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보니. 제 컴에 있는 시즌 2 워딩을 공개해줄 수 없냐는 말씀이 마음을 건드려서 올려봅니다.
시즌 1과 달리 저 혼자 보려고 유시민 워딩 부분만 타이핑한 거니
맥락이 잘 안 잡혀서 읽기가 불편할 수도 있겠어요. 감안하시고요~
하루에 한 편씩 10 회 정도 올리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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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편
(처음 만나서 안동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유시민이 신입 유/장 두 박사의 업적을 소개하며)
#유시민/ 유현준 교수의 책을 읽고 아내와 함께 우리 노력하자고 말한 게 있어요.
식탁을 많이 활용하자~
우리의 아파트 구조가 방 사이의 소통이 어려운데, 거실의 식탁을 잘 활용하면(독서, 신문읽기, 대화를 다 여기서 하면) 가족 간 교감에 큰 도움이 되겠더라~
그러니 식탁은 질감이 좋고 두께가 있는 것, 쓰면서 기분 좋은 좀 좋은 걸로 사자~
(유현준/ 우리나라는 식탁보다 tv 시청에 최적화된 소파에 큰 돈을 쓰죠. 바꾸기를 권해요.)
# 장동선/ 시선을 통한 인지가 서양과 동양이 다름.
직접 시선을 마주치면 서양인은 상대가 나에게 관심이 있고 호감을 느낀다고 생각해서 즐거운데,
동양인은 정면 시선을 받으면 상대가 자신에게 화가 났다고 생각해서 불쾌감을 느낌.
# 유희열/ 하회마을이 유명해진 이유가 뭐죠?
유시민/ 지리적 요건으로 조선시대 말기의 모습이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임.
서애 류성룡의 고택(양진당)을 비롯한 다른 대갓집에도 부엌에 문이 없는데,
배고픈 이들이 언제든지 와서 기척 없이 먹고 갈 수 있도록 한 베풂이었음.
(유현준이 거들기를)한옥에 들어가서 그 집의 경제 정도를 알려면 천정의 보를 보면 되는데 안동 대갓집들의 보는 대개 궁궐에나 쓰이는 수준임.
#한옥의 처마가 버선코처럼 들린 이유는 나무 기둥이 비를 안 맞게 하기 위해서였음.
우리의 전통 건축의 기본은 '나무를 물에 젖지 않게 한다'였음.
#유희열/ 안동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류성룡'이었어요. 어떤 분이세요?
유시민/ 소년 급제를 해서 선조 세자시절에 이미 중앙정부에 진출했고, 선조 즉위 후 보좌했음.
30 년 간 재직하며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을 다 역임했고, 도체찰사로 병직까지 맡았던 관직 왕이었음.
임진왜란 직전 선조가 인물 추천을 원했을 때, 이순신과 권율을 추천했음.
이순신은 곧고 강직한 성품 탓에 벼슬길이 늦었는데, 류성룡의 추천으로 7등급 정도 높은 관직에 올랐음.
아무튼 전란 기간에 명나라 상대로 외교도 잘하고 결국 7년 간의 전쟁도 매듭지었음.
근데 이순신이 돌아가신 그 날, 그를 견제하던 반대파에 의해 류성룡도 파직되었음.
그후 사표를 내고 고향 하회마을에 와서 옥연정사를 짓고 몇 년에 걸쳐 전쟁의 기록을 남김.
그 책이 바로 16 권으로 된 '징비록'임.
유시민/ 내가 징비록을 꼼꼼 읽어보니, 이 양반이 공문서를 다 들고 낙향했음.ㅋㅎ
사표 쓰면서 징비록을 기록할 계획을 이미 가졌던 거라~
왜란 전의 조선의 상태와 진행 전란의 진행경위, 경과를 자세히 기록했음. 이순신 죽음까지도 거기에 다 실려 있음.
근데 이건 앞부분이고 뒤의 열 권 정도는 자신의 기록의 진위를 인증하기 위한 공문서(장계) 였음.
'징비록'의 뜻은 '시경'에 나오는 말인데,
징; 지난 시기의 일을 꾸짖어서 비: 후환이 없도록 경계한다... 임.
즉 왜를 욕하는 게 아니라 조선을 비판하는 내용이고 조선왕조실록보다 더 자세하고 정확한 기록임.
# (장동선 끼어들며)
유전자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상생이 맞는 조합이 있어요.
