여지도는 하천 목장 제방 항만 및 교통망이 자세
하여 상인들이 많이 이용하여따. 우리말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문화 인식의 범위가 넓혀져 백과사전적인 저서가 마니 나왔땅.
[科學과 技術의 發達]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선초(鮮初)에 이룩되었던 과학적 성과를 계승 발전시켜서 농학,
동.식물학, 의학 등의 분야가 큰 발달을 보였다. 농업기술과 농업경영의 발달과 함께
농학이 발달되어 많은 농서가 저술되었다.
17세기 중엽 효종 때 신속(申속. 윈도에 없는 한자, 췟). 農家集成, 수전농법.
18세기 이후 임업 축산 양잠 및 약초 재배와 식품가공 등에 관한 우리 실정에 맞는
농서들이 많이 저술됨.
박세당(朴世堂) 색경(穡經).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 박지원의 과농소초(課農小초).
서유구(徐有구)의 林園經濟志. 정조의 명을 받아 서호수(徐浩修)가 지은 海東農書.
특히 해동농서는 우리나라 농학의 체계화를 시도.
의학은 17세기 초 허준 동의보감. 허임(許任)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 마진(麻疹.홍역)
에 관하여 여러 학자들이 연구하였는데, 정약용이 이것과 쭝국의 마진서를 참고하여
마과회통(麻科會通)을 저술하여꼬 박제가 등과 종두법을 처음으로 연구 실험하기도 해따.
선조 말 명에 갔던 사신이 서구의 지도를 가져 오고 그 후 인조 때 정두원이 천주교서적
화포, 천리경, 만국지도, 천문서, 서양풍속기 등을 가지고 와따. 청에 인질로 잡혀있던
소원세자가 귀국 때 과학서적 등을 가져 왔다. 인조 때 표착한 네델란드인 베텔브레
(Weltevree)는 이름을 박연(朴淵. 燕)이라 고치고 조선에서 살면서 서양식 대포 만드는
기술을 전하였다. 서양 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효종 때 김육(金堉)에 의해
개량력(時憲曆)이 사용되게 되었다. 정약용의 한강에 가설할 단교 설계, 기중기를 고안
수원성 축조에 이용. 지구가 원형인 것을 믿게 되고.
지전설(地轉說)을 주장(김석문. 이익. 홍대용. 정약용 등)... 이리하여
종래 동양 중심적 세계관 및 우주관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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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열거한 것들은 조선조 후기사회의 단편들이고, 또 한편 민란(民亂)이라고
부정적 말을 붙였던 [밑바닥에서부터 변화와 변혁을 요구하는 목소리] 그것과 함께
조선은 변화를 원했고 변화하는 중이었으며 스스로 노력했다는 증거입니다.
조선은 그 스스로 개혁을 원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변화는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게혁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새 세상을 열고
진보와 발전을 위한 노력과 희망을 누가 중단시키고 꺾어버렸던가요? 일제의 침탈로
우리의 노력이 중단되어 우리가 지불해야만 했던 댓가, 그 피해액은 얼마치나 될까요.
우리는 그것을 계산해내야 합니다.37. ...
'18.2.15 4:35 PM (121.167.xxx.153)나중에 읽기 위해 저장합니다.
38. ...
'18.2.15 4:39 PM (223.33.xxx.37) - 삭제된댓글솔직히 서구열강과 일본이 식민지배로 아프리카, 아시아의 자원과 자본을 얼마나 많이 침탈하고 얼마나 많이 노예로 부려먹었나요.
그 덕에 엄청난 대호황을 누리고 조상들의 유산으로 지금까지도 잘먹고 잘살고 있잖아요.
비유하자면 교실에서 힘센 애가 힘 약한 애를 때리고 괴롭혀서 돈 뺏고 비싼 옷 뺏고 빵셔틀 시키고 심부름 시키고 부려먹은건데 지들도 지들 한짓 쪽팔리니까 합리화하기 위해 '빵셔틀한 덕에 운동도 많이 하고 건강해졌잖아' 라는 논리죠.
자기 조상들이 그렇게 양아치짓 한거 합리화하는게 '그 덕에 니들도 발전했잖아' 라고 원글 내용처럼 합리화하는거죠.
