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윤태웅 칼럼, 부드러운 언어와 날카로운 논리

high 조회수 : 561
작성일 : 2017-06-09 16:46:39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7736.html


고려대 공대 교수님 칼럼입니다.



사설.칼럼칼럼

[세상 읽기] 부드러운 언어와 날카로운 논리 / 윤태웅

등록 :2017-06-06 19:27수정 :2017-06-07 10:06

페이스북
932
트위터
0
공유
구글플러스네이버블로그카카오스토리싸이월드메일
스크랩프린트

크게 작게

윤태웅
ESC 대표·고려대 공대 교수

수학적 표현에 열광하거나 분노할 이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언어로서 수학은 건조합니다. 모호하지 않아 오해의 소지도 없습니다. 같은 단어를 다른 의미로 쓰지 않으며, 모두 동일한 추론 규칙을 사용하지요. 토론 과정에서 목소리를 높일 필요도 없고, 사람들끼리 상처를 주고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수학적 성과에 경외감을 느끼거나 그런 일을 성취한 수학자의 삶에 감동할 순 있겠지만, 수학적 논리 전개의 과정엔 지극히 건조한 단어와 문장이 등장할 뿐입니다. 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습니다. 단순한 구성 요소로 빚어내지만, 결과물은 아주 단단합니다. 아무도 그 논리를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도 하지만, 글로 빚은 원한이 만년 간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가?’보다 ‘그 말을 어떻게 하는가?’에 저는 더 관심이 있습니다. 사람은 감성적 동물이기에 일상의 영역에선 논리 못지않게 감성적 소통도 중요하지요. 논리와 감성은 서로 무관하지 않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강한 표현이나 없어도 되는 문장 성분이 갈등과 오해의 소지가 되기도 하고요. 건조한 단어와 문장으로 수학적 추론을 이어가듯, 필수적인 요소만으로 군더더기 없는 논증을 펼치는 건 논리와 감성 양면에서 모두 바람직한 일이라 여깁니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에 너무 날이 서 있습니다. 꼭 베일 것만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관련 호칭 문제나 <한겨레21>의 표지 사진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떤 이는 오만했고, 어떤 이는 무모했으며, 충돌은 거칠었습니다. 소모적이었지요. 날카로운 논리를 설득력 있게 펴기 위해서라도 표현의 날은 무디게 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만 가지고 뭐라 하냐 따질 수도 있겠지만, 달을 잘 가리키는 일도 중요합니다. 손가락에 집중하느라 달을 보지 못한다면 억울하다 해야겠지요. 상대방이 야유와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의 대상이라면 말입니다.

부드러운 언어로 정중하게 수평적 소통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두루뭉술하게 하자는 게 아닙니다.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며,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만 구체적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거칢과 마찬가지로 부드러움도 논리적으론 불필요한 요소 아니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칢이 소모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면, 부드러움은 핵심 논점에 집중할 수 있게끔 도와줍니다. 주장을 함과 동시에 들을 준비가 돼 있음을 밝히는 의사 표시가 되기도 할 테고요.

문빠라는 단어는 모호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열정적 지지자를 가리킬 수도 있고, 별생각 없는 맹목적 지지자를 일컬을 수도 있습니다. 둘은 의미가 꽤 다릅니다. 맹목적 지지자라는 뜻이었다면 대상을 비하한 셈이겠고요. 어떤 판단으로든 설득이 목적이라면 쓸 이유가 없는 표현인 듯합니다. 또 한겨레를 한걸레라고 하는 순간, 촛불 시민의 곁을 줄곧 지켜왔던 한겨레는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셈이 되겠지요. 적어도 그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새날을 꿈꾸며 같이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끼리 서로 너무 상처 주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한겨레도 더 겸손해지길 기대해봅니다.

세상은 아직 그대로고, 우린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뎠을 뿐입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더라도 생각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차이는 발전의 소중한 동력입니다. 부드러운 언어로 치열하게 소통하며 함께 길을 만들어 가야 하겠지요. 우리가 현명하지 않으면 어찌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7736.html#csidxe96c031e780a553bba...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7736.html#csidx8b5de23cccbc173bf5...

IP : 116.127.xxx.194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잘 읽었습니다
    '17.6.9 4:53 PM (115.140.xxx.155)

    잘 읽었습니다. 반론 한자락 펴고 싶은 마음도 있으나 칼럼 내용 중
    '날카로운 논리를 설득력 있게 펴기 위해서라도 표현의 날은 무디게 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라는 말에 수긍하기에 마음에 새겨 봅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724926 조카 이뻐하는 것도 서운해하는 친구 17 이것 참 2017/09/03 5,280
724925 일요일 오후 추천 다큐멘터리 3 000 2017/09/03 918
724924 쇼파에 낚였어요. 00 2017/09/03 789
724923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교 1학년 아들... 16 ***** 2017/09/03 4,846
724922 'PD수첩 압수수색', 'KBS 사장 체포영장 발부' 주장했던 .. 2 샬랄라 2017/09/03 944
724921 아래 노후 월 300 글이요 7 북한나쁜놈 2017/09/03 4,705
724920 부모와 소원한 사람은 2017/09/03 776
724919 단독실비 보험료 답해드릴께요 35 현직 2017/09/03 5,498
724918 오뚜기 북경짜장 맛있나요? 11 싼맛에 2017/09/03 1,629
724917 3년 키우던 햄스터가 떠나갔어요.. 15 잘가렴.. 2017/09/03 3,216
724916 비정성시 4 tree1 2017/09/03 697
724915 저는 청양고추 안 넣으면 음식이 맛이 없어요 10 자극적 2017/09/03 2,465
724914 김혜선아들이랑 박상원딸은 어느 대학교 다니나요? 25 ... 2017/09/03 27,675
724913 13년 된 아파트인데요 2 2017/09/03 1,517
724912 대입수시접수시 ... 17 우리랑 2017/09/03 2,850
724911 장례식에서 며느리는 보통 어떤 역할을 하나요? 13 장례식 2017/09/03 8,063
724910 [2008년 7월] 홍준표 , KBS 사장 소환장을 2∼3번 발.. 4 고딩맘 2017/09/03 701
724909 집에 고양이가 피부가 안좋아서요 ㅜㅜ 도와주세요 7 피부안좋은 2017/09/03 953
724908 초밥 몇 개 먹나요? 10 2017/09/03 2,313
724907 한샘 소파 어떤가요? 11 소파 2017/09/03 4,307
724906 다리미판 새로 사야할까요? 1 다리미판 2017/09/03 1,145
724905 그럼 제주위 남친있는 애들은 11 ㅇㅇ 2017/09/03 4,160
724904 집에있음 하루종일 목말라요. 4 프림로즈 2017/09/03 1,175
724903 이런 직원 같이 일하기 싫죠? 7 직장인 2017/09/03 1,971
724902 원래 생리통 심하던 사람 출산하면서 괜찮아지기도 하나요? 20 커피좀 2017/09/03 2,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