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가기까지 여러 가지들
전주에서 멀지 않은 진안에 있는 위빳사나 명상터‘ 담마 코리아’에 다녀왔다. 가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정보는 거의 없었다. 위빳사나 명상이 뭔지도 몰랐다. 오히려 모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다만 인터넷사이트에서 신청할 때 거기서 지켜야 할 규칙이 주르륵 떴는데, 묵언수행, 핸드폰 통화도 할 수 없다, 참가비는 없고 이 코스를 마치고 나서야 자기 형편껏 보시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런 조항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입소문에 따르면 1인 1실이라는데 이 얼마나 좋은가.
다만 새벽 4시부터 깨어 4시 30분부터 명상을 한다는데 새벽에 도저히 일어나지질 않는 체력에 가기도 전에 도망치고 싶었다. 척추측만증에서 시작해 디스크까지 척추관련 병을 골고루 가지고 있으니 하루 종일 앉아서 명상해야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한번 해 보지. 중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도 다 하는 건데 뭐. 요즘 들어 몸이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해 낼 수 있을 지도 몰라.
10일 코스라는데 아무리 봐도 날짜 계산이 잘못인지 12일이나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본명상이 10일을 꽉 채우니 하루 전에 들어가 미리 준비하고, 다하고 나서 다음날 뒷정리를 하고 나와야 하니 11박12일.
현대를 사는 누구나 12일. 그것도 전화통화도 안 되는 시간을 빼내는 건 쉽지 않으리라. 나도 역시더라. 8월에 신청하고 10월 말에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사이 큰일 2가지가 중간에 생겨 버렸다. 이것 때문에 중간에 망설이기를 여러 번. ‘다음 기회로!’ 하면서 도망치려는데 마음이 딱 받아서 맞아! 그러질 않는다. 그러는 사이 그 일들이 나 없이도 굴러가게 풀렸다. 그러니 이제는 꼼짝 없이 묵언에 새벽 4시부터 하루 종일 틀고 앉아있는 일만 남았구나.
왜?
거기 다녀오지 않으면 안 될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가 무슨 즐거움을 줄 곳도 아닌데 온갖 방해를 뚫고 거기를 가려 했나? 스스로 한번 물어본다.
나는 무척 물질에 대한 집착이 큰 사람이다. 사실 농사일도 살림도 물질에 대한 집착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여러 해 전 아버지에 이어 친언니 올케 그리고 엄마까지 몇 년 사이에 돌아가셨다. 다 다른 인연과 모습으로 돌아가셨지만, 그런 일들을 겪으며 ‘죽음’이란 뭔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쪽의 문외한인 나에게 책이 한 권 쥐어졌다. 전에 지인들이 <신과 나눈 이야기>라든가 아바타나 <가족세우기>코스라든가 이런저런 기회를 권한 적이 있지만 별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 책은 내게 달라붙었다.
<지중해의 성자 다스칼로스> 다스칼로스는 그리스어로 ‘스승’이라는 뜻이란다. 키프로스 섬에 살다 돌아가신 어떤 스승에 대해 그리스출신의 미국사회학자가 자기가 본 대로 들은 대로 생각한대로 쓴 글로 모두 3권이다. 처음에는 이걸 잡아들면 어찌나 졸리던지. 졸다 읽다 하기를 일 년도 더 결렸으리라. 그래도 3권을 끝까지 읽었고 다시 읽으니 그제야 뭐라 썼는지 읽혔다. 그 책을 읽으며 죽음이 뭔지, 그러니까 삶이 뭔지. 남녀 간에 사랑 부모자식 간의 사랑이 아닌 인류의 사랑이란 뭔지를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책 속에 다스칼로스가 가르치는 명상법이 소개되어있지만, 글만으로 따라하려니 쉽지 않았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니 뭐하나 물어볼 길도 없고. 여기에 동감하는 이들과 만나려 했지만 찾지를 못하고 있는데 우리 동네에 명상하시는 분이 이사를 오셨다. 그래서 이웃 몇몇이 모여 작은 명상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번 정기 모임, 중간에 필요하면 번개, 이렇게. 궁금했던 것도 묻고 새로운 이야기도 만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시작을, 그리고 저녁에 자기 전에 명상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말씀에 따라 해 보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여기서 <옴니>라는 책을 만났다. 옴니는 사람은 아니고 영적존재로 꽤 스마트해 옴니의 가르침은 구구절절 쉽고 좋았다. 명상모임에서 이 책을 강독했는데 읽을 때마다 가슴에 닿았다. 그 가운데 가장 가슴을 울린 건,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도 무관심도 아니라 두려움이고. 사랑은 누구한테 아낌없이 해주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라고. 명상모임을 하고 옴니를 만나는 삼년. 내 정신세계는 많이 바뀌었다. 이 세상에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은 없다는 거. 이 가르침에 따라 선악의 2분법으로 모든 걸 가르는 습을 바꾸기까지 많은 산을 넘어야 했다.