식민지배가 제3국의 발전을 꾀했다면 한국보다 식민지배 오래 당한 필리핀 베트남 아프리카는 한국보다 더 발전했어야죠.
그냥 양아치들의 합리화인데 이걸 솔깃하게 믿으면 바보.39. ...
'18.2.15 4:41 PM (223.33.xxx.37) - 삭제된댓글솔직히 서구열강과 일본이 식민지배로 아프리카, 아시아의 자원과 자본을 얼마나 많이 침탈하고 얼마나 많이 노예로 부려먹었나요.
그 덕에 엄청난 대호황을 누리고 조상들의 유산으로 지금까지도 잘먹고 잘살고 있잖아요.
비유하자면 교실에서 힘센 애가 힘 약한 애를 때리고 괴롭혀서 돈 뺏고 비싼 옷 뺏고 빵셔틀 시키고 심부름 시키고 부려먹은건데 지들도 지들 한짓 쪽팔리니까 합리화하기 위해 '빵셔틀한 덕에 운동도 많이 하고 건강해졌잖아' 라는 논리죠.
한마디로 학교폭력이죠.
자기 조상들이 그렇게 양아치짓 한거 합리화하는게 '그 덕에 니들도 발전했잖아' 라고 원글 내용처럼 합리화하는거죠.
식민지배가 제3국의 발전을 꾀했다면 한국보다 식민지배 오래 당한 필리핀 베트남 아프리카는 한국보다 더 발전했어야죠.
그냥 양아치들의 합리화인데 이걸 솔깃하게 믿으면 바보.
nbc 앵커의 발언이 딱 이거인데
학교폭력 당했던 애가 그 말 맞다고 동의하면 등신 오브 상등신 인증.40. 이명박근혜때
'18.2.15 4:50 PM (49.175.xxx.168) - 삭제된댓글9년동안 나오는 역사왜곡 영화 드라마 너무 많음
엄청난 자본을 가지고 우리 국민을 속이고 있음
그들의 목적이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버리게 하고 우리역사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문화계의 블랙리스트도 여기에 속함
조선이 망한 것은 당파싸움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일본의 왜곡된 교육입니다
원래 조선의 붕당이 세계에서 아주 선진적인 정당정치였음
정치적인 견해를 같이 한 사람들의 집단이 정당인데
조선전기의 동인 서인 그 다음 북인 남인 갈라져서 사색 당파가 붕당정치을 함
붕당의 붕이 (벗붕임) 그래서 서로서로 학술적인 토론을 통해서 왕의 정책의 방향을 논쟁했던 거
우리의 붕당정치는 굉장히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였음
붕당의 정치 때문이 아니고 붕단의 균형이 깨져서 조선이 망했던 거
사색 당파가 골고루 살아서 돌아가면서 집권했어야 하는데
숙정 영조 정조의 탕평채이 결국 붕당의 균형을 깼음 (왕들이 한 정당에게 힘을 몰아줬던거)
그래서 당파싸움이 아니라 일당독재가 돼서 망한 거
100년동안의 노론 벽파의 일당독재으로 그 중에 60년동안 외척세도가가 독재해서 망한 거
일본의 제국주의가 조선을 망해 마땅했다 당파싸움 때문에 망했다라는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줬던거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함 사실은 우리의 사상 전쟁임
우리의 역사교육을 지키는 것이 사상 투쟁임
식민 사관을 심으려고 한 놈들
일본 제국주의들 한테 돈 받아 쳐 먹은 것들이 일본이 조선을 지배해서 조선이 근대화 된다 이게 식민지 근대화론인데
즉 원래 조선이 미개헸는데 일본이 지배해서 조선이 근대화적인 국가가 된다 그 근거가 신식병원이 늘어나고 신식학교가 늘어나고 공장이 늘어난 것이 근대화의 상징이다 이 것을 주장하려고 국정교과서 만들려고 했던 거 그래서 일제 식민지 정책을 미화해야 자신네 조상이 친일파였던게 면죄부 주어짐41. ...
