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기사펌]교육관련 진짜 공감하는 기사..

조회수 : 1,035
작성일 : 2017-08-06 15:48:26

따뜻한 개천으로 내려오든가!!


내가 사는 서울 동작구의 작은 보습학원 앞에는 몇 년째 똑같은 현수막 하나가 내걸려 있다. ‘축! ○○고 ○○○양 서울대 ○○과 합격.’ 굳이 분류하자면 하위권 학과에 해당하지만, 최초의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한 동네학원 원장님의 벅찬 보람과 긍지가 자간마다 흘러 넘친다. 출퇴근길 지나칠 때마다 나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이 삐져나오며 혼잣말을 다 중얼거릴 정도. ‘○○아, 공부는 잘하고 있니?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 한국사회의 역군이 되어다오. 강남 금수저들한테 기죽지 말고.’ 남들은 저런 플래카드가 눈꼴사납다지만, 나는 볼 때마다 대치동에 가지 않은 ○○양과 그 부모님, 학원 원장님의 어깨를 안아주고 싶은 기분이다. 학군 안 좋은 평준화 지역 일반고에서 동네학원에 다니며 이룬 저 성취가 더 없이 대견하다.

어떤 반론들이 나올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서울대 입학이 성취의 잣대가 되는 구시대적 학벌 이데올로기를 타파해야 한다, 교육을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보는 저렴한 사고방식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개천에서 용 나기보다는 살 만한 개천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등등. 말인즉슨 구구절절 옳다. 그러나 발화(發話)라는 행위는 그 내용보다 형식, 주체, 시점, 상황이 더 많은 정보를 발신한다. 누가 저 말을 하는가. 왜 저 말을 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대학교수들이며, 거개가 서울대를 나왔고, 자기 자식을 특목고와 로스쿨, 의전원에 보낸 사람들인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싫어한다는 사람들 중 개천 출신을 본 일이 없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가 없다고 웅변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문장 뒤엔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이 저절로 용이 되고 말았네. 미안~’이 생략돼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악의적 생각마저 든다.

교육은 역사상 신분상승의 수단이 아니었던 적이 한번도 없다. 그것만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말하면 옳지 않으나, 그리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위선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왜 교육만이 성공의 사다리인가, 교육 말고도 개천에서 강으로 거슬러 오를 더 많은 사다리들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지, 교육은 신분상승의 수단이 아니라며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자신과 그 자식은 이미 올라온 사다리. 개천용 반대론자들에겐 개천의 정서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 유토피아적 미래를 그려내는 논리적 전망만 승할 뿐 현재를 지배하는 가난의 울분을 너무 모른다. 그러니 내가 하는 사교육은 아이의 재능을 꽃피워주려는 고상한 욕망이고, 네가 하는 사교육은 신분상승에 목을 건 저렴한 욕망이 된다.

내 주제에 이만하면 용이지 생각하는 나로서는 개천에서 아등바등 기어올라 여기라도 와보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곳은 살기가 이토록 좋구나. 내 가족, 친구, 친척, 이웃들도 다 건너오면 좋겠다, 나만 건너와 슬프고 미안하고 외롭다, 교육 말고 다른 방편으로 이 강을 건널 수는 없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개천용들은 쉽게 개천을 저버린다고 ‘내추럴 본 드래곤’들은 함부로 말하지만, 떠나 돌아오지 않을지언정 한 명이라도 더 위로 올려 보내고 싶은 게 개천의 애틋한 마음이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 쳐다보며 출혈경쟁 하지 말고 예쁘고 따뜻한 개천 만드는 데 힘을 쏟자!” 몇 해 전 트위터에서 화제가 됐던 어느 유명인사의 문장들이다. 그의 말마따나 모두가 용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 모두가 용이 될 필요가 없는 사회는 도래하지 않았다. 너희들은 올라오지 말라는 사다리 걷어차기가 아니라면, 개천용을 더 이상 꿈꾸지 말라는 말을 아직은 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정히 그 말을 하고 싶다면, 당신들이 먼저 아이들 손 꼭 잡고 개천으로 내려오라. 아직은 개천이 따뜻하지 않아 올 수 없다면, 그 입 다물라.

박선영 기획취재부 차장대우 aurevoir@hankookilbo.com
IP : 175.125.xxx.42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7.8.6 3:53 PM (119.207.xxx.31) - 삭제된댓글

    따듯한 개천이고 뭐고 간에 4차 혁명의 밀물은 뭘로 막을지.....
    이미 슈퍼리치들이 그자리 다 차지하고
    개천은 다 마라 버릴듯..

    기본 소득 주면 그거 쓰면서 아등바등이겠죠...

