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출신 월남자들이 모인 영락교회는 서북청년단의 가장 중요한 근거지였다. 담임목사 한경직이 “우리 교회 청년부가 중심이 돼 조직했시오”라고 말했던 것처럼. 안타까운 것은 해방정국의 극우화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테러와 암살’을 통해 가능했고 이를 주도한 이들의 명분이 ‘그리스도의 이름’이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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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한 청년들 다수가 북한지역의 학력을 인정받아 대대적으로 편입학 했는데, 이때 학력인정서 발급 단체가 서북청년단이었다. 아무리 혼란기라 하더라도 테러단체에게 학력인정서 발급 권한이 부여된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아무튼 월남한 이가 남한에서 학교에 들어가려면 서북학생총연맹에 속해야 했다. 문제는 이 단체 결성의 이유가 남한의 학교가 좌익으로 들끓고 있으니 그들을 소탕하기 위함이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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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하나 더 언급할 것은 서북계 장로교 계열의 지식인들의 모교단인 미국북장로회를 통해 한반도 전체에서 가장 많은 미국유학생을 양산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학위를 받고 귀국해서 대학과 같은 안정된 일자리를 구할 때에도 극우적 서북인맥 네트워크가 매우 요긴했다. 즉, 무엇을 공부했든 어떤 사상을 지향했든 그들이 남한에서 살아가는 가장 효과적인 생존방식은 극우지식인이 되는 것이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에서 극우성향 서북계 인사들이 정치엘리트로 대대적으로 편입됐고, 노태우 정권에서도 서북계 인맥의 중요성이 두드러졌다.
극우적인 서북계 파워엘리트에 관해 간과할 수 없는 것이 군부와 정보부에 관한 것이다. 이들은 월남할 당시 미국북장로회 선교사들과의 접촉으로 인해 영어를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조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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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65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