'18.2.15 5:00 PM (223.33.xxx.37)비유하자면 교실에서 힘센 애가 힘 약한 애를 때리고 괴롭혀서 돈 뺏고 비싼 옷 뺏고 빵셔틀 시키고 심부름 시키고 부려먹은건데 지들도 지들 한짓 쪽팔리니까 합리화하기 위해 '빵셔틀한 덕에 운동도 많이 하고 건강해졌잖아' 라는 주장이죠.
이거 한마디로 학교폭력이죠.
본인들이 그렇게 학교폭력하고 양아치짓한거 합리화하는게 '그 덕에 니들도 발전했잖아' 라고 원글 내용처럼 합리화하는거죠.
솔직히 서구열강과 일본이 식민지배로 아프리카, 아시아의 자원과 자본을 얼마나 많이 침탈하고 얼마나 많이 노예로 부려먹었나요.
그 덕에 엄청난 대호황을 누리고 조상들의 유산으로 지금까지도 잘먹고 잘살고 있잖아요.
식민지배가 제3국의 발전을 꾀했다면 한국보다 식민지배 오래 당한 필리핀 베트남 아프리카는 한국보다 더 발전했어야죠.
그냥 양아치들의 합리화인데 이걸 솔깃하게 믿으면 바보.
nbc 앵커의 발언이 딱 이거인데
학교폭력 당했던 애가 그 말 맞다고 동의하면 등신 오브 상등신. 아이큐 두자리 머저리 인증이죠.42. ...
'18.2.15 5:10 PM (223.33.xxx.37) - 삭제된댓글강제로 강간당한 여성에게 가해자가 '내 덕에 너도 즐겼잖아' 라는 말만큼 끔찍하게 들려요.
43. 저장
'18.2.15 5:43 PM (211.246.xxx.58)저런 뉴라이트 역사관을
초등아이들에게 주입시켜 걱정입니다.
역사교육에 힘써야겠어요.44. ...
'18.2.15 5:50 PM (180.92.xxx.125)강제로 강간당한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내 덕에 너도 즐겼잖아' 라는 말만큼 끔찍하게 들려요.
45. 흠
'18.2.15 6:10 PM (175.192.xxx.216) - 삭제된댓글125.177.xxx.55 님 덕분에 많이 알아갑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22002339
"대한제국은 무기력하지 않았고, 고종은 무능한 황제가 아니었다"
[중앙일보] 입력 2017.10.11 17:35
120년 전 오늘이었다. 고종 황제는 근대국가의 시발점인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그는 ‘국가(國家)’라는 말보다 ‘민국(民國)’이란 용어를 더 즐겨 쓰던 군주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고종이 나라를 지칭하며 ‘국가’ 대신 ‘민국’이라 부른 예가 70%나 된다. 당시 고종을 직접 인터뷰했던 선교사들이 남긴 글에는 ‘고종 황제는 나라에서 지식이 가장 높은 인물이다. 신하들이 잘 모르는 게 있으면 군주를 찾아가 물어볼 정도였다. 고종 황제는 그 자리에서 즉답을 하거나 무슨 책을 찾아보라고 일러주었다’고 돼 있다.
이태진 명예교수는 "건국절 논란은 우리가 근현대사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근대국가인 대한제국이 상해임시정부로, 다시 대한민국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불필요한 논란이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알던 고종과 다르다. 흔히 대한제국과 고종 황제는 그저 ‘무기력한 나라, 무능한 군주’로만 알고 있다. 역사 시간에도 그렇게 배웠다. 25년째 대한제국 역사를 연구 중인 서울대 이태진(74) 명예교수는 “그건 철저히 일제 식민사학의 관점이다. 우리도 모르게 거기에 젖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연구실에서 이 명예교수와 마주 앉았다. 그에게 ‘대한제국의 의미와 일제의 왜곡’에 대해 물었다.
-대한제국은 어떤 나라였나.
“대한제국은 자주적 근대화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나라다. 1899년에 이미 서울에 전차가 달리고 있었다. 당시 일본 도쿄에는 전차가 없었다. 1902년에야 일본에 전차가 생겼다. 1900년대 초에 러일전쟁을 위해 서울에 온 일본군이 서울 시내를 달리는 전차를 보고 신기해하는 자료 사진까지 있다. 고종 황제는 차관 도입을 추진하고,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자력으로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고 국제사회로 진출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광산개발과 철도부설, 지폐 발행을 위한 중앙은행 설립, 전기와 전신 사업 등에도 엄청 애를 썼다.”