하지만 아침 시작과 저녁 마무리 명상은 점점 흐지부지...... 몸에 딱 붙어야 하는데 이게 잘 되지 않는다. 결국 명상모임도 흐지부지.... 중심이 빠졌는데 뭔들 잘 되겠는가. 평소에는 잊고 살지만 어느 순간 놀랄 만큼 나는 내가 누군지 잊고 산다. 눈앞에 물질만 쫒아서..... 그래서 선배님께 명상 모임을 다시 하자고 하니 과거와 같은 모임은 필요 없지 않느냐면서 스스로 찾아보란다. 그래서 이런저런 명상모임에 한번 가보며 내게 맞는 명상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올여름 위파사나 명상터가 내가 살고 있는 데서 멀지 않을 곳에 있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위파사나가 뭔지는 몰라도 누구는 미얀마도 가고 인도도 가는데 나는 진안까지 못가겠는가. 인터넷에 들어가 위파사나를 검색어로 담마코리아를 찾아놓고는 ‘여보, 가을걷이가 10월말이면 얼추 마무리되겠지? 나 10월 30일부터 열흘 비워도 돼?’ 하면서 신청했다.
들어가는 날 그러니까 오리엔테이션 날
열흘 갈아입을 옷가지 챙긴 가방 들고 ‘한동안 해 주는 밥 먹고 살겠네! 좋아하면서 갔다. 10월말이니 오후 4시가 되면 해가 기울고 서늘하다. 그런데 이 날 오후부터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된서리 한번 안 와 한겨울 옷은 안 챙겨왔는데.... 그 서늘함에 남편을 서둘러 보내고 들어갔다. 낯선 곳 낯선 얼굴들 사이로. 어차피 묵언수행이라는데 아는 이가 있음 뭐하겠는가 위안을 하면서....
여기서는 필기도구도 못 가지고 들어간다. 그러니 이제부터 담마코리아에서 내가 겪은 일들은 온전히 내 기억 속에서 각색된 것이다. 오로지 내 기억에 의존해, 어쩌면 내가 받은 인상에 따라 쓰고 있는 거다. 그걸 아시고 뒷부분을 읽어주시면 고맙겠다.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보니 식당으로 오란다. 식당에 가니 자기 방 번호대로 자기 밥상이 있다. 하얀 행주로 덮인 아래에 커다란 뷔페 접시 하나와 국그릇 하나 그리고 수저 한 벌, 스텐 컵 하나. 이걸 여기 있는 기간 내내 쓰면서 내 자리에서 밥을 먹는 거다. 이날은 아직 수행 전이라 저녁을 주는 거고 앞으로는 하루 2끼에 저녁은 가벼운 걸로. 소박한 채식이지만 자원봉사자들이 정성껏 지은 밥이라 감사하게 먹었다. 게다가 참가비도 내지 않고 얻어먹는 거니 어떻게 불평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저녁 전이었는지 뒤였는지 헷갈리지만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서원을 했다. 이제부터 이 코스가 끝날 때까지 여기 규칙을 지키며 도망가지 않고 수행하겠노라고. 그러니 이 명상법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는. 그리고 이청을 드리고 나서부터는 여기 규칙에 따라 일상이 흘러간다.