혼자서는 못하는데 같이 갔을 때 위대한 업적을 내는 경우가 많아요.
류성룡이라는 파트너가 없었으면 이순신의 업적도 없었을 것 같아요~
유시민/ 그렇지. 이순신이 강직하고 곧았으나 왜 두려움이 없었겠나.
하지만 왕 다음 가는 권력 넘버 2가 자신을 천거하고 믿어줬으니 힘을 얻었을 것임.
(장동선/ 인간의 뇌는 사회적 뇌로 진화한 후에야 힘을 발휘하므로 자신을 믿어주는 한두 사람만 있어도 굉장한 힘을 내죠~
#(탈 박물관에 다녀온 다른 패널들의 이야기에 붙여)
유시민/ 하회탈은 그 사회적 기능이 축귀를 하는 다른 탈들과는 달랐음.
탈은 계급집단의 전형 - 신분을- 표현한 건데, 최하위 층의 탈을 쓰고 양반댁 마당에서 그들을 조롱하는 마당극을 했음.
양반들이 어떻게 그걸 용납했을까~
장동선/ 1인칭과 3인칭의 화법 차이 때문이었을 것임. (흔히 자기 얘기를 친구 얘기인 양 하는 것)
제 3자로 뇌가 인지하면 직접적인 공격으로 느끼지 않기 때문임.
# (탈의 현대판에 관한 얘기 중) 유희열/ 닉네임이나 아이디도 자신을 일정 부분 투영시키잖아요~
`유 작가님 아이디는 뭐에요?
유시민/ 이메일 아이디는 '프리맨'. 너무 자유가 그리워서 정계 은퇴하고 바꾼 것임.
학생운동할 때나 정치할 땐 사회 요구에 나를 맞춰야 했는데,
그게 의미는 있으나 내 색깔을 못내고 세상의 요구에 맞춰야 하는 게 힘들었음.
(난 그를 온라인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닉네임 '첨맘'을 가장 사랑함.)
# 유희열/ 퇴계 이황은 뭐하신 분이에요?
유시민/ 퇴계의 최고 벼슬이 성균관 대사성이었는데 지금으로 보면 국립대학 총장임.
홍문관 대제학 같은 관직을 79 번이나 고사하셨음.
벼슬은 서애가 높았으나 학술적 결과물은 퇴계가 훨씬 컷던 것임.
퇴계의 인품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
59세에 젊은 학자 (기대승)로 부터 그를 비판하는 편지 한 장을 받음.
그에 정중한 답장을 보내고, 후에 기대승이 찾아와서 토론을 함. 그걸 9 년 간 했음.
조선 중기에 일어났던 유례없던 학술 토론이었음.
그 서한과 토론을 모은 책이 나왔으니 '양선생 왕복서'라는 책임.
무명의 청년의 편지를 받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구애받지 않고 그런 토론을 했다는 게 대단함.
조선 오백년을 통털어 가장 유명하고 큰 철학 논쟁이었음.
"하신 말씀을 반복하여 궁구해보고서 끝내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 기대승
"그대의 논박을 듣고 나서 더욱 잘못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 - 이황
# 유시민의 친절한 사단칠정 논쟁 해설
유시민/ 촉발된 건 사단칠정 론을 편 맹자이론 때문이었음.
사단(인간의 선한 본성) : 1. 약한 것을 보고 가련히 여기는 마음. 2. 좋은 일에 겸양하는 마음.
3.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끄러워하는 마음. 4.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마음.
칠정 (인간의 감정): 희로애구애오욕 (1.기쁨 2 분노 3 슬픔 4 두려움 5 사랑 6 미움 7 부끄러움)을 말함.
이걸 퇴계가 좀 모호하게 표현했음. '사단으로 인해 칠정이 일어난다~'
즉 선한 본성이 다양한 감정으로 표출된다고 봤음.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공부해서 사단을 잘 가꾸어서 칠정을 콘트롤해야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했음.
그 주장에 기대승이 반박했음. "사단은 칠정의 부분집합일 뿐이다."
칠정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고 거기에서 좋은 것만 뽑은 게 사단이다.
(유현준 끼어들며: 누가 이겼어요?")
유시민/ 내가 판단한다면 기대승이 옳지.
(황교익/ 기대승이 인간에 대한 이해 품이 더 컸네.)
(유현준/ 전 아닌데요~ )
(유시민/ㅋㅋ 그렇게 이 논쟁이 시작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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