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려줬다가 받은 얘기를 보니까 생각나서 써요.
남친이랑 몇 년 전에 홍콩 마카오 놀러간 적이 있었어요.
마카오는 아시다시피 포르투갈령이었고 당연히 유명한 포르투갈 식당이 몇 개 있어요.
그 중 한 군데를 찾아서 택시를 타고 애써 찾아갔지요.
포르투갈 음식, 맛있었어요!
맛이 짜고 강렬하긴 하지만 취향에 맞더라구요. 한국사람들도 좋아할 맛.
포르투갈 와인 먹어볼까 하고 달라니까
와인병 한 개와 물컵 두 개 툭 내려놓고 가던 아줌마,
"여기 와인잔 안 줘요??" 하니까
별 이상한 애들 다 본다는 듯, 여기 있잖아! 하면서 물컵 가리킴.
ㅎㅎ 그 동네는 우아한 와인잔 그런 거 없고 그냥 물컵에 포도주스 마시듯 따라 마시는 거였음.
그런 것도 너무 재밌더라구요. 하긴 와인이 뭐, 음료지 꼭 와인잔에 따라마셔야 하나요.
그런데, 계산을 하려고 하니 현금 밖에 안 받는다는 겁니다.
허걱. 홍콩에서 카드 안 되는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우린 현금이 넉넉치 않았고
그나마 일부는 택시 탈 때 써야 호텔로 돌아갈 수 있었지요.
얼굴색이 하얘진 우리에게 주인장이 그러더군요.
"그래? 그럼 나중에 줘."
"우리 관광객이야, 우리도 다시 와서 먹고 주면 좋은데 그럴 수가 없어."
"그럼 부쳐주면 되잖아."
".........잉, 정말????"
그렇습니다. 한국에 가서 부치라는 겁니다.
우리, 그날 처음 보는데, 한국에서 온 생면부지의 관광객인데 부친다는 말만 믿고 가라는 겁니다.
"아니, 우릴 어떻게 믿고?"
"우린 원래 다 이렇게 해. 다들 부친다고."
"그, 그래? 고맙긴 한데,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당연하지, 내가 은행계좌번호 적어줄게."
"그럼 우리 연락처도 적어줄게."
"됐어, 필요없어. 니네들 연락처가 왜 필요해."
우린 정말 황당했어요.
우릴 믿어주는 건 고맙지만,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당황스러움이 앞섰지요.
더더욱 미안했구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실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우린 너무 때가 묻었나?'라는 생각과
`한국 같았으면 얄짤 없이 난리 났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막 오가더군요.
결국 우린 계좌번호를 적은 쪽지를 들고 택시를 타서 호텔에 돌아왔습니다.
그 쪽지 어디서 흘리지 않나 싶어서 꼭꼭 들고 한국에 돌아왔구요,
은행에 가서 부쳤어요.
이자셈 치고 조금 더 넣어서요.
그 포르투갈 식당 이름, 어딘가에서 찾아보면 나올 텐데,
나중에 마카오에 가게 되면 꼭 다시 갈 예정입니다.
옛날 당신 덕분에 `인간에 대한 조건 없는 믿음'을 알게 된 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