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부터 김수현 드라마를 보고 자랐어요.
사랑과 야망, 목욕탕집 남자들, 사랑이 뭐길래..
어른들 보는 틈에 끼여서 내용을 잘 이해하지도 못할 나이에도 정말 열심히 봤었죠.ㅎㅎ
고등학교 때 청춘의 덫에 빠져서 정신없이 봤었고,
얼마전 20년이 다 되어오는 드라마를 다시보기로 또 봤네요.
역시 보고 또 봐도 재밌어요.
심은하는 언제봐도 아름답고..
유호정이 연기한 노영주는 항상 멋지고..
이종원을 보면 저 아저씨가 저렇게 섹시할 때가 있었구나 싶어요.ㅎㅎ
이종원이 연기한 강동우란 캐릭터는 사실혼 관계에 있던 조강지처와 딸까지 버리고
싱글행세 하면서 재벌딸 속이고 사기결혼하는 쌍놈의 새끼 캐릭인데,
나쁜 놈인데 왜 이렇게 매력 터지는지..
처음엔 욕하면서 보다가 나중엔 이 개새끼한테
왜 괜찮은 두 여자가 모든 걸 다 바쳐서 충성했었는지,
재벌 딸인 노영주는 이 새끼가 자길 속였단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놓지를 못하는건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ㅠㅠ..
엄마가 뿔났다도 정말 좋았어요.
인생은 아름다워도 좋았고..
무자식 상팔자도 좋았죠.
네. 딱 여기까지만 좋았어요.
다음 회가 기다려진 것이 딱 여기까지였어요.
세결여에서부터 드라마는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무엇이 그리 이상했는가.
30대 중반의 엄지원과 그 친구들이
친구인 서영희 결혼식장에서 사진을 찍어요. 와이키키~~ 를 외치면서.
와이키키??? 그게 뭐지?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예전에 엄마가 젊었을때 와이키키 외치면서 사진을 찍기도 했었다네요.
60이 넘은 엄마가 젊을 때 쓰던 말을 현재 30대인 사람들이 쓰고 있어요.
사실, 김수현 작가가 젊은이들의 말을 따라잡지 못한 것은 이미 오래되었죠.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가 이종사촌 여동생에게 말해요.
네가 변소에 안 갔어도 혜림이는 죽었을거야.
변소..
굉장히 심각하고 슬픈 장면이었는데 심은하의 그 청초한 입술에서 변소란 말이 나와서
뜨악했던 기억이 나요.
당시 고딩이었던 전 왜 화장실이라고 하지, 변소라고 할까..의아했었어요.
20살 정도 된 이종원 여동생은 작은 오빠한테 내가 영화 봬줄게. 이렇게 말하고..
보여줄게가 아니고 봬줄게. --;;;;
그래도 그때만해도 변소나 봬줄게만 걸렸지, 크게 걸리는 것은 없었어요.
극의 완성도가 너무 높아서 이런 건 옥의티라고 넘어갔죠.
그런데 옥의 티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
와이키키도 그렇고, 엄지원이 강아지 잠지털 깎아야 한단 표현도 그렇고..ㅜㅜ
이지아가 공갈치지 말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공갈..ㅠㅠ
젊은이들의 말을 따라잡을 수가 없으면 젊은 보조작가라도 두고 이상한 말을 골라내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쇼호스트 이지아는 세 번이나 재취업에 성공하여, 어느 댓글에선 세 번 결혼한 여자가 아니라
세 번 취직한 여자라고 해야 한다고.. 너무 현실성 떨어진다고 욕하고..
무엇보다도 등장인물들이 너무 매력이 없었어요.
김수현 드라마에는 참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았는데,
여긴 공감가는 인물도 별로 없고, 매력 터지는 남자도 여자도 아무도 없고,
그나마 매력 터지는 인물이 도우미 아줌마라니..ㅠㅠ..
도우미 아주머니의 비중만 나날이 늘어나고, 참 갑갑했어요.
