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의 그녀가 물었습니다. 50 넘으신 분들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한때 문학소녀 아닌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저도 문학소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수는 그냥 맞춰서 경제학과 들어갔습니다. 공부도 별로 못하는데 당시에는 시절이 좋아 국립대 경제학과를 갔습니다.
지금 나이 50의 여자가 경제학과 가서 빡세게 공부를 한 것도 아니면 할일이 별로 없지요 만만한 학습지 교사로 근무하면서 결혼했습니다. 지구장까지 하다 산휴중에 남편이 제 월급보다 많은 할부금을 내는 외제차를 사는 바람에 퇴직했습니다. 제가 애하고 고생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철없는 남편은 바로 말아먹었지요. 주제파악 못하고 살면 뭐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웃이지요.
이후로 좀 스펙타클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결국 고향을 등지고 타지로 와서 어찌어찌 제부 가게에 일을 봐주러 나왔습니다. 그게 벌써 십오년이네요.
가게는 일은 없지만 꼭 자리를 지켜야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일이 없으니 멍청하니 앉아있을 수 없어서 어릴적 꿈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글은 쓰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몰라 검색하다 단편소설 클래스가 있어서 등록했습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오년씩 공부했다는 사람보고 비웃었습니다. 그게 오년씩 할일이니?
결과적으로 저는 칠년인가 팔년을 보내고 신춘문예 당선됐습니다. 그것도 지방지로요.
지방지 두군데서 당선 되었지만 당선되면 뭐하겠습니까?
원고 청탁도 없는데 그냥 기분이지요. 상금은 팔백만원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수업 들으며 쓴 돈을 생각하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딱 본전이었습니다. 적금 넣어서 탄 것과 같은 거였지요. 나중에 신문에 작은 코너 하나 맡아 연재하면서 술값인 뒤풀이 금액까지 맞춰 제로쳤습니다.
중앙지가 아니라 원고청탁이 없는거겠지? 그럼 중앙지에 다시 당선되어야 하나봐?
그렇게 뭘해야 좋을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을때 로맨스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상금이 천만원이라고? 내가 그동안 재미만 있지 깊이가 없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는데 에라 그럼 재미에 올인해 볼까?
결과는 생각지도 못한 당선이었습니다.
이제 적금이 아니라 수익율 좋은 펀드 정도는 되었네요. 그래서 아파트 대출금 부분 상환에 일조했습니다.
순수 문학에서 꽃 피우지 못한 제 글이 로맨스에서는 먹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정말 어림없는 이야기더군요. 심사위원과 독자는 전혀 세상이 다릅니다.
로맨스 쓴다고 연재해보니 이건 죽도 밥도 아닌 모양입니다.
단편소설도 아니고 로맨스도 아닌 어중간한 지대에 걸친 글은 독자가 없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가게 일은 별로 없고 이왕 시작한거 계속 하고 싶은걸요. 이거 아니면 낙이 없는걸요.
갱년기 아줌마 아픈데 많아 골골 거려도 글 쓰는 동안은 다른 생각 안하고 몰입되는걸요.
글을 쓰는 동안은 남편하고 둘이 벌어도 남들 혼자 버는것만큼도 어림없는 현실도
방광염에 이석증에 온갖 갱년기 증세도
언니처럼 가난한 사람은 이라는 말을 쉽사리 하는 오너 부인 동생의 언행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별 수 없지요. 쓰는 수밖에요.
전자책 세권을 내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인지도를 올려 이번에는 좀 기대가 되었습니다.
네이버 챌린지 리그 거쳐 베스트 리그도 올라갔고, 로망띠끄에서 인기도 좋았습니다.
기대했지요. 덕분에 일러스트 표지도 멋지게 제작되는 특혜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막상 판매 시작되자 역시 인지도 없는 작가는 힘들더군요.
무료 연재할 때는 인지도가 없어도 흥미로우면 쉽게 독자 마음을 열 수 있는데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독자들은 몹시 보수적이 됩니다.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작가 작품에 쉽게 눈길을 주지 않더군요.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실망도 크지 않았을텐데
이번에는 기대가 있었던 탓에 많이 힘듭니다.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포기하지 못합니다.
로맨스 작가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데, 신춘문예 했던게 도리어 걸림돌이 되는데
그냥 핑계대고 책이나 읽으면서 소일하고 싶은데 아직 그러기 싫습니다.
실망하기 싫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 되기 싫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또 한글 화면을 띄웁니다.
이게 사는 재미니까요. 재미는 거저 얻어지는게 아니니까요.
오십 넘어도 뭔가를 하고 있으면 이렇게 사는 재미를 씩씩하게 이야기 할 수 있으니까요.
환갑이 넘어서도 쓰고 싶습니다. 부디 독자들에게는 들키지 않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