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외면한 제주포럼 공허...정립 없으면 온 국민 피의자”
강 주교는 발표 서두에서 “그동안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이 11차례나 개최됐다. 그러나 제주에서 평화를 논하면서도 제주도민들이 현대사에 겪어온 고난과 압박과 희생의 역사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성찰도 생략된 채 세상의 평화를 논하고 토론해왔다”며 “때문에 많은 도민들에게는 (제주포럼이) 참으로 현실과는 무척 동떨어진 형언할 수 없는 공허로 다가왔다”고 따끔하게 꼬집었다.
강 주교는 4.3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 일본, 미국, 이승만 정권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 대해서는 “한반도를 점령한 미군정은 지역 주민들의 삶의 향상을 위해 자유방임 이외에 아무런 정책과 규범을 세우지 않았다. 지주와 자본가들은 매점매석으로 시장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렸다”며 “1947년 3.1절 기념식이 시위로 바뀐 것은 시민들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음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책임을 물었다.
1948년 오라리 방화사건과 관련해서도 “미군정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제주도는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Red Island’(붉은 섬)라고 단정 지으며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공산세력을 완전히 소탕하라는 지시만 내렸다”고 밝혔다. 우익 단체 단원을 파견해 제주 전역 마을을 차례로 포위, 체포, 처형, 연행, 방화하고 초토화 작전을 감행한 이승만 정부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강 주교는 ▲4.3사건진상규명동지회(1960)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1978) ▲이산하의 장편서사시 ‘한라산’(1987) ▲김명식의 자료집 《제주민중항쟁》(1990) ▲제민일보의 4.3 연재보도(1991) ▲제주4.3연구소의 다랑쉬굴 유해 발견(1992) ▲제주4.3특별법(2000)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2003) 등을 거쳐 4.3의 봉인이 풀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강 주교는 “아직 4.3은 국민 대부분이 인지하지 못하고 과거 무덤 속에 파묻힌 잊혀진 사건”이라며 “무차별적 폭력의 원인과 배경을 밝히고, 책임 소재를 규명하고, 4.3 전반에 대한 역사적 정립이 올바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 전체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불의한 집단적 폭력에 가담했거나 방조한 피의자의 혐의를 벗을 수 없다”고 산자들의 역할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