송창의는 착하고 성실하다기보단 그저 우유부단한 마마보이같고,
하석진은 이기적인 파파보이같고,
상간녀 다미는 딱히 치명적이지도 않은데 하석진이 왜 그렇게 빠져드는건지 모르겠고,
이지아도 그냥 그렇고.. 옷만 잘 입었지, 그렇게 도도하고 고고하고 지적인 여자인지 잘 모르겠고,
애 새엄마는 트라우마 때문에 돌아이가 된 여자고,
엄지원 캐릭을 보면 맨날 짜증을 달고 사는 애 같아서 낮게 까는 이상한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이 났고,
조한선은 허우대만 멀쩡하고 입만 열면 확 깨는 푼수같은데 왜 그 많은 여자들이 빠져드는건지 이해불가.
그냥 초딩 바보같은데 극에서는 옴므파탈로 나옴.ㅠㅠ..
암튼 도우미 아줌마와 이지아 딸의 열연으로 마지막 회에 이르는데,
이지아는 두 번째 이혼을 하고 자기 삶을 사는 훈훈한 결말을 맞이해요.
그건 참 좋은데, 이 여자가 반지를 세 개를 끼고 나타나요.
그리고 한다는 말이, 반지1, 반지2는 첫 번째, 두 번째 결혼 반지라고..
아니 이혼하고 왜 전남편들이 준 반지를 끼고 돌아다님??
세 번째는 나 자신과 결혼한거라고. 그러면서 세 번째 반지를 끼고 보여줌.
돌았나...
왜 반지를 세 개 씩이나 끼고 돌아다니면서 난리인지.
자기 자신과 결혼한다고 꼭 반지를 껴야하나..
이상타.
그런데
그래. 그런거야는 더 이상해짐.
김해숙이 대가족 며느리로 계속 등장한 것이 세 번째.
이름만 바꿔서 계속 나오는 것 같아서 식상했어요.
여기서도 젊은이들이 노인들의 말투를 쓰는 것이나,
매력없는 캐릭터들이나,
앞에서 생겼던 문제들이 계속 반복되었고,
캐릭터가 매력없는 걸 떠나서 좀 이상해졌더라고요.
오래 전 부모님 전상서에 나왔던 송선미가 맡은 해맑은 부잣집 딸은
여기서도 복제되어 왕지혜가 비슷한 역할을 맡았는데,
송선미는 철없고 해맑은 아가씨였지만, 왕지혜는 좀 지능이 많이 모자란 사람으로 보였어요.
그냥 바보같았음.
윤소이 남편이 아들있는 걸 속여서 극 초반에 아내에게 차갑게 대하고 리스로 지내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제일 이상한건 김정난이 노주현을 사모하는 것. ㅠㅠ..
40대 여자가 할아버지를 사모하는 것도 기괴한 일이지만,
노주현 입장에서 엎드려 절하고 받아들여도 모자른데,
어른들 성화에 어쩔 수 없이 그냥 결혼하고, 결혼 후에도 젊은 아내를 귀찮아하는 것 같은 느낌.
뭐 저런 영감탱이가 다 있나 했네요.
제일 엽기는 이순재 할아버지.
90넘어서 노래방가서 도우미들 손잡고 노래부르는거. 극혐.
그 장면 보면 그냥 늙으면 빨리 죽어야 한단 말 밖엔 떠오르지 않았어요.
어차피 구실도 못할 나이에 도우미들과 2차를 가진 못하지만,
여자들을 옆에 끼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는 그 개차반 마인드가 역겹고,
돈 주고 여자들을 불러서 손잡고 노래를 부르는 구십 넘은 영감을 보면..
그냥 늙으면 죽어야 된단 말 밖엔 떠오르지 않음.
예전부터 느낀건데 이분은 남자들의 성매매에는 좀 관대하신 것 같아요.
그 장면이 굉장히 혐오스러운 장면인걸 전혀 생각하지 못하시는듯.
아..청춘의 덫 같은 작품은 다시는 못 보는 걸까요?
이런저런 비판들이 무색해질만큼
오래 남을 명작 하나 남기고
퇴장하셨으면,
그래서 영원히 레전드로 남으셨음 좋겠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구구절절 써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