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보고 싶었던 당원님!
추미애입니다.
유난히 비가 많았던 지난 여름, 많이 걱정하셨지요? 가을의 문턱에서 뜨거운 태양 아래 영글어가는 곡식을 보니 그나마 조금 마음이 놓입니다. 하늘도 진심을 다하니 결코 저버리지 않는군요.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시절에도 서로 힘이 되고 의지하며 함께 해온 ‘한 지붕 한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정권재창출을 하고도 함께 기뻐할 겨를도 없이 어느 날부터 서로 상처주고 미워하며 반목하다가 끝내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저는 결코 어떤 이유로도 헤어지는 것은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 어떤 명분도 분열을 미화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8년이 지나 제가 요즘 트위터를 보면 악성 댓글 때문에 그토록 고통스러워 했던 인기 탤런트 고 최진실씨의 마음이 헤아려집니다.
트위터에서 제게 붙여진 별명, 탄핵녀……
칼로 제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느낍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집나간 형제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민주당의 정신과 뿌리를 지키기 위해 당에 남아 있으면서 탄핵을 만류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저 또한 탄핵 소용돌이에 휘말려 희생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을 묵묵히 지키신 분들의 억울함도 이해하기에 제 스스로 어떤 세세한 말씀도 드리지 않고 고통을 감내하며 지내왔습니다.
탄핵사태 후 당이 공황상태에 빠져버렸을 때 저의 양 어깨에는 선거를 진두지휘하라는 무거운 짐이 지워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언의 사죄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삼보일배였습니다. 오로지 민주당을 지키고자 했던 삼보일배는 제게 많은 후유증도 남겼습니다. 그리고 가끔 무리하면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집을 지킨 며느리로서 <민주당>의 문패 아래 아들, 딸, 사위 다 모여 화기애애하면 그것이 우리들의 기쁨이고 함께 지킨 선배님과 당원님 그리고 저의 보람일 것입니다.
두 번의 정권창출 대열에 저는 항상 앞줄에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엄마로서 한창 사춘기에 든 두 딸과 코흘리개 아들에게 전혀 신경써주지도 못한 채 여행가방을 들고 지방을 돌아다니며 지역감정의 벽을 넘으려고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삼보일배 후 두 달 동안 심하게 앓고 있던 어느 날, 당시 중학생이던 둘째 딸이 일주일간 기아체험을 한다고 무의도로 떠났습니다. 평소 돌봐주지 못한 딸이 안쓰러워 이른 아침 손수 김밥도 말고 샌드위치도 만들어 딸을 데리러 갔습니다. 그런데 딸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일주일간 단식으로 배고파 지쳤을 딸이 삼보일배한 엄마가 싫다며 꼭꼭 숨어버렸던 것입니다.
같이 먹으려고 많이 담은 무거운 도시락을 풀지도 못하고 힘없이 돌아오는 배를 탔습니다. 혼자 갑판에 서서 멀리 서해바다의 낙조만 바라봤습니다. 온종일 먹지도 않았는데 허기 대신 왠지 서운한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저절로 피할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젊은 여성이 저를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 추미애씨네. 힘내세요!”
시선을 피하던 제가 마지못해 미소로 인사하자 옆에 있던 경상도 말씨의 중년 여성도 덩달아 인사를 건넸습니다.
“나는 첨에 땅바닥에 절하는 거 보고 쇼한다 했는데 이틀이 지나도 그대로 절을 계속 하데예. 오해했던 게 쪼매 미안했심더. 힘내이소! 무릎 많이 상했을 낀데…”
낯선 사람들 앞에서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2008년 다시 국회로 돌아왔습니다. 비정규직 문제와 노조법 시행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다루어야 하는 환경노동위원장이 되었습니다.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이 임박해지자 한나라당은 “100만 해고대란이 일어난다. ‘추미애 실업’이 일어나면 책임져라”고 협박했습니다. 그러나 열악한 비정규직 보호는 제 손에 쥐어진 방망이에 달려 있었습니다.
정부여당의 거센 협박에도 저는 굴하지 않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꿋꿋하게 지켜냈습니다. 비정규직 방치는 우리 아들 딸의 꿈과 미래를 빼앗고 열심히 일하는 서민근로자를 절망으로 빠뜨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100만 해고대란설은 허구였습니다. 오히려 비정규직 보호를 시대과제로 만들어 놓아 많은 분들로부터 응원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하나의 산을 넘으니 또 하나의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조설립을 자유롭게 할 수 없도록 한 것은 박정희 정권이었습니다. 민주세력은 복수노조 관철을 오랫동안 요구해왔습니다.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라는 두 가지 문제를 잘 풀어야 기업도 근로자도 살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만일 제가 힘들다고 방망이를 던져버리면 노동계는 대혼란에 빠지고 매우 힘들어질 것이 뻔했습니다. 저는 ‘추미애노조법’을 만들어 노사 양측을 중재시켜 전임자 임금지급도 상당히 가능하게 하고 복수노조도 시행하도록 해 13년간 못 푼 과제를 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기업 삼성에도 복수노조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헌법원칙이고 국제기준입니다. 아무리 삼성이라도 복수노조를 하지 못한다면 글로벌기업으로서 해외시장에서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복수노조 시대를 관철한 ‘추미애노조법’에 대해 일각에서는 당장 불편하다고 합니다. 방망이를 친 것에 대해 당이 오해를 하고 저를 징계했지만 복수노조의 원칙은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잘 시행하느냐의 방법은 기업과 노동계, 정치권 모두 노력하면 될 것입니다.
다행히 지난 해는 기아차에서, 최근에는 현대자동차에서 노사가 원만히 문제를 풀었습니다. 모두 전임자를 완전 부정하는 대신 중재안으로 전임자를 적당한 규모로 둘 수 있는 협상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원칙은 타협할 수 없지만 그 실현 방법은 협상과 조율의 대상인 것입니다. 이렇게 타협 없이는 노사도 정치도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타협은 지지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경쟁자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며 따돌림을 당할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변함없는 제 원칙이고 소신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정치에 반드시 필요한 타협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분명히 우리의 미래는 타협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원칙에 대한 타협이 아니라 논점에 대한 타협일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적 입장을 타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은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존경하는 선배님!
보고 싶은 당원님!
지난 해 당 지도부를 뽑는 예비경선에서 노조법 소신을 이유로 중앙위원회에서 후보 자격을 박탈당하는 고통도 겪었습니다.
이제 저의 부족함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십시오.
이제 온 가족이 모이는 한가위가 다가옵니다.
민주당 큰집 아래 모두 모여 서로 격려하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져 선배님과 당원님께도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정에 큰 행복과 웃음이 가득하길 기원드립니다.
2011년 9월 2일
민주당원 추 미 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