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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제 아이도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c** 학원을 다녔었습니다.
(대치 CMS 영재교육원)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부터 3학년 5월경까지, 대략10개월 남짓 되려나요.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그 분은 대체 무슨 재주로 월 평균 80만원 내고 아들을 그 학원에 보냈는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저는 그보다 훨씬 높은 수강료를 매월 학원에 지불했었구요,
심지어 방학 동안에는 단기간이지만 그분이 말씀하신 금액의 3~4배는 족히 되는 큰 금액을 지불한 적도 있는 걸로 기억합니다.
(*사걱세 이사 본인 자녀 고액 사교육 논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아이는 마지막 관문인 캠프에서 고배를 마셨습니다.
이번 사태로 사교육... 어쩌구 하는 단체의 이사직에서 물러나신 그 분과 그 분이 속했던 단체가
"모든 사교육을 반대한 적은 없다"고 해명하셨다죠? 심지어 사교육을 적절히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고도 하셨었다고요?
그렇다면 그 분과 그 단체가 반대하는 사교육은 과연 어떤 사교육이고,
적절히 활용하면 도움이 되는 사교육은 대체 어디까지인 건가요?
최종 합격의 영예를 안은 그 분의 아들이 받은 사교육은 적절하고 좋은 사교육이고,
마지막 관문에서 고배를 마신 제 아이가 받은 사교육은 무의미하고 나쁜 사교육이었던 걸까요?
저는 제 아이 깜냥도 모르고 아이를 미친 사교육 시장에 던져넣은 "아픈" 부모이고,
중 1때까지도 운동만 하다가 뒤늦게 영재고를 가고 싶다며 1년을 쏟아부은 제 아이는
주제파악도 못하는, "괜찮지 않은 아이"인 건가요?
본인의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이 큰 행운이고, 그러므로 자신이 지극히 운좋은 사람이라고도 했다구요?
그럼 공부 못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는 운이 나쁜 건가요? 그런 아이를 뽑은 불운을 원망이라도 해야 하나요?
비록 마지막 관문을 넘지는 못했지만,
저는 어린 나이에 스스로 선택한 목표를 향해서 최선을 다했던 제 아이가 충분히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그런 아이가 제 아이라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루저의 자기위안에 불과한 걸까요?
아이가 노력을 보람으로 돌려받기를 간절히 소망했었지만 결국 좌절을 맛보게 됐고,
그런 아이가 마음 추스리고 제 자리로 돌아오기까지의 수 개월 동안
아이를 지켜보는 모든 시간이 어느 한 순간 가슴저리지 않은 적 없지만,
성취의 경험 못지 않게 좌절의 경험도 아이의 성장에 자양분이 될 거라고 믿는 건, 제가 여전히 나이브해서인 걸까요?
아이가 너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큰 실패를 맛보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저를 제일 괴롭혔던 건,
결과 그 자체보다도... 내가 입시에 무지한 워킹맘이라서, 사교육도 영재고도 몰랐던 무심한 엄마라서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한 것 같다는 자책이었고,
내가 입시제도에 좀 더 해박했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아이를 서포트해주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뒤늦은 후회로 뼈가 저릴 때 제게 위로가 되었던 건,
카페분들의 따뜻한 위로와 덕담, 그리고 그 분의 글들이었습니다.
잘난 아이들은 부모가 잘 서포트해서 잘된 게 아니라 원래부터 그런 아이였던 거라는,
그냥 그런 아이를 뽑은 거였을 뿐이라는 요지의 그 분 글을 읽으면서
마치 면죄부라도 받은 양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슬며시 내려놓기도 했었는데...
사실 처음 그 분 아들의 영재고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진심으로 축하하고 순진하게 부러워했을 뿐입니다.
이슈가 확산되고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걸 보면서는
아이가 영재고 준비 시작할 때, 최소한 사교육의 정점이라는 c**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쯤에는
사교육 어쩌구 하는 단체 이사직은 내려놓았으면 좋았을 걸... 혼자 안타까워 하기도 했었죠.
심지어 그 분이 온라인 상에서 쏟아질 비난에 상처받아 혹여나 절필이라도 선언할까
내심 걱정하기도 했었죠. 역시 저는 하수라서...
그런데... 이후 사태에 대한 그 분의 대처를 지켜보면서
비로소 뒤통수가 뜨끈해지더군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태 인식이며, 오만한 표현들이 그의 선민의식과 내로남불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배신감으로 분노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아냥과 협박, 실망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정부를 공격하는 세력이라 프레임하는 대응이
그의 바닥을 낱낱이 확인시켜주고 있는데,
나는 그동안 그의 글에서 무엇을 본 걸까...
아, 나는 이 나이에도 이렇게 사람보는 눈이 없었구나.
고작 저런 입에 발린 말에 혹해서 내 아이가 맞닥뜨린 현실에 눈을 감아버렸었구나.