이 시작부터 모든 것이 끝나는 12일째 아침까지 교육 일정과 생활규칙이 얼마나 섬세하며 잘 짜여 있는지 계속 감탄을 했다. 수없이 많은 여러 국가 인종 종교 나이를 가진 사람들에게 교육을 해 온 연륜이 느껴졌다. 그것도 숙련된 교사가 아닌 그때그때 이뤄지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조직으로 말이다. 나와 함께 코스를 지낸 사람들 가운데 남자들 쪽은 외국인이 많은 편이고 여자들 쪽도 외국인이 제법 있었다.
저녁 먹고 나서는 숙소 앞마당으로 모여 매니저가 부르는 차례대로 줄 서서 명상하는 큰방인 담마홀로 갔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담마 홀에서는 명상만 할 수 있다. 담마 홀에 가니 왼쪽은 여성, 오른쪽은 남성의 자리다. 들어가자마자 열흘간 명상하는 자기 자리가 정해졌다. 그러니까 매니저가 부른 차례가 바로 명상자리의 번호순. 명상 자리에는 커다란 명상 방석과 다리를 고일 수 있는 고임쿠션, 그리고 두툼하고 큰 담요가 하나 통째로 놓여있다. 명상실은 난방을 하지 않는지 서늘해 다들 앉자마자 담요를 두른다. 이렇게 자기 자리가 있는 건 지나고 보니 참 좋았다. 명상하러 담마 홀에 들어갈 때 내 자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지.... 명상 하는 동안도 마음이 안정된다. 눈감고 있어 뵈는 게 없지만 그래도.
교탁처럼 한단 올린 맞은편에 외국인 노년 남녀가 앉아있다. 자기소개를 하시는데 이번 명상코스를 진행하는 지도법사인 빌과 그 아내란다. 이곳 담마센터는 전 세계에 있지만 누구도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지 않고 자원봉사로 굴러간단다. 지도법사도 자기 생업을 따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데 부부가 함께 한다는 건 참 좋아보였다. 인생에서 가장 설득하기 어려운 존재가 부부 사이 아니던가.
어떻게 앉아라 손을 어떻게 해라 이런 건 없었다. 여러 번 배운 선배들 자리를 보니 모두들 자기 좋을 대로 앉는다. 그리고 실제 명상 지도는 고엔카가 하신다.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인도인이 어떻게? 명상을 지도하는 현장에서 녹음한 음성파일로. 인도식 영어로 하시면 한국인이 번역녹음으로 들려준다. 중간 중간 사람들 기침소리도 들리는 그 목소리가 묵언수행 열흘간 가장 많이 듣는 목소리가 된다.
밤 9시 넘어. 일정을 마치고 밤하늘별을 보며 숙소로 돌아오니 내 방이 나를 기다린다. 매트리스 하나와 침구, 전기장판과 옷걸이 선풍기가 다인 방이지만, 거기서는 내 맘대로 스트레칭도 할 수 있고 긴장이 풀린 모습으로 지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내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명상 첫날을 잘 시작해야지 다짐하며 잠을 청했다.
다 마친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는 날
다음날 1일로 시작해 열흘을 어찌 지냈는지는 여러분 상상에 맡기겠다. 그걸 다 알면 무슨 재미로 해 보겠는가. 그뿐 아니라 한번 참가해 본 걸로 담마코리아의 위빠사나 명상을 어찌 다 설명하겠는가. 내 기억이나 해석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고. 궁금하면 김영사에서 나온 <고엔카의 윗빳사나 10일 코스>나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이라는 책을 읽어 보시길 바란다. 명상을 마치고 돌아와 사두었으니 필요하면 빌려드리겠다.
열이틀째 날 아침 단잠에서 새벽 3시에 깨어났다. 마지막 명상에 허겁지겁 서둘지 않고 싶은 마음이 나를 일찍 깨워주었다. 담마홀로 새벽명상을 갔다. 서늘하고 어둑하지만 열흘간 내 몸과 마음을 다해 수행한 자리에 앉아 마지막 명상을 하고 마지막으로 고엔카 선생님 말씀을 들었다. 이제부터 일상으로 돌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을. 고엔카 선생님은 성직자가 아니다. 미얀마의 사업가였고 편두통 때문에 위빳사나를 배우고 14년 자원봉사를 하며 더 배우고 익혔단다. 그러다 인도에 사시는 어머님이 아프셔서 이 명상법을 가르쳐 드리며 가르침을 시작하신 분이다. 마지막까지 아내와 함께. 고엔카 선생님은 남성 수련생 지도하고 부인은 여성수련생 지도를 하면서.....
