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너희도 늙어봐라!"
실언을 해놓고 오히려 자식들에게 버럭 화를 내시던 우리 할머니. 하지만 뒤돌아서 어린 손녀를 붙잡고는 혼잣말을 하곤 하셨지요. 에구, 늙으면 죽어야지, 터진 콩 자루 같은 이 말 자루를 어찌할꼬…. 세월이 흘러 할머니는 세상을 뜨셨고 이제 그분의 자식들이 그 아래 세대에게 똑같은 말을 합니다. 너도 늙어봐라. 헛말이 나오나 안 나오나….
홍여사 드림
며칠 전의 일입니다. 딸과 함께 차를 타고 볼일을 보러 가다가 큰며느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핸드폰으로는 좀체 전화 안 하는 아이가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통화 버튼을 밀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며느리의 목소리가 달떠 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저예요.
며느리의 밝은 목소리에 저도 기분이 좋아져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오냐, 그래 큰애야. 나다~, 어미다~.
운전대 잡고 있던 딸이 피식 웃으며 그러더군요. 어이구 닭살 돋네. 그러나 저는 손을 내저어 딸의 말을 막았습니다. 며느리한테서 우리 큰손자의 이름이 들리긴 하는데 당최 귀가 어두워 나머지 얘기를 잘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어머니. 안 들리세요? 선생님을 오늘 만나뵈었는데 칭찬 많이 하시더라고요. 수업 태도도 좋아지고 성적도 많이 올랐다고요. 이 녀석 이제 정신 차리려나 봐요.”
평소 공부에 취미가 없어 부모 속을 태우던 중학생 손자 녀석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도 날아갈 듯 마음이 좋더군요. 며느리보다 더 들떠서 한껏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지요. 그런데 핸드폰을 내려놓자마자 딸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를 하는 겁니다.
“엄마는 왜 그런 식으로 사람을 기운 빠지게 해? 그러면 며느리가 전화하고 싶겠어?” “내가 뭘?” “방금 그랬잖아. 둘째네 ○○는 전교 일등 했다더라고.”
저는 멍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둘째 아들네 손자인 ○○는 이번에 일등 했다더라고. 그러니까 그 말이 전화 건 큰며느리를 서운하게 했을 거라고 딸이 지금 제게 면박을 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늙은 머릿속은 별안간 안개가 자욱해지고 동서남북을 모르겠는 답답함이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가? 내가 실언을 한 건가?
“자기 딴에는 자랑도 하고 칭찬도 들으려고 시어머니한테 전화했는데 기껏 들리는 얘기가 동서 아들은 전교 일등 했다더라? 누가 기분 좋겠어?”
거기까지 듣고 나니 빼도 박도 못하겠더군요. 제가 사람 기운 빼는 소리를 한 게 맞았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못 미쳐서 그랬을 뿐 나쁜 뜻은 전혀 없었습니다. 큰손자 얘길 들으니 작은 손자가 생각났고, 양쪽 손자가 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니 내가 이렇게 기분이 좋다고 말하려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딸의 마지막 말 한마디를 더 듣고는 저의 변명이 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딸이 넌지시 그러네요. “실은 큰올케가 한번 뼈 있는 소릴 해서 그래. 어머님은 무슨 얘길 해도 둘째네 칭찬으로 끝맺으신다고.”
그날 딸과의 대화는 저의 발뺌으로 끝을 냈습니다. 나는 그런 소리 한 적 없고, 큰며느리가 괜히 예민해서 그러는 거라고요.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며느리가 그렇게 오해했을 법한 순간들이 속속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과일을 인터넷 주문해준다는 말에는, 아서라 둘째가 연중 과일 떨어지지 않게 잘 챙기고 있으니 너는 말아라 했었고, 감기 기운은 좀 어떠시냐는 말에는 둘째가 저희 집으로 오라고 야단이라고 엉뚱한 대답을 했었지요.
그런 게 다 큰애한테 스트레스였을까요? 그러나 그런 경우가 꼭 큰애한테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때로는 둘째 며느리한테 스트레스를 주곤 했습니다. 이번에 김치냉장고 들여놨다고 좋아하는 아이한테 제가 그랬지 뭡니까. 너희 형님은 시집올 때 큰 걸로 해왔는데 너희 집엔 그게 없어서 늘 걸렸었다고요. 그래 놓고 혼자 뜨끔했었습니다. 혼수 갖고 타박하는 걸로 들렸을까 싶어서죠.
제가 요즘 이렇습니다. 듣는 사람 기분을 살피는 일이 점점 서툴러집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나이 들수록 자꾸 수다스러워지고,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의식도 없이 아무 말이나 술술 풀어놓게 됩니다.
꼭 며느리들뿐만 아니라 대인 관계 전반에 걸쳐 그런 서글픈 변화를 느낍니다. 동년배끼리는 서로 이해해주는 측면이 있어요. 먹은 맘 없이 줄줄 흘리기도 하는 나이라는 걸 감안해 줍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게 안 될 겁니다. 본인들이 말을 가려 하고 경우가 밝으니 노인들한테도 같은 수준을 요구하지요. 그러니 도무지 이해 안 가는 일도 많을 테고요.
그래서일까요?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인 저를 이유 없이 불편해하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음식 다 해서 먹이고 저희들은 하나 신경 쓸 거 없게 해도, 만남을 부담스러워하는 걸 느낍니다. 나는 만나면 좋기만 한데 저희들은 안 그런 것 같습니다.
하긴 저도 예전에 그랬습니다. 시어머님 뵙기가 꺼려졌던 이유는 몸고생이 아닌 마음고생 때문이었지요. 만날 어느 한약방 약이 좋다는 이야기, 누구네 자식은 이렇게 저렇게 몸보신을 시켜주더라는 이야기…. 그럼 울며 겨자 먹기로 약이고 소꼬리를 해다 드렸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이게 웬일이냐며 저를 나무라곤 하셨지요. 그냥 그렇다는 소리지, 돈 아깝게 이런 걸 왜 갖고 왔느냐고.
저 역시 뜻 없이 하는 소리입니다. 큰며느리를 보니 작은며느리가 생각나고 작은손주를 보니 큰손주가 생각나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게 다 자식들에겐 스트레스가 된다니…. 어른 노릇의 어려움을 새삼 느낍니다.
물론 늙어가는 모양새도 가지각색이겠지요. 저와는 달리 지혜가 나날이 깊어가는 양반들도 있을 겁니다. 한편 자식들한테 바라는 게 있어서 이 말 저 말 지어내는 노추도 없진 않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은 저와 같을 겁니다. 그저 자식들이 두루 잘되기를 바라고, 말 한마디라도 기분 좋게 보태주고픈 마음일 겁니다. 다만 분별이 흐려지다 보니 역지사지를 못하는 겁니다.
부디 그렇게 이해하고 너그러이 넘어가 주길 내 자식들과 세상 젊은이들에게 부탁해 봅니다.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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