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우연히
재방해주는
(왕과 비) 를 보면서 거기 수양대군과
지금 (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수양대군 비교하며 보니 ...참 재미나네요.
공주의 남자,
러브스토리보다
거기 나오는 인물들
특히 한명회가 역사서에 읽어본거랑 비교하는 재미가 더 있습니다.
앞으로 세조(수양대군)와 사돈이 되는 한명회....
조선왕조 역사중 최대 간신이라는
또 책사로서 엄청나게 머리좋고 교활하고
그리고 못 생기고 ( 책의 표현대로라면 칠삭동이인데도 머리가 준재에 이를만큼 좋은데
얼굴은 완전 거꾸로 삼각형에 사팔뜨기에 그렇게 못 생길 수가 없답니다.)
그런데도 같은 스승아래서 공부하던
친구[ 권 람]과 [서거정] 을 잘 만나서 승승장구 출세의 가도를 달리죠. ...앞으로 공주의 남자에서 활약이 돋보일겁니다.
또 한명회는 한창 권세를 부릴 때 한성부 한복판에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세웁니다.
노후에 시나 읊으며 한가로이 쉰다고 만든건데-
한명회는 정자의 이름을 '물새들이 희롱하는 정자'라는 뜻으로 [압구정]이라고 지었다네요.- 실은 이게 권력을 사고파는 자리이기도 했다니..
수양대군에게 "나의 장량"
이라는 애칭?을 받으니 얼마나들 그 권력대열에 끼고 싶은 시종잡배들이 많았겠습니까.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릴
권력의 행사자리이기도 했죠. 온갖 재물을 받으며 관직자리 팔고 인맥을 만들고..
나중에는 명나라 사신들까지 사사로이 거기서 대접하다
삭탈관직 당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하여튼 권세가도를 달리며 셋째딸을 수양대군 의 차남 해양대군에게 시집보내고 그딸은 장순왕후라는 칭호를 얻습니다.
그러나 첫아들을 낳다가
7일만에 죽고말죠. 어쨋든 그 사위는 예종이라는 왕위를 오릅니다.
그러나 딸이 왕비에 올라야 하는데
죽고 말았으니 왠지 자기의 자리가 불안했던지 또 넷째딸을 왕비에 오르게 만드는 책략을 씁니다.
수양대군의 장자 의경세자가 요절하자
그의 부인인 수빈 한씨가 궐밖으로 나와 살자-수빈한씨는 인수대비의 10촌도 넘는 먼친척뻘임 -
인수대비를 찾아가 그 수빈한씨의 아들을 꼭 왕위로 오르게 만든다고
다리를 놓게 하여 넷째딸을 시집 보내니
그가 바로 자을산군 혈 입니다.
나중에 성종으로 등극하게 되고 그 딸은 공혜왕후 라는 왕비자리에 오르죠.
두 왕들을 ( 세조와 성종)까지 맘대로 등극시키는 걸 보면 대단한 책략가입니다.
1453년 계유정난을 통해 세조에게 관련된 신하나 수하의 모든 사람들의 성향을 적은 살생부 를 만들어
처형하거나 관직을 주거나 등등 하다가
1456년 단종복위 운동을 미리 알고 성삼문외 그 집현전 학사들 거기에 관련된 약 800명을
살생부에 의해 처형게 하고
또 수천명을 유배보내거나 귀양살게 했다고 하니 정말 역사서에 남을만한 간신배입니다.
그리고 인맥을 통해- 세조와 사돈간이며
사위들이 예종과 성종이었으니 얼마나 권세가도를 달렸을지 추측할 수 없을정도이겠죠.
정몽주의 서손녀도 첩으로 거두고
이러한 엄청난 인맥과 재력으로
그 칠삭동이 한명회에 의해 자손이 번창했던걸 보면
지금의 정치판이나 재력가중에 이 한명회 자손들이 엄청나게 많을 듯 합니다.
한명회의 공으로 왕위를 오른 세조(수양대군)는
그 고마움을 갚고자 두고 두고 갚았다?는데 이런 일화도 전해집니다.
수양이 세조로 오른뒤 사돈을 맺고
한명회집에서 술 대접 받은적이 있답니다. 거기에서
술자리를 함께 하던
한명회의 첩 두명(정씨와 이씨)에게서 세조에게 하소연을 했답니다.
자기네는 부인 대접을 못받고 억울하다나 뭐다나 나중에는 엎드려 울고 불고 하니
나중, 친히 궁궐로 불러들여 세조가 친히 교지에 옥새찍어서 둘다 정경부인 으로 승격시켜 주었다고 하더군요.. ㅡ,.ㅡ
그 부인3명과 수명의 첩들의 자손은 더 떵떵거리며 살았다는데..
참 무어라 할 말이 없습니다.
하여튼
공주의 남자 를 보면서
한명회를 다시 생각합니다.
그 간신배의
친인척의 계보가 다 후덜덜 ~~~
어쩌면 그렇게 살아남는 재주가 비상한지~ 혀를 내두릅니다.
지금도 한명회자손들은 대대손손 압구정을 기반으로
우리나라를 쥐락펴락
떵떵 거리며 살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