-대한제국을 일제는 왜 무능한 나라로 왜곡했나.
“식민통치의 합리화를 위해서였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에 대한제국의 근대화는 자력으로 이미 진행 중이었다. 일제는 그걸 부인해야 했다. 조선이 괜찮은 나라였다면 식민지배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래서 ‘망국책임론’이란 프레임을 씌웠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고종 정부의 무능함, 둘째는 유교 사상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것이다. 구시대 사상인 유교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는 야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게 식민주의 역사학의 가장 큰 굴레다.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대한제국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해오지 않았나.”
-고종 황제가 평소 ‘국가(國家)’ 대신 ‘민국(民國)’이라 지칭한 건 어떤 의미인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정조가 ‘국가’ 대신 ‘민국’이란 용어를 먼저 썼다. 국가의 ‘가(家)’는 집안을 뜻한다. 고대 국가가 패밀리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왕조 시대의 패밀리가 누군가. 귀족가문, 다시 말해 사대부다. 정조가 ‘국가’ 대신 ‘민국’이라 부른 건 나라의 중심이 ‘왕과 사대부’가 아니라 ‘왕과 백성’이란 뜻이다. 정조는 만민의 왕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런 정조의 정신을 고종도 공유하고 있었다. 고종은 ‘적민(積民)이 국(國)이다(백성이 쌓이면 나라다)’라는 말도 했다. 서구의 근대국가 개념과도 통하는 정신이다.”
-당시는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그걸 뚫고 나가는 고종의 전략은 무엇이었나.
“조선의 근대화, 그리고 중립국 승인이었다. 당시는 일본과 청, 러시아와 영국 등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그걸 뚫고 가려면 덴마크나 벨기에, 스위스처럼 국제사회에서 중립국 승인을 받아야 했다. 우선 근대국가로서 위상을 갖추어야 했다. 1880년대 처음에 전기는 경복궁에만 들어왔다. 고종은 도시개조 사업을 통해 서울 시내에도 전깃불이 들어오게 했다. 전차를 시설할 때는 내탕금 20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근대화한 자주독립국가로 국제사회에 데뷔하고자 했다. 실제 고종의 중립국 승인 외교는 비밀리에 강하고 치밀하게 펼쳐졌고, 뒤늦게 이를 안 일제의 방해공작이 집요하게 이어졌다. ‘대한제국’이란 국호도 고종 황제가 직접 지었다.”
-왜 ‘대한제국’이라 지었나.
“고종은 이렇게 말했다. ‘조선이란 나라 이름은 뜻이 아름답고 오랫동안 썼다. 그렇지만 국호를 지을 때 태조 대왕께서 중국에 사신을 보내 ‘조선’과 ‘화령’이란 두 이름을 제시했다. 명나라 태조가 그걸 보고 ‘조선’을 골랐다. 이런 역사를 가진 국호를 가지고 자주국으로 국제사회에 나설 수는 없다. ‘조선’만큼 고대로부터 우리를 가리키는 용어로 ‘한(韓)’이라는 글자가 있다. 그 앞에 ‘대(大)’자를 붙이자. 그래서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하자.’ 그러자 신하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고 한다.”
-그래도 대한제국은 망하지 않았나.
“아니다. 그 역시 식민사학의 관점이다. 을사보호조약이나 병합은 군사강점이었다. 대한제국의 국가원수는 끝까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1919년 고종이 독살되자 장례식 이틀 전에 3ㆍ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 정신이 상해임시정부로 이어졌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면서 대한제국을 승계했다. 1945년 일제 압제에서 벗어나 48년에 정부수립을 다시 한 것이다. 대한제국 바로 알기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문제이자 세계사 전체의 문제다.”
