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에게 첫날밤 소박 맞고 절에선 스님에게 단박에 구박
대승사 너머엔 새색시 같은 고운 자태를 감추고 있는 비구니선방 윤필암과 묘적암이 있습니다. 모두 대승사 산내 암자들입니다. 묘적암에서 보니 사불석이 건너편 산등성이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윤필암에서 30여분 산을 타고 올라 사불바위에 오르니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듯 아래 바위와는 분리된 비석 같은 바위의 앞뒤 좌우에 불상이 도드라져 있었습니다. 바로 삼국유사에도 나와 있는 사불바위입니다. 이 사면 불 바위에서 바라보니 대승사 산내 암자인 묘적암과 윤필암이 마치 동화 속 집처럼 숲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선방의 하나인 윤필암은 윤필거사가 창립한 사찰입니다. 이곳은 만공선사의 제자로 비구니 선맥을 연 법희 선사와 본공·인홍 등 내로라하는 비구니 선승들이 거쳐간 곳입니다. 지금도 매년 여름, 겨울 안거 때면 20여명의 선객들이 참선 수행을 하는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 도량입니다.
윤필암은 정갈한 비구니들의 살림살이가 느껴질 만큼 경내가 깨끗하게 정돈되었습니다. 깊은 골짜기에 있는 음터인데도 불구하고, 비구니 스님들의 정성에 의해 아주 양명한 기운이 느껴질 만큼 빛이 났습니다.
윤필암은 비구니 도인으로 알려진 선경 스님이 90년대 중반 열반 전까지 머문 곳이기도 합니다. 선경 스님은 일자무식에 얼굴까지 박색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19살에 시집을 갔지만 첫날밤에 서방으로부터 소박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 후 충남 공주 마곡사 영은암에 출가했는데, 예산 수덕사 견성암에 가면 비구니들도 참선을 공부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수덕사로 만공 선사를 찾아가 "화두를 달라"고 했답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만공은 "네까짓게 무슨 공부냐"면서 "일이나 하라"고 공양간으로 보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선방에 보내 공부를 시키면서 자기는 부엌데기로 부려먹기만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다 선경 스님은 견성암에 이어 두번째로 비구니 선방을 연 이곳 윤필암까지 찾아와 대승사 조실 스님에게 "화두를 달라"고 졸랐다고 합니다. 그러자 선경 스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대승사 조실 스님도 "네까짓게 무슨 공부냐"면서 "일이나 하라"고 하더랍니다. 그렇게 구박을 당하면서 사정사정해 겨우 선방에 앉게 된 선경 스님은 "시집가서 서방에게 첫날밤에 소박맞은 이래 절에서도 끊임 없이 구박만 받는 것이 너무도 서러워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리 내어 울면 천신만고 끝에 들어간 선방에서 남의 공부를 방해한다 해서 쫓겨날까 두려워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손수건을 빨래 짜듯이 짜내면서 눈물을 흘렀다고 합니다.
오만했던 전생의 업 고스란히 물림 받아 "네까짓게 무슨…"
그렇게 일주일 가량 눈물을 쏟은 뒤 어느날 하얀 종이 같은 것에 까만 글씨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자무식인 선경 스님이 그 글자를 알 리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글자에 대한 의문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절로 그 글자가 화두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화두에 일심을 모은 며칠 뒤 그의 기억의 필름에 전생이 훤하게 비쳤다고 합니다.
그는 전생에 속리산 법주사에서 살았는데, 아주 지식이 출중하고, 잘 생긴 비구 스님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용모와 지식을 뽐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네까짓게 뭘 알아!"라고 힐난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파계했던 그 비구 스님은 열반 직전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모든 진리는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는 화두를 참구했는데, 선경 스님의 기억 필름 속에 그 화두가 나타났던 것이었습니다.
선경 스님의 전생을 내다봤던 만공선사와 대승사 조실 스님이 당시 스스로 전생의 업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전생에 그가 사용하던 말투대로 "네까짓게 무슨 공부야!"라며 힐난했다는 것입니다.
선경 스님이 열반 때까지 머문 윤필암의 백미는 사불전입니다. 사불전엔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습니다. 대신 통유리 너머로 산 정상에 서 있는 사면석불을 향해 예불을 올립니다. 이 사불전에서 1천일 기도 중인 한 비구니 스님은 "밤에 기도를 하다 보면, 모든 소나무들이 사면석불을 향해 예배를 하고 있다"면서 "신묘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조현 기자의 휴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