  • 2. 동감해요
    '17.8.6 4:15 PM (211.246.xxx.89)

    그 입 다물라22222

    누가 쓰신 칼럼인지 읽다보니 눈물이 나네요
    개천의 용
    누구 눈에는 천박해 보여도 전 참 장하게 느껴지네요
    따뜻한 개천에서 행복하게 살라고
    그걸 왜 니들이 정하냐? 개천에서 살든 말든 그건 나랑 내새끼가 정할 일이지 그냥 셧업하시고 가만히들 계시거라!

  • 3. 동감
    '17.8.6 4:17 PM (211.246.xxx.89)

    개천에서 용나는거 촌스럽다더니
    지자식은 꾸역꾸역 대치로 보내서 서울과고 입성시켰네요
    니자식은 개천출신 아니라는거냐? 누구 눈에는 너도 개천것이야~~~그러니 좀 입다물고 있어라 제발

  • 4. ㅇㅇㅇ
    '17.8.6 5:00 PM (114.200.xxx.23)

    개천에서 용나고 서울대 나와서 나중에 괴물만 안되면 됩니다.
    우병우처럼

  • 5. ㅇㅇㅇ
    '17.8.6 5:03 PM (114.200.xxx.23)

    우병우처럼 아무리 똑똑하고 좋은대학 나와도 인성이 괴물이면 성공한 삶이라고 할까요?
    그들에겐 권력과 돈이 성공한 삶이라고 하겠죠
    문재인대통령처럼 흙수저로 태어나 찢어지게 가난하게 자랐지만 항상 올바름과 정의와 인권을 위해 살아온 삶이 더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결국 그러한 삶이 국민들이 알아보고 대통령을 만들어 주었죠

  • 6. 참나
    '17.8.6 5:05 PM (183.104.xxx.108) - 삭제된댓글

    요즘 하나에 물고 뜯고 흥분하고 ㅠㅠ
    많이 과해요. 왜 그럴까요?

  • 7. 돌돌엄마
    '17.8.6 7:07 PM (222.101.xxx.26)

    캬 명문이네요 퍼가고 싶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747644 서울예대 연극과 연출, 단국대 공연영화학부 연극연출 8 스케치북 2017/11/14 1,819
747643 방탄소년단.....미국 ‘제임스 코든의 더 레이트 레이트 쇼’... 4 ㄷㄷㄷ 2017/11/14 1,733
747642 문꿀브런치 live 1 뉴비씨10... 2017/11/14 618
747641 간호학과 지망생 방학동안 어떤공부를 해야할까요? 11 2017/11/14 1,393
747640 “오빠만 믿어”라던 상사...용기낸 성폭력 피해자는 ‘왕따’ 돼.. 2 oo 2017/11/14 1,557
747639 곡물바추천부탁드려요 다이어트 할때 먹을려구요 1 잘될꺼야! 2017/11/14 668
747638 오상진 엄마는 오상진 키울때 깜짝깜짝 놀랬을것 같아요. 68 ㅋㅋㅋ 2017/11/14 27,657
747637 진드기 방지 베개 커버 쓰시는 분? 3 2017/11/14 956
747636 최순실 죄목별로 다 선고받나요? 1 ... 2017/11/14 1,021
747635 추천하실만한 재래시장 있나요? 8 지방도 괜찮.. 2017/11/14 1,415
747634 온정선 불쌍하네요 9 사온 2017/11/14 2,484
747633 5살 남자아이에게 선물을 보내고 싶어요 6 ,, 2017/11/14 722
747632 박정희 좋아하는 사람들은 8 문지기 2017/11/14 1,180
747631 돈문제로 인한 피해와 인간관계.... 5 책임감 ㅠㅠ.. 2017/11/14 1,935
747630 2학년 띄어쓰기와 부호 어렵네요 4 어렵다 2017/11/14 945
747629 혼수그릇 스틸라이트 2 그릇 2017/11/14 1,341
747628 울나라 드라마 넘 많은거 아닌가요?? 6 마mi 2017/11/14 1,058
747627 김선욱 개헌특위 자문위원장 “미래지향적 개헌 위해 성평등 규정 .. oo 2017/11/14 628
747626 오상진 김소영 보면서요- 21 리틀래빗 2017/11/14 11,577
747625 가방이나 옷 사는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왜 더 젊었을때는 안.. 10 마망 2017/11/14 5,131
747624 일부러 아기 안낳으시는 분들 이유가 뭔가요.. 21 ... 2017/11/14 3,893
747623 퇴계로 제일 병원이 요즘도 괜찮나요? 9 ........ 2017/11/14 1,570
747622 이니 하고 싶은거 다해~ 11.13(월) 1 이니 2017/11/14 544
747621 35살 37살 완전 다른 세대인가요?;; 15 .. 2017/11/14 3,282
747620 패션 잘 아시는 분들 많은듯 하니...헬프미 4 ... 2017/11/14 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