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1학기 기말고사 대비기간이 생각난다.
중3내신반에 편성되어 성적순이 아닌 학교별로 반이 구성되었는데
공교롭게도 학원에서 제일 애지중지 하는 전교등수 한자릿수 학생들과
전교생의 총인원을 짐작케하는 등수의 학생들이
노란 카레에 주황색 당근섞이듯 섞여 있는 반이 탄생하게 되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학원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그반의 담당이 내가 되었을때
[피할수 없으면 즐겨,선생님]
이라는 조언으로 치환된 위로를 받을때만 해도 앞으로의 4주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이 되지 않았었다.
나는 즐길 수 없으면 피하는 사람인데 ..
그 반의 첫 수업.
똑같은 교복에, 똑같은 시험범위에
평균키 165cm 에서 ±10cm 의 범위내에 이상치가 존재하지 않는 고만고만한 학생들이 앉아있었다.
분필을 잡고 칠판에 방정식의 비읍자를 쓰기도 전에
한 학생이 건의를 했다.
"어차피 진도 한번 뺀 부분이니까 그냥 각자 풀고 모르는것만 질문하는 건 어때요? 전에 선생님도 그렇게 하셨는데 .."
뭐 나야 의자에 편하게 앉아서 조근조근히 첨삭만 하면 될 일이므로 흔쾌히 조와용,하고 승낙했다.
그때부터 교실안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잘하는 학생들은 50분동안 100문제는 풀어제낀다. 그 와중에 가끔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내 옆으로 와서
질문한다. 뭔가 대꾸를 다섯어절 정도 해주면 내 말을 중간에 끊고 "아,맞다.감사" 이러고선 다시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못하는 학생들은 떠든다. 내가 한번 쳐다보면 그 순간 3초정도는 닥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다시 고개를 제자리로 돌리는 순간
또 떠든다. 어떤새끼는 뭘 처먹는다. 그래도 막되먹은 새끼들은 없어서 대놓고 먹진 않고 몰래 먹는다.
교무실로 돌아와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을 보니 개판이다. 개중에는 100점만점에 8.3점도 있다. 2개 맞았나보다.
중3 1학기 기말고사 시험범위는 보통 이차방정식과 이차함수이다.
100점만점중에 최소 30점에서 최대 50점정도 되는 문항수의 문제들은
나올문제들이 뻔하다.사실 아무리 바보 똘추라도 무한 반복하면 할만한 것들이다.
근의 공식에 대입하는 쌩 기초 문제들과 다소 어려운 문제프린트를 준비해서 다음수업에 들어갔다.
"최소한 이건 풀어야 쉬는시간 줄꺼야."
거지같은 새끼들한텐 근의공식 프린트를 던져줬다. 그 인간들은 [근]이 뭔지도 모르는 인간들이다.
"x가 근이다."
"x가 근이라고."
"x가 근이거든."
계속 x가 근이라고 주입시켜 주면서 근의공식을 외우게 했다.
차마 근의공식∥까지 알려주면 감당못할 하극상이 일어날것 같은 예감에
그런건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근의공식|만 외우게 했다.
(계수의 정의와 계수에서 "계"는 ㄱ+ㅕ+ㅣ 라고 어금니 꽉 깨물고
웃으면서 친절하게 학생의 손을 붙잡고 손바닥위에 써주기도 했다.)
a와b와c도 모자라서 루트까지 섞여있는 근의공식. 게다가 분수의 형태.
수업시간 50분동안 그거 하나 못외우는 병신같은 새끼들을
그래도 한문제 맞춰보게 하겠다고 아둥바둥발버둥하는 내 처지가 불쌍하다.
그 다음시간.
간신히 외웠던 새끼들도 다 까먹었다.
살인충동을 억누르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며칠동안 반복하니 그 반에서 근의공식에 대입하는 문제를 못푸는 학생들은 사라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근의공식∥를 제안했다.
이렇게 심플한것을 왜 이제사 알려주는거냐며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학생들과
됐다고,차라리 두자리수 제곱을 하겠다고,공식을 하나 더 외우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라며 거부하는 학생들도 생긴다.
뭐 알아서 해라.