일제는 조선왕조실록에서 고종실록을 축소해 기록토록 했다. 대신 일본 공사관에서 본국으로 보내는 문서에는 당시 근대국가 대한제국에 대한 세세한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 패망 직전 공사관은 명령을 받고 모든 문서를 불태웠다. 당시 신석호라는 조선인 직원이 문서에 대한 유리필름을 따로 빼돌려 땅에 묻었다. 미군정이 들어서자 문서를 다시 복구했다. 이 명예교수의 대한제국 연구는 일제가 미처 태우지 못했던 공사관 서류에 근거한다. 굉장히 구체적인 사료다.
소름 돋네요. 역사적 순간에 꼭 의인이 나타나요.
'패망 직전 공사관은 명령을 받고 모든 문서를 불태웠다. 당시 신석호라는 조선인 직원이 문서에 대한 유리필름을 따로 빼돌려 땅에 묻었다. 미군정이 들어서자 문서를 다시 복구했다.'46. 울
'18.2.15 6:11 PM (223.62.xxx.15)시어머니 증언.
철도는 지네들이 쌀같은거 수탈하려고 처음에 깔은것임.
숫가락 하나까지 총알 만든다고 뺏어가서 숨겨놓고 씀.
쌀도 하도 가져가서 몰래 숨기고 먹어야했음.
우리나라를 위한 근대화?
저 쪽빠리들하고 그걸 옹호하는 사람들은 죽어야한다에.한표에요. 양심은 어디에? 시브럴놈들.47. 감사
'18.2.15 6:36 PM (175.192.xxx.216)이리 또 역사공부하네요. 원글님, 여러 댓글님들 감사해요 ~
"대한제국은 무기력하지 않았고, 고종은 무능한 황제가 아니었다"
[중앙일보] 입력 2017.10.11 17:35
120년 전 오늘이었다. 고종 황제는 근대국가의 시발점인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그는 ‘국가(國家)’라는 말보다 ‘민국(民國)’이란 용어를 더 즐겨 쓰던 군주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고종이 나라를 지칭하며 ‘국가’ 대신 ‘민국’이라 부른 예가 70%나 된다. 당시 고종을 직접 인터뷰했던 선교사들이 남긴 글에는 ‘고종 황제는 나라에서 지식이 가장 높은 인물이다. 신하들이 잘 모르는 게 있으면 군주를 찾아가 물어볼 정도였다. 고종 황제는 그 자리에서 즉답을 하거나 무슨 책을 찾아보라고 일러주었다’고 돼 있다.
이태진 명예교수는 "건국절 논란은 우리가 근현대사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근대국가인 대한제국이 상해임시정부로, 다시 대한민국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불필요한 논란이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알던 고종과 다르다. 흔히 대한제국과 고종 황제는 그저 ‘무기력한 나라, 무능한 군주’로만 알고 있다. 역사 시간에도 그렇게 배웠다. 25년째 대한제국 역사를 연구 중인 서울대 이태진(74) 명예교수는 “그건 철저히 일제 식민사학의 관점이다. 우리도 모르게 거기에 젖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연구실에서 이 명예교수와 마주 앉았다. 그에게 ‘대한제국의 의미와 일제의 왜곡’에 대해 물었다.
-대한제국은 어떤 나라였나.
“대한제국은 자주적 근대화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나라다. 1899년에 이미 서울에 전차가 달리고 있었다. 당시 일본 도쿄에는 전차가 없었다. 1902년에야 일본에 전차가 생겼다. 1900년대 초에 러일전쟁을 위해 서울에 온 일본군이 서울 시내를 달리는 전차를 보고 신기해하는 자료 사진까지 있다. 고종 황제는 차관 도입을 추진하고,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자력으로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고 국제사회로 진출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광산개발과 철도부설, 지폐 발행을 위한 중앙은행 설립, 전기와 전신 사업 등에도 엄청 애를 썼다.”
-대한제국을 일제는 왜 무능한 나라로 왜곡했나.
“식민통치의 합리화를 위해서였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에 대한제국의 근대화는 자력으로 이미 진행 중이었다. 일제는 그걸 부인해야 했다. 조선이 괜찮은 나라였다면 식민지배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래서 ‘망국책임론’이란 프레임을 씌웠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고종 정부의 무능함, 둘째는 유교 사상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것이다. 구시대 사상인 유교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는 야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게 식민주의 역사학의 가장 큰 굴레다.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대한제국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해오지 않았나.”
