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희열/ 김삿갓 문학관에 다녀왔는데 김삿갓이 누구예요? 글 잘 쓴다고 감탄하셨잖아요?
(황교익/ 잔재주만 부리고 말장난만 한 글 아닌가?)
유시민/ 그 정도의 말장난은 아무나 못함. 대가만이 할 수 있는 것임.
한곳에서 가장 오래 산 게 '가련'이란 여자와 살 때였다는데, 그 '가련기시'라는 시를 좀 보소~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며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또한 한문과 한글의 음차를 이용해서 욕을 한 시들도 뛰어나잖음? ㅋㅎ
유희열/ 근데 왜 그렇게 삿갓을 쓰고 다닌 거에요?
유시민/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석으론 영월도호부에서 주최한 백일장에서 나온 시제가
'홍경래의 난' 때 반란군에 맞섰던 관리와 항복해버린 관리의 행위를 비교하라는 것이었는데 거기서 1등을 먹었음.
항복한 김익순 파를 엄청 비판한, 동네 과거에서 나올 법하지 않은 수준 높은 글이었음.
1등 먹고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자랑했더니, 어머니 왈~
"니가 욕한 그 역적이 바로 너의 할아버지다~"
출생의 비밀이 나온 거지. ㅋㅎ
유교에서는 효가 도덕의 근본인데 할아버지를 공개적으로 모욕했으니 나는 이제 하늘을 볼 자격이 없다, 며
큰 삿갓을 쓰고 방랑하며 살았다는 해석이 있음.
황교익/ 또 하나의 해석은 김삿갓이 할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 과거 시제를 보고
'옛다~ 이게 당신들이 원하는 답이지?' 라며 던져주고 나와 그 고통을 못이기고 평생 떠돌았다는 설임.
이 가설은 이문열의 소설 '시인'에 나온 것임.
유현준/ voyeurism (관음증)이라고 있잖아요~ 숨어서 타인을 엿본다는 건데, 그럴 때 더 권력을 가지는 거거든요.
삿갓이나 모자를 쓰는 건 눈빛을 가리는 거라 자신을 은폐하고 남을 엿보며 권력을 느낀 것일 수도...
(이때 장동선이 덧붙인 오스카 와일드의 어록.)
"당신이 정치가나 법관이 되고 싶다면 노력으로 그것이 될 것이나, 그건 당신의 벌이다.
당신이 되고 싶은 것이 없이 역동적인 삶을 살면서, 자신이 아는 바를 확신할 수 없다면
당신은 결코 어떤 것도 될 수 없을 것이나, 그건 당신의 상이다."
유희열/ 그럼 유 작가님 정치하실 때 벌 받는 느낌이었어요?
유시민/그렇지.
모두 / 지금은 방랑시인?
유시민/ 방랑 예능인~ ㅋㅋ
# 정선 사북 탄광촌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 다녀온 소회를 나누며
유시민/ 2004년에 폐광된 그때 상황 그대로 시간을 멈춰둔 곳임.
광부와 주민들이 보존의 의미를 주장하여 노동자들이 사용했던 물품과 장비, 시설을 고스란히 보존 중.
산업에너지와 난방을 다 석탄으로 했던 7080 시대에 강원도 탄광의 석탄으로 우리의 산업화가 이뤄졌음.
이 때 '선탄부'라고 석탄의 불순물을 가려내는 작업을 한 여성들이 있었는데, 남편이 광산에서 사망한 경우가 많았음.
그 앞산은 터널에서 빼낸 폐석을 쌓아놓은 것임.
이곳은 박물관, 전시관이 아니라 유적지임.
사북사태가 일어났을 때, 마치 노동조합의 폭력행사로 인해 한국 사회가 무정부 상태에 빠진 듯이
신군부가 보도를 양산해서 사회를 얼어붙게 만들었음.
사북항쟁은 결국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와 국회 해산으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용으로 이용되었음.
# 유희열/ 사북 탄광촌에 내려진 대통령 하사품 인상깊었어요. 변천사를 설명해주시죠~
유시민/(고기 드시기에 쩝쩝 집중한 와중에 ㅋ)
대통령 하사품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전두환 땐 점퍼에 '전두환 각하 하사품'이라는 식으로 명찰이 다 붙어 있음.
