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 할 스트레스 직장 내 도덕적 괴롭힘 실태
‘먹잇감’ 골라 잘근잘근…이건 범죄야!
일요신문 | 조승미 | 입력 2011.09.07 15:19
직장을 다니다보면, 서너 사람쯤 성격이 맞지 않는 동료나 부하직원, 상사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누군가 자신을 이용하면서 뒤에서는 악의적인 공격을 계속한다면 어떨까. 어찌해야 좋을지 참 난감한 기분이 들 것이다. 최근 일본의 회사원들 사이에서는 '모럴 해러스먼트(Moral Harassment)'라 불리는 직장 내 도덕적 괴롭힘이 유쾌한 직장생활을 막는 큰 걸림돌로 부각되고 있다. 모럴 해러스먼트는 때로는 상대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면서도 상처 입히는 말과 태도를 되풀이해 교묘히 괴롭히는 정신적 폭력을 뜻한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나 지위를 이용해 상사가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것을 일컫는 '파워 해러스먼트(Power Harassment)'와 달리 성별이나 직위에 관계없이 일어나는 게 특징이다. 언뜻 보면 별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직장인들은 일과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므로 피해자로서는 커다란 심리적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사무직 팀장으로 이직한 K 씨. 이 회사에서 장시간 근무해온 팀원 A 씨와 몇 달간 별 문제 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K 씨는 A 씨와 업무 관련 의견 차이로 언쟁을 벌였다. K 씨가 내놓은 제안에 대해 A 씨가 "안 된다"고 지적했던 것. 화는 났지만 일단 수긍한 K 씨는 다음날 황당한 일을 경험한다. 출근해 보니 자신의 제안이 A 씨의 이름으로 떡하니 상사에게 올라가 있었던 것. 제대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K 씨. 그러나 A 씨는 대화는커녕 시선도 마주치려 하지 않고, 한숨을 크게 내쉬거나 인상만 잔뜩 찌푸린 채 있다가 나가버렸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자 사내에서 'K 씨는 일처리를 제대로 못 한다', '팀장답지 못하다'란 소문이 떠돌았다. 이제 출근 생각만 해도 우울해지는 K 씨는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굳히고 있다. 위는 일본의 <jcast스 >에서 소개한 전형적인 직장 내 도덕적 괴롭힘 사례다. 비슷한 사례들이 근래 일본에서 크게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20~30대 젊은 층 사이에 일종의 성격장애인 자기애형 성격을 가진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자기애형 성격을 가진 이들은 말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며 강한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고 있다. 일에서 실수나 불운한 일이 생기면 남이나 환경 탓으로 돌린다. 타인을 조금도 배려할 줄 모른다. 조금만 조르거나 떼쓰면 가족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일수록 자기애형 성격이 될 확률이 크다. 한마디로 특별하게 대접받고 자라면서 자기애가 지나치게 커진 것이다. 그런데 사회에 나오면 자신의 뜻대로 안 되는 일들이 있는 법. 자기애형 타입은 한계에 도달하면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신 부모 등 주변에 대한 원망만 늘어놓는다. 이때 자신이 타깃으로 삼을 만한 직장 동료 등이 눈에 띄면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시작한다. 즉 자신이 스스로 뛰어난 사람이라 느끼고 싶어서 타인을 희생양 삼아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행동패턴으로는 표적으로 삼은 이와 인사나 대화를 하지 않는다. 상대가 말을 하려고 하면 가로막는다. 일과 관련된 의사는 메모나 메일 등 써서 표현하는데, 항상 상대의 의견에 강하게 반대한다. 직무상 상대의 책임이 될 만한 실수를 일부러 하기도 하며, 실행 불가능한 지시를 내리거나 제안을 해 일부러 실수하게끔 유도한다. 중상모략을 끊임없이 하는데, 표적으로 삼은 상대가 직장에서 신뢰를 크게 잃을 만한 일들을 계속해서 언급한다. 집단 따돌림을 주도하는 경우도 있다. 심할 때는 폭언이나 육체적·성적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대부분은 주위에서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용하고 끈질기게 괴롭힌다. 결국 피해자가 스스로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게끔 사태를 몰아간다. 이에 반해 피해자들은 대체적으로 처음에는 자신에 대한 괴롭힘이 시작됐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책임감이 강하고 언제나 모든 일에 노력하는 타입이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고자 하는 바람이 크며, 베풀며 돕는 것을 좋아한다. 밝고 똑똑한 편으로 뭐든 열심히 하고 인내심이 강하다. 적은 행복으로도 큰 만족을 얻는다. 한마디로 사람 좋고 성실한 타입이 피해자가 되기 쉽다. 혼자서 끙끙 앓으며 자신을 책망하고 괴로워하다가 우울증에 걸리거나 직장을 그만둔다. 한편 이런 직장 내 도덕적 괴롭힘을 처벌하는 법을 만들자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지난 2002년 직장 내 도덕적 괴롭힘을 금지하는 법률이 만들어져 노동법과 형법에 추가됐는데, 가해자에게 최고 금고 1년형과 1만 5000유로(약 23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