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희와 할머니 관련 글을 읽으니 맘이 심란하네요.
1.
얼마전 울언니가 갱년기 때문에 힘들다고 하니
80대중반이신 울엄니가 자기네 때(세대)에는
갱년기라는 말이 아예 없었다고 하시더라구요.
폐경기의 호르몬 변화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그런 증상도 없었고 그런걸 문제로 언급한 이름도 없었다는 거지요.
우선, 그 시대에는 살기 힘들어서 그랬을 수가 있었겠지요.
30년대생이면 조국 근대화 기치가 가열찼던 70-80년대에
중년이 되고 갱년기를 맞이하셨을테니까요.
또한, 개인화가 진척된 오늘날처럼
남녀노소 모두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상황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척들 이웃들 관계로 인생이 꾸려지던 시기니까
자신의 몸이나 감정에 대해 더 예민하게 신경을 쓰거나
감각을 발달시켜 관찰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요.
2.
게시판에 계속 올라오는 준희의 사춘기 이야길를 보니
사춘기도 일종의 문화 현상이라는 사실이,
그러니까 사회마다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며
그 사회의 다른 요인들, 가족관계나 교육문제 가치관과 도덕 등과
맞물려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네요.
이 문제는 이미 1930년대에 미국의 대중적인 인류학자 마가렛미드가
사모아의 청소년기에 대해 이미 책으로 낸 바도 있지만요...
그러니까 사춘기라서 그래라고 하는 것으로 문제가 설명되지는 않지요.
오히려 오늘날 한국의 사춘기가 왜 이런지에 대해,
좀 더 따져보고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3.
특히 여자아이들의 중2병이 요즘에는 더 무서워졌고
그 이면에는 한국사회에서 여자의 젊음(실은 어림?)과 섹시함이
상업적으로만 잘팔리는 가치로 더 칭송되고 있다는 문제가 있지요.
이번에 준희와 할머니 사이에서도 아이돌학교가 이슈가 되었지요.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어머니역할과 모성에 대한 반성이 필요해보여요.
준희 할머니의 어머니 역할에 대해 찬반 의견이 분분한데
다 너 잘되라고 그랬다는 마음과 동기를 십분 이해하더라도
그런 마음이 본능이고 자연스러운 모성이라고 전제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요.
한국의 어머니들(여기서는 준희 할머니)이 아이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나아가 자신의 행불행과 자기 인생의 성취나 실패를 투영하면서
심리적 압박을 주고 통제하는 것,
이것이 본능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퉁쳐서는 안되겠지요.
한국 사회에서 한 세대 만에 여성의 법적 지위나 대우는 나아졌지만
세상은 그보다 더 빨리 변하는지라, 여성들은 더욱 더,
노인으로, 중년으로 청소녀로 제각각의 인생단계에서
새롭고 복잡한 인생 문제에 계속해서 직면하게 되네요.
우리 모두 각자의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계속 살아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