-고종 황제가 평소 ‘국가(國家)’ 대신 ‘민국(民國)’이라 지칭한 건 어떤 의미인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정조가 ‘국가’ 대신 ‘민국’이란 용어를 먼저 썼다. 국가의 ‘가(家)’는 집안을 뜻한다. 고대 국가가 패밀리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왕조 시대의 패밀리가 누군가. 귀족가문, 다시 말해 사대부다. 정조가 ‘국가’ 대신 ‘민국’이라 부른 건 나라의 중심이 ‘왕과 사대부’가 아니라 ‘왕과 백성’이란 뜻이다. 정조는 만민의 왕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런 정조의 정신을 고종도 공유하고 있었다. 고종은 ‘적민(積民)이 국(國)이다(백성이 쌓이면 나라다)’라는 말도 했다. 서구의 근대국가 개념과도 통하는 정신이다.”
-당시는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그걸 뚫고 나가는 고종의 전략은 무엇이었나.
“조선의 근대화, 그리고 중립국 승인이었다. 당시는 일본과 청, 러시아와 영국 등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그걸 뚫고 가려면 덴마크나 벨기에, 스위스처럼 국제사회에서 중립국 승인을 받아야 했다. 우선 근대국가로서 위상을 갖추어야 했다. 1880년대 처음에 전기는 경복궁에만 들어왔다. 고종은 도시개조 사업을 통해 서울 시내에도 전깃불이 들어오게 했다. 전차를 시설할 때는 내탕금 20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근대화한 자주독립국가로 국제사회에 데뷔하고자 했다. 실제 고종의 중립국 승인 외교는 비밀리에 강하고 치밀하게 펼쳐졌고, 뒤늦게 이를 안 일제의 방해공작이 집요하게 이어졌다. ‘대한제국’이란 국호도 고종 황제가 직접 지었다.”
-왜 ‘대한제국’이라 지었나.
“고종은 이렇게 말했다. ‘조선이란 나라 이름은 뜻이 아름답고 오랫동안 썼다. 그렇지만 국호를 지을 때 태조 대왕께서 중국에 사신을 보내 ‘조선’과 ‘화령’이란 두 이름을 제시했다. 명나라 태조가 그걸 보고 ‘조선’을 골랐다. 이런 역사를 가진 국호를 가지고 자주국으로 국제사회에 나설 수는 없다. ‘조선’만큼 고대로부터 우리를 가리키는 용어로 ‘한(韓)’이라는 글자가 있다. 그 앞에 ‘대(大)’자를 붙이자. 그래서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하자.’ 그러자 신하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고 한다.”
-그래도 대한제국은 망하지 않았나.
“아니다. 그 역시 식민사학의 관점이다. 을사보호조약이나 병합은 군사강점이었다. 대한제국의 국가원수는 끝까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1919년 고종이 독살되자 장례식 이틀 전에 3ㆍ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 정신이 상해임시정부로 이어졌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면서 대한제국을 승계했다. 1945년 일제 압제에서 벗어나 48년에 정부수립을 다시 한 것이다. 대한제국 바로 알기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문제이자 세계사 전체의 문제다.”
일제는 조선왕조실록에서 고종실록을 축소해 기록토록 했다. 대신 일본 공사관에서 본국으로 보내는 문서에는 당시 근대국가 대한제국에 대한 세세한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 패망 직전 공사관은 명령을 받고 모든 문서를 불태웠다. 당시 신석호라는 조선인 직원이 문서에 대한 유리필름을 따로 빼돌려 땅에 묻었다. 미군정이 들어서자 문서를 다시 복구했다. 이 명예교수의 대한제국 연구는 일제가 미처 태우지 못했던 공사관 서류에 근거한다. 굉장히 구체적인 사료다.
http://news.joins.com/article/2200233948. 윗분
'18.2.15 6:59 PM (211.195.xxx.35)소중한 자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49. 푸른연
'18.2.15 7:43 PM (39.113.xxx.80)일본은 다른 서구열강들과는 또 다른 식민지배를 했죠.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서구 열강들도 인도나 베트남에 악랄하게 자원 수탈하고 자유도 어느 정도 억압했지만, 일본은 또 차원이 달랐어요.