노태우 땐 '대통령 선물'이라는 명찰이, 김영삼 땐 명찰은 사라지고 점퍼의 브랜드 네임이 콕 박혀 있음.
우리 현대사가 뭘 바꿔왔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임.
유희열/ 인감증이라고 신분증 역할을 하던 것도 인상깊었어요. 설명 쫌~
유시민/ 동원탄좌에서 발행한 증명서로 일종의 신용카드였음,
그것만 있으면 사북 지역 전역에서 외상이 가능했음.
그 증명서가 재밌는 건 본인 외 여성(엄마 혹은 아내)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다는 점.
즉 총각 엄마도 그 카드로 외상을 할 수 있었음.
근데 기혼자는 부인 사진으로 바꿔야하는데, 경제권을 놓기 싫어서 엄마들이 안 바꿔줬음. ㅋㅎ
아무튼 내가 오늘 느낀 건, 이제 탄광촌이 다 사라지고 세 곳 정도만 남았지만
우리가 잊는다고 역사에서 없어질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
너무나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고 병든 곳이라는 것.
그들의 노동이 우리가 방을 데우고 애들을 키우고 공장을 돌리고 불을 밝힌 기반이라는 것.
탄광촌은 이제 타고 남은 연탄재 신세가 되었는데, 안도현의 시가 거기 걸려 있었던 건 아주 적절했음.
-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단종의 유배지 - 단종어소에 다녀온 장동선이 얘기를 꺼내며
유희열/ 일단, 단종은 어떤 사람이에요?
유시민/ 세종의 장손. 맏아들 문종이 즉위 2년 만에 죽고, 그 아들 단종이 12세에 보위를 물려받았음.
3년 후, 삼촌 수양대군이 (세조) 그 주변을 정리하고 단종을 귀양 보낸 후 욍위에 오름. 이른바 '계유정난'임.
단종의 업적이란 건 없음. 그냥 운명으로 왕이 되었고 17 살에 죽었음.
# 유희열/ 세조는 어떤 사람인가요?
유시민/ 왕으로서의 업적은 많음. 대표적으로 '경국대전'을 만든 것.
또한 세금, 군사 제도를 혁신한 부분도 큼.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것만 아니면 세종까지는 아니라도 정조에 버금가는 왕으로 기록될 수 있었을 것임.
근데 지금 우리의 마음에 남은 건 단종임. 무당들도 단종만 모심. ㅋㅎ
세조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해보자면,
'목적이 정당하다면 옳지 않은 수단을 써도 되는가?' 인데 우리의 대답은 '안 된다'인 것임.
단종의 모든 얘기- 단종이 거친 모든 장소- 는 몇백 년 동안 사라지지 않았으나
세조의 움직임에 대해선 아무도 기억하지 않음.
즉 정당하다는 전제를 깔더라도 옳지 않은 방법에 대한 단죄인 것임.
영월의 단종을 기념하는 모든 장소들은 '세조처럼 살면 안 된다'는 우리 마음의 표현인 것임. (일동 박수)
# 부석사에 다녀온 유현준이 현재 우리 거주지의 동굴론을 얘기하던 중)
유시민/ 동굴 말고 자연이 축조한 건축은?
유현준/ 건축의 제 1원칙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유시민/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유현준/그렇죠! 역시 공부 잘해~ ㅋㅋ (상으로 두부부침 받음.)
유현준/ 건축의 제 1 원칙은 중력을 이겨야 하는 건데 모든 자연이 중력을 이긴 형태들임.
산, 나뭇가지 등등이 다 중력을 이기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
유희열/ 아~ 그래서 가우디가 '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구나~
유현준/ 가우디가 똑똑한 게, 실을 늘어뜨려서 나오는 2차원 포물선을 모아모아 그걸 뒤집은 형태로 건축을 했음.
이어진 유희열의 질문에 유현준이 버벅대자
유시민/ 시청률 잘 나와서 이 프로가 유럽으로 진출하게 되면 내가 다음을 설명해줄게~ (일동 까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