그에게 나는 깜냥 안되는 아이 사교육에 몰아넣고 학대한 아픈 부모일 뿐이고,
내 아이는 주제파악 못하고 분에 넘치는 욕심에 되도 안할 일에 덤벼들었던 괜찮지 않은 아이일 뿐이었을텐데,
나는 그의 글 한줄이 마치 무슨 귀한 복음이라도 되는 양 거기에 기대고 위로받곤 했었으니...
나야말로 개돼지 취급을 자처한 거였구나.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어쩐지 좀 별로였다고, 그럴 줄 알았다는 분들도 계시던데,
저는 그 분 글, 참 좋아했었거든요.
그러지 않았다면, 이런 부질없는 글을 쓸 이유도 없었겠죠.
그런데요, 수시를 확대하고 정시를 없애면, 정말 그들이 주장하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온다는 건가요?
제 아무리 똑똑한 아이들도 혼자 힘으로는 준비하지 못하는 게 수시라는데,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패자부활전의 기회도 주지 않기 때문에
중학교때 고등 내신을 끝낸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는 게 수시라는데,
그 수시를 전면 확대하면 사교육이 없어진다고, 그들은 진정으로 믿고 있다는 건가요?
아이만 똘똘하고 열심히만 하면, 부모 도움 없이도 사교육 없이도 누구나 수시로 대학에 갈 수 있다구요?
방목형 부모 밑에 자란 저와 남편은 요즘같음 우린 대학 못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희 부부가 뭘 모르는 건가요?
아, 혹시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대학들은 빼고 그 외 기타 대학들에 가면 된다는 말인가요?
어짜피 가능성 없는 애들은 일찌감치 포기하게 만들어서 경쟁을 약화시키기 위한 건가요?
강남이 아니어도, 지방에서도 전교권 아이들은 좋은 대학 갈 수 있는 게 수시라구요?
그 애들 몇명 선심쓰듯 들러리로 내세우는 걸로 현혹해놓고 제2, 제3의 정유라 수십, 수백명 뽑아도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알 수도 없고, 알아도 따져 물을 수도 없는 '깜깜이 전형'이 수시고 학종 아니던가요?
제가 정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내 아이에게 그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 아이는 괜찮습니다.
비록 떨어졌지만 영재고 준비하며 공부체력도 길렀고,
실패의 경험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정신력도 단단해졌으니까요.
무엇보다 생기부든, 세특이든, 자소서든... 그러려고 작정만 하면 사교육을 통해서라도
이 미친 수시에서 쳐지지 않을 정도의 경쟁력쯤은 갖춰줄 능력이 있는 부모가 함께 있으니까요.
저도 이제 아이 스스로 준비할 수 있다는 허황된 말에 넘어갈 정도로 순진한 부모는 아니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정시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이 미친 교육환경에서, 그나마 정시가 적어도 수시보다는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3년 내내 피를 말리며 준비해야 하는 수시보다, 그러다 한번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수시보다,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용납하지 않는 수시보다, 그러니 중학교부터 아니 초등학교부터 달려야 한다는 수시보다
그렇게 준비해서 붙어도 왜 붙었는지, 떨어져도 왜 떨어졌는지도 모르는 수시보다,
그나마 정시가 아이들에게 더 공정하고, 더 인간적이고, 더 교육적인 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시는, 부모와 사교육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도 최소한 도전은 해볼 수 있으니까요.
적어도 합격한 아이들이 왜 합격했는지, 탈락한 아이들이 왜 탈락했는지 알 수는 있으니까요.
뒤늦게 공부할 마음 먹은 아이들에게도 패자부활전의 기회는 열어줄 수 있으니까요.
그 분이 학원비 조금 들이고 아들 영재고 보낸 게 배 아파서 이러는 거 아닙니다.
자녀를 외고, 자사고에 보내고, 로스쿨, 의전원에 보낸 사회지도층을 비난할 생각도 없습니다.
내 아이의 이익과 나의 신념 사이에서 갈등을 할 수도 있고,
아이의 이익을 위해 내 신념을 접고 현실과 타협을 할 수도 있는 게 부모죠.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내 아이가 내 신념에 반하는 방법으로 사다리에 올라탄 순간
수많은 아이들의 인생을 걸고 본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실험을 하겠다는 욕심은... 내려놓으셨어야죠.
내 아이는 일찌감치 안전한 곳에 빼돌려놓으신 분들이,
남의 아이들이 피터지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 개천에서 내 이상 실현하기 위해서 실험 좀 해보겠다는 고집은... 접으셨어야죠.
아, 그 아이들은 이미 용이었던 아버지를 둔 내추럴 본 드래곤이라 애초에 사다리따윈 필요 없는 신분이었으려나요?
입장이 다르면 시각도 다른 거야 인지상정이라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워너비 개천용들의 유일한 희망일 수도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잔인한 짓은 하면 안되는 거잖아요?
진정 숭고한 소명의식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쥬의 정신으로
앞길이 보장된 탄탄대로 걷고 있는 내 아이도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아름답게 어울리며 살아가게 할 생각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이제 그만 평생 발 한 번 담가본 적 없는 개천에는 관심 끄시고 본인 자녀들 진로나 살뜰히 챙기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니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이게 다 니들을 위한 일이라는 오만은... 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