처음에는 한 시간 앉아 있으려면 어깨고 목이고 허리고 다리고 안 아프고 안 저린 곳이 없었는데..... 이제는 한번 앉으면 한 시간 미동도 하지 않고 가뿐히 앉아있을 수 있다. 며칠째였는지 여하튼 중간에 ‘강한 결심의 날’이 있다. 한 시간 동안 손끝 하나 발끝하나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어 보리라는 강한 결심. 처음으로 그걸 실행하는데 어쩜 그게 가능하더라. 그리고 놀라운 건 한 시간이 지나 몸을 풀고 일어서는데 온몸이 가뿐하게 뜨는 것 같은데.... 내 기억에 스무 살 때도 그렇게 가뿐했던 적이 없는 듯, 허리도 목도 다리도 아프지 않더라. 엉덩이만 눌린 감각이 남아있을 뿐. 기적이다. 기적이었다.
그 뒤부터 마음을 먹으면 그게 되더라. 두 시간은 몰라도 한 시간은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렇다면 그 전에 느꼈던 온몸의 고통은 뭔가? 바로 그게 담마에서 가르치는 명상법이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고타마 싯다르타는 물리학자였다. 몸과 마음의 물리학자. 고타마는 이천오백년 전에 이 세상의 모든 게 파동이라는 걸 알았단다. 사람의 모든 고통은 몸과 마음에 맺힌 매듭과 같은 것. 이런 인식에서 몸과 마음의 파동에 매듭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찾은 거였다.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로 그 보리수나무 아래서. 그걸 담마코리아에서 하는 열흘간의 위빳사나 명상코스에서 알려준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자기 몸을 열쇠로 하여, 우리 무의식 깊이 잠겨있는 마음의 고통까지 풀어낼 수 있는 열쇠를.... 그리고 단지 알려주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열흘간 자기 몸으로 직접 익히게 해준다. 머리와 몸으로 함께.
모든 명상을 마치자 이제부터 우리는 구수련생이 되었다. 첫 열흘코스는 마치 통과의례인 거다. 이제부터 우리도 자원봉사자가 되어야 한다. 다음에 들어올 이들을 위해 청소, 세탁, 식기세척과 배치, 그리고 돈 후원까지. 열흘간 우리에게 어떤 일도 주어지지 않았다. 단지 명상하는 일만 있었다. 오직 할 수 있는 건 자기 몸 닦고, 자기 방 치우거나 말거나 이건 들여다보지 않으니 모르고, 자기가 먹은 밥그릇 씻는 정도. 그래서 빗자루도 우리 손닿는데 없다. 모두 해 준다. 명상하고 잠깐 쉬고 또 명상하고. 하기야 할 게 그것밖에 또 있겠는가. 책도 핸드폰도 안 되지. 일정하게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말도 없이 지내니. 또 하루일정이 1시간 단위로 짜여 쉴 시간은 주지만 딴 짓하기엔 틈이 없다. 그 일정을 따라 탑돌이 하듯 묵묵히 따라가는......
단마코리아에 다녀왔다고 하니 다들 얼마를 보시했냐고 묻는다. 명상하고 앉았으면 아 이게 꼭 필요한 사람이 떠오른다. 실직한 누구도, 남편과 원수처럼 지내는 누구도, 내 남편도 내 아들 딸도......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고, 내가 사랑하는 식구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래서 그들이 와서 명상할 수 있는 만큼 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카드로도 할 수 있어 카드로 맘껏 긁었다. 그리고 앞으로 만사 잊고 지내고 싶은 날이 오면, 갈 데가 생긴 기분이다. 자원봉사로 부엌에서 밥을 정성껏 지어주는 상상을 한다.
12일을 지내며 재미난 일은 물론 웃을 일 한번 없었다. 한데 지금 나는 좀 더 예뻐진 것 같다. 이 길로 가면 아름다움이 거기 있으리라는 믿음이 든다. 내 인생에 12일. 이렇게 시간을 내서 여기 참가할 수 있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여러분도 행복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