서구 열강들은 그래도 그 나라의 역사나 존재 자체는 인정해 주었어요.
일본은 자원 수탈, 자유 억압과 또 다른 정신적인 쪽으로도 간교하게 공작을 펼쳤죠.
그게 뭐냐면, 일본의 대륙나라들에 대한 뿌리깊은 열등감과도 맞닿은 역사 왜곡, 조작질입니다.
고대사부터 시작해서 손을 안 댄 곳이 없습니다. 조선이란 나라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애려고 했던
차원이 다른 식민지배였습니다. 말도 글도 역사도 모두 없애서 후대들이 일어설 수 없도록.....
식민지배 전반부는 총칼로 무자비하게 학대하다가 3.1운동이 일어나니까 전략을 바꿨잖아요.
채찍과 당근, 즉 이중 정책, 유화책과 강경책을 같이 썼어요. 조선을 인정해 주는 척하면서
독립운동가나 지식인들을 분열시켜 놨어요.
식민사관도 교묘하게 심어놨죠. 백년이 가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그 식민사관.....
자신의 조상들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 역사를 수치스럽게 여기게 하라는 식민사관....
그래서 지금 1945년으로부터 무려 75년이 되었는데도 이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오고 있고
한국인들도 식민사관의 오랜 영향에 알게 모르게 젖어 있습니다.50. ..........
'18.2.15 9:31 PM (180.68.xxx.136) - 삭제된댓글남편이 뉴라이트?
내 남편이었으면 주둥이를 확.51. 덕분에
'18.2.15 10:32 PM (223.33.xxx.241)저도 많이 알게됐어요. 기억하려 댓글 답니다.
52. Counter punch
'18.2.16 12:24 AM (67.40.xxx.11)레이모와 레이모 두둔한 포춘 기사에 반박하는 글 나왔네요.
https://www.counterpunch.org/2018/02/14/ramo-reminded-south-koreans-of-the-bru...53. 아쥼마
'18.2.16 1:32 AM (157.160.xxx.196)위에 좋은 말 많이 있지만, 그냥 숫자만 보여 드리세요.
1910 한국 국민 평균 수입이 $538
1945 한국 국민 평균 수입이 $605
--------------------------------------------
35년 동안 엄청 발전 시켜 줬네요 일본이... 아리가또.
근데....
1952 한국 국민 평균 수입이 $809
1953 한국 국민 평균 수입이 $1050 (전쟁이 언제 였더라?)
-------------------------------------------------
전쟁중에도 이렇게 숫자가 변동 했는데..... 그럼 우리는 전쟁 덕분에 잘 살게 됭거?
2015 한국 국민 평균 수입 $346000 ( 여기 까지 밖에 데이타가 없어서...)
이걸 뭐라고 하죠? rate of change... 이거 보면, 마 쫌.... 그 입을 다물라...하실 수 있을 듯...
그럭고, 식민지 엿던 많은 나라들도 다 ~~~ 나중에 한국 처럼 잘 살게 되었나? 참.....54. 아쥼마
'18.2.16 1:41 AM (157.160.xxx.196)사실 전 별로...역사에 별 관심도 없고, 저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주의라...
누가 뭐라건, 긍가.. 뭐 이러고...
또 제 외할배가 독림운동 한다고 할매가 엄청 고생해서요, 더더욱 정치 역사 이런 거...휩쓸리는 거 싫어요.
그러고, 일본 음식도 좋아 하고 일본 사람도 좋아 하고요.
하지만, 수학을 공부 해서 인지, 말이 안 되는 건 좀 그러네요. 위에 숫자 보시고, 긍가~ 생각 하셨던 분들, 그건 아니지...로 생각 하시길...55. 아줌마
'18.2.16 1:47 AM (157.160.xxx.196)근데, 위에 역사 글 중, 대한 제국인가 고종인가에 대한 건...솔직히...전 그렇게 생각 하지 않아요.
조선왕조 말년은 정말 ㅠㅠ... 누군가가 들고 일어 났었어야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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