(결국 약분의 벽에 부딪쳐 모두 근의공식 ∥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술형문제로 근의공식을 유도하는 문제가 출제된다는 소문(?)이 들렸다.
무려 10점짜리.
이항을 하면 부호가 바뀐다는 것도 모르는 학생들인데.
아니,이항이 뭔지도 모르는 학생들인데.
아니,항 자체의 정의도 모르는 학생들인데.
근의공식유도하는것만 몇시간이고 반복했다.
못하는 새끼들끼리 모아놔도 개중에는 해내는 애들도 끼여있기 때문에
꼴통새끼들도 지만 못하는게 결국 쪽팔려서 하기는 한다.
인수분해를 이해시키기엔 너무 늦었으므로
그냥 객관식에 나온 보기들을 대입해서 성립하는것을 답으로 찍으라는 눈물의 방법도 알려주었다.
3x에 5를 대입하면 5x가 아니냐고 묻는 학생의 입을 때리고도 싶었다.
불현듯 대학때 생각이 난다.
복소해석학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실해석학도 간신히 B학점을 맞은 나는
절대 그 과목이 이해가 되질않았다.
게다가 그 과목의 교수님은 부분점수따위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중간고사를 빵점맞고야 말았다.
빵점을 맞은후 그 과목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에 휩싸여
출석만 한채 맨뒤에 앉아서 잡지책이나 훑어봤고
그런 나를 교수님께서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무시해주셨다.
결국 기말고사도 빵점을 맞은채
출석 100%에 레포트 100% 제출(물론 다 베꼈다)에도 불구하고
F학점이 나왔다.
(4학년때 땜빵하느라고 개고생했다. 결국 D로 올리는데 성공했다. 젠장할)
대학생까지 되어서 왜 밥 안떠먹여주냐를 논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못하는 학생들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는 얘기다.
기초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학생들은 한심하다.
하지만 정작 더욱 힘들어하는건 그 학생들 본인이다.
그동안 공부를 해두지 않은건 본인들의 책임이 맞지만
뒤늦게 하고싶어도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쩔수없이 포기해버리는 학생들이 생기는건
가르치는 자의 책임도 있는것 같다.
이차함수에서는 위로볼록,아래로볼록과 좁은 폭,넓은 폭을 찾는 문제에서
절댓값이 뭔지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쌍욕해가며 설명해주고,
(왜 -0.5가 -0.7보다 큰지,이해시키는데 하루의 팔할을 써먹기도 했다 히잉)
지들도 맞추는 재미가 생겼는지 히히덕거리면서, 서로를 무시하면서 연습장에 낙서가 아닌 뭔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방정식의 근의공식이(판별식부분) 함수에도 쓰일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진짜로 가슴벅차했던 학생들도 있었다. (진짜 웃겼다 ㅋㅋㅋ)
오히려 보충은 잘하는 학생들 위주로 해줬다. 수준있는 문제들로만 구성된 프린트로 따로 더 봐주니 좋아라 했다.
이렇게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했던 4주간의 시험대비기간이 끝났다.
결과는.
잘하는 애들이야 냅둬도 잘하니까 상관없고.
8.3점 , 12.6점 , 17점짜리 학생들은 더 이상 없었다.
못하는 학생들중 최저점이 48점이었고 그 학생을 제외하고 50점 이하의 학생은 없었다.
나는 별안간 거지같은 학생들의 우상이 되었다. (싫다고 .. !! ㅡ_ㅠ)
덕분에 나는 원장님의 하트뿅뿅을 받게 되었지만
더이상 그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다른 선생님의 밑으로 들어갔지만
복도나 계단에서 만나면 여전히 친하다.
시험대비프린트 작업을 하던중
지난 학기 생각이 나서 그냥 끄적거려봤다.
이번 중간고사에는 고1 최하위권 학생들을 맡았다.
공교롭게도 이번 중간고사 범위에도 함수가 들어간다.
유리함수,무리함수 직전까지 들어가므로 중3범위내의 함수가 전부다.
이 녀석들도 근의 공식을 모른다.
나는 지난학기보다 한살 더먹은 병신들을 데리고 내일부터 시작하는 시험대비기간에 또 똥줄을 탈것이다.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고 .. -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