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이는 정말 상위 1%의 초예민남이었어요.
아이를 가졌을 때 컨디션도 너무 좋고 뱃속에서 잘 움직이지도 않아서 얼마나 순둥이가 나오려나...기대했는데 웬걸, 나온 첫날부터 이렇게 이렇게 예민한 녀석이 없어요.
심지어 산후조리원에서도 혼자 잠을 안자고 매일 멀뚱멀뚱 울어재낌 날안아라!!!로 산후조리원 이모님들이 저한테 위로의 한마디씩을 건네셨지요;;;
집에 와서 본격적으로 육아가 시작되었는데...
2주동안 9시부터 5시까지는 도우미 이모님이 계셨어요.
22년차 베테랑이시라던 도우미 이모님께서도 이 녀석을 단 한번도 눕혀셔 재우시질 못했네요...
이분도 마지막날 제 손을 꼭 잡으시고는...
"고생해... 뭐라고 해줄 말이 없네.... 그래도 이 시간은 지나간다우. 힘내 새댁!"
이러고 황급히 떠나셨어요......
친정엄마가 근처에 사시긴 해도 일하시는 분이라 자주 못오셨고, 엄마도 저희 남매 어릴 적에 할머니께 맡기고 일하셨던 분이라 육아에 대해서는 엄마나 저나 백지장인 상태였어요.
손주 보고 싶어서 자주 오시긴 했는데... 이놈의 워낙 울어대고 잠도 안자고 까칠하니... 20분만에 항상 급한 전화를 받고 나가셨지요...ㅋㅋ
정말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남편이었어요.
저희 남편도 조카가 넷이나 있다고 해도 혼자 서울에 자취하던 '서울삼촌'이라 육아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 상태였어요. 그런데 뭐랄까, 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유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이가 울고, 잠을 안 자고, 소리를 지르는 건 당연한 거야. 아이는 너무나도 미숙하고 어린 존재니까. 이런 생각을 24시간 가동하고 있었어요.
아이가 얼마나 잠을 안잤냐면.....
3주 정도 된 신생아가 낮잠을 제 팔에 안겨서 딱 30분 자요...... 1시간 젖 먹고..2시간 울고.....30분 자고, 다시 울고...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저랑 아이랑 어떻게 되어 있을까봐 겁이 났다고 할 정도로요.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손발 씻고 옷 갈아입고 저한테 아이를 받아서 바로 작은방으로 갔어요.
그리고 "괜찮아 아빠가 있어.,괜찮아 아빠가 있어. 걱정마 아빠가 있어" 이 말을 무한반복하면서 아이를 안아줬어요. 아이요? 물론 울어요 계속,. 안자요. ㅋㅋㅋ 그래도 남편은 저 말을 정말 계속하면서 2시간 넘게 아이를 안고 있어요.
저는 그동안 화장실에서 울거나....잠깐 쪽잠을 잤네요 ㅠㅠ
모유수유를 했는데 새벽 3시까지는 남편이 유축한 모유를 먹여서 재웟고요.(밤에는 그래도 2시간씩은 잤어요. 단 배 위에서만요... 저희 부부 침대 헤드에 기대서 앉아서만 잤어요) 그 이후부터는 제가 재웠어요. 그래도 남편 덕에 하루에 4시간 정도는 푹 잘 수 있었죠.
이 생활을 단유할 때까지인 12개월 동안 했어요. 물론 시간이 갈수록 아이도 자는 시간이 좀 늘어나긴 했지만(그래봤자 4시간??) 낮잠도 안고 무조건 돌아다녀야만 잤고.... 아기띠에 안겨서 자면서도 문고리 돌리는 소리만 나도 꺠서 울었네요. 흑.
정말 말그대로 지옥같았던 그 시절 저를 지탱해준 건 정말 남편이었어요.
새벽 3시 이후에 제 담당 시간에도 수유하고 있으면 부시시하고 일어나서 남편이 제 발에 수면양말을 신겨줬어요.(겨울이었어요 그때) 나중에 당신 발목 시릴지도 모른다고....
회식도 거의 하지 않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회식하고 올 때는 꼭 간식을 사다줬어요.
지금 기억나는건....군밤, 닭꼬치요...
따뜻하게 먹으라고 남편이 품 안에 안고 왓는데, 그 거뭇거뭇한 숯검댕이가 하얀 와이셔츠와 양복에 죄다 묻어서 제가 얼마나 혼냈는지요..ㅎㅎ
닭꼬치는 호일에 싸서 왔는데...그 꼬챙이가 호일을 뚫고 나와서 양념이 밖으로 다 새어버린 거예요. 호일을 벗겨보니 허옇 덩어리 몇 개가 ㅋㅋㅋㅋ
근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어요. 제가 먹었던 그 어떤 음식보다 더요.
그리고 길에서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양말(500원짜리요 ㅋㅋ) 완전 촌스러운 머리핀 같은 걸 하나씩 사다줬어요. 그리고 막 3일씩 안 씻은 제 발에 신겼다가, 머리에 꽂았다가.....
그리고 저희가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고 가장 끝집이었는데, 7시 8분만 되면 남편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천천히 걸어와도 되는데...정말 다다다다 하는 구둣발 소리요. 그리고 띡띡띡 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남편이 들어왔어요.
그 모습이 얼마나 반갑고 좋던지....
지금 아이는 20개월인데...여전히 초 예민종자이지만 그래도 혼자 누워서 잠도 자고 예민한 애들이 똑똑하다는 말이 맞는건지 언어도 빠르고 숫자도 벌써 알고... 기특을 뽐뽐하는 중이에요.
저 역시 워킹맘이라 일에 치이고 육아에 치이고 가사에 치이지만,
그래서 가끔씩 빨래더미 저만큼 쌓아두고 누워서 휴대폰 들여다보면서 킥킥 거리는 남편 녀석을 발로 뻥 차주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옛날... 나와 아이를 함께 길러준 남편의 정성과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워서... 한 번 흘깃, 해주고 마네요.
(물론 지금도 남편은 아이에게 최고의 아빠예요. 등하원도 남편이 시키거든요. 아이한테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물으면 1초의 갈등도 없이 아빠! 라고 말해요. 물론 최종 승자는 공룡이지만요 ㅋㅋ)
시간이 더 흐르면 남편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지만...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 절 이해하고 감싸주었던 남편의 행동이...
아마 두고두고 힘이 될 거 같아요...
어젯밤 아이가 고열이 나서 한숨도 못잤는데... 모처럼 회식하고 온 남편은 술 한잔 했는지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자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서 한 마디 해줄까, 하다가 그 옛날 남편의 모습이 생각나서 한번 써봤어요 ㅎㅎㅎ
아.....역시 모든 글은 마무리가 어렵네요.
음. 모두 맛점 하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