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치매 판정 받으시고 구청 치매지원센터에 다니세요.
아직 초기라 등급 판정 못 받으신 초기치매분들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인데
시설이나 프로그램 내용 모두 훌륭해서 엄마도 저도 만족하며 다녀요.
비용은 모두 무료이고 대신 한달에 두 번 보호자 자원봉사를 가야해요.
아침 10시부터 오후4시까지 같이 수업 참관하며 뭐 이것 저것 거들어드리는거예요.
사실 저희 엄마가 전형적인 엄마는 아니어서 평생 엄청나게 상처 받으며 자랐어요.
성인이 되어서도 이로 인한 자존감 문제, 대인관계, 심각한 우울증으로
두 달 전부터 상담치료 받으러 다니는 중이라 엄마와의 관계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루종일 엄마와 한 공간 안에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어서 몹시 부담되었지만
보호자가 꼭 참여해야 한다니 어쩌겠어요.
수업 참관은 처음이었는데
뇌체조 따라하는 것도 제대로 하시는 분 없고
매일 뵙고 인사드렸는데도 "아이고, 이분은 누구신가?" 하시면 또 일일이 인사 드려야 하고 ㅜㅜ
할아버지 돌아가셨다던 할머니들이 죄다 마치 아직 할아버지 살아계신 것 처럼
남편 흉보고 싸운 얘기하시고 ㅜㅜ
강사분이 한 시간에 한번씩 오늘이 몇 년 몇 월 몇 일이지요? 물으면 아무도 대답 못 하시고 ㅜㅜ
보고 있노라니 가슴 답답하고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지는데 요리 시간이 되었어요.
대개의 자식들이 치매 판정 받으면 주방 근처엔 얼씬도 못 하게 하지요.
어차피 요리법도 다 잊어버리셔서 음식을 만드는게 불가능한데다
칼이나 가스 같은 사고 위험이 있어서 저희도 엄마에게 절대 음식 안 시키거든요.
지난주엔 카레를 만들어 점심으로 드셨다던데 이번주 메뉴는 오이 초밥이었어요.
속으로 저거 은근히 손 많이 가는 메뉴인데 할머니들이 하실 수 있으려나 싶었지만
각자 오이, 양파, 맛살, 피클 등의 재료를 나눠주고 아주 잘게 다져달라고 시키니
어머 세상에.......ㅠㅠ
안전 사고 때문에 아주 무디고 잘 들지도 않는 과도를 나눠드렸는데
올해가 2017년인줄도 모르고 자기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오락가락 하시던 할머님들이
야무진 손놀림으로 일사분란하게 착착 다져내시는데 깜짝 놀랐어요.
칼질 끝내고는 티슈로 도마며 테이블을 말끔하게 싹 닦아 내시는데
정말 이건 평생 몸에 배어있는 거라고 밖에는 할 수 없더라구요.
이렇게 늙고 병들어 자신도 잊어버릴만큼 치매라는 병에 잠식당해
이 집안 저 집안 자식들의 우환덩어리가 되어버리신 이 할머님들이
평생 주방에서 자식들 입에 들어갈 음식들 해내느라 종종걸음치던 우리 엄마들이구나.
저 손 끝에서 얼마나 많은 요리들이 만들어졌을까.
평생 해댄 밥이며 국이며 반찬들........
자식들 먹이겠다고 얼마나 많은 세월을 주방에서 보냈길래
자기 자식, 손주 이름도 기억 못해 입에 뱅뱅 돌기만 할 지경인데도 손은 저리도 정확히 기억하는걸까.
요리 끝나고 이렇게 맛있는거 처음 먹어봤다며 너무 신나게 식사하시고
사과를 무슨 색으로 칠해야 할지, 풀칠을 앞에다 하는건지 뒤에다 하는건지 우물쭈물 하는
해맑은 아이들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셨지만 너무 마음 아파서 화장실 가서 몰래 울었어요.
인생의 끝자락이 이런 모습이라면 너무 서글픈거 아닌가요.
그 힘들고 모진 인생을 살아냈는데 자기 자신마저 기억 못하고
다시 아이로 돌아가 생을 마쳐야 한다는게 너무 억울하실듯 해요.
저도 저에게 상처만 줬던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엄마의 인생을 모두 포용하고 안아드릴 수 있는 자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어요.
그 어떤 심리상담사보다 더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