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인 정치불신은 상당기간 지속되었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공간이 확인 되었다. 지난 8월 24일에 있었던 서울 주민투표의 결과는 정치권은 애써 외면했지만 그 속내를 파악하면 가히 충격적인 결과인 것이다.
"나쁜 투표, 착한 거부"라는 충격적인 야당의 행태는 인내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25.7%의 서울 유권자가 투표를 했고, 그들은 나쁜 투표에 가담한 나쁜 사람이었으며, 투표함과 함께 순장을 당했다.
야당의 투표거부 앞에 투표함 개봉선인 33.3%를 넘지 못하자 한나라당은 패배를 선언했고 환호작작하며 잔치국수를 시청앞에서 나눠 먹는 야당의 모습이 있었다. 정치권은 자신들의 총체적 패배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서울에서 대승을 거뒀다. 당시 한나라당이 1,834,534표를 서울 유권자에게 얻었다. 8월 24일 나쁜 투표(?)에 2,159,095명이 야당의 감시와 선거관리위원회의 방해를 뚫고 투표함에 손을 넣었다.
한나라당이 18대 총선에서 얻은 표보다 무려 324,561명이 더 많다. 총체적 정치불신의 공간이 확인된 것이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정치혁명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 사람이 윤여준이었고, 간판스타는 안철수다.
공허감을 느낀 대다수의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다. 기대감이 충만되어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야당은 유불리를 따지느라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의 등장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을 가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언론들이 한발 앞서 가고 있다. 새로운 신당이, 안철수를 중심으로 제3세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물론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냉정하게 정치공학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5년 그해 겨울을 기억해야 한다. '황우석 사태'로 불리는 그 일은 대다수 국민 80%가 상실감에 혼란을 겪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은 더 큰 법이다. 극도로 흥분된 상태에서의 자위는 깊은 허무를 남길 뿐이다.
당시 황우석을 중심으로 많은 유력 정치인들이 줄을 댄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황우석의 대권도전이니, 황우석 정당의 탄생을 말하는 정치사냥꾼들의 모습을 봤을 것이다. 황우석은 서서히 스러져 갔고, 이제는 자신의 연구생활을 묵묵히 하고 있다.
사회공학과 정치공학은 다르다. 물론 연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기대와 흥분은 섣부른 자위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기대와 흥분제 역할을 하는 사람, 그가 바로 정치사냥꾼 윤여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9월 4일 안철수는 "윤여준 이외에 김제동, 김여진도 자신의 멘토다..."라는 말로 총체적 정치불신의 공간에 말뚝을 박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마 어느정도 결심이 굳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한 말이 될 것이다.
성공보다 실패의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안철수의 성공이 아닌 실패의 경우에는 제2의 황우석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혹자는 이러한 정치실험의 실패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상처는 쉬 아물지 않는다.
아직 안철수의 정치철학이나 이념성향이 확인된 바가 없다. 그가 어디로 튈지는 점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불확실성의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미래예측 가능한 사회다. 사회공학적 측면에서 안철수를 확인할 수 있지만, 정치공학적 측면의 안철수는 없다.
정치사냥꾼 윤여준을 중심으로 방만한 민주, 총체적 정치불신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왔지만,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키는데는 일정부분 성공하고 있지만, 필자가 느끼기에는 '제2의 황우석 신드롬'으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