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문재인, 신사의 품격 - 김외숙(법무법인 부산 변호사)

저녁숲 조회수 : 2,404
작성일 : 2017-05-09 22:33:46

신사 문재인: 인간에 대한 예의






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에 와서 변호사를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문재인 변호사 때문이었다. 1990년대 초반, 부산·경남지역에서 노동, 인권사건은 문 변호사가 도맡고 있었다.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고시공부를 한 건 아니라고, 나름대로 정의감에 충만해 있던 예비 법조인들에게 그는 훌륭한 역할 모델로 이름나 있었다.


노동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불쑥 찾아간 나를, 그는 흔쾌히 맞아 주었다. 체력이 약해 비실거리지나 않을지, 출산이나 육아로 업무에 지장을 주진 않을지 등등 여자라서 일시키기에 불편할까 따지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때까지 사회경험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던 나는 문 변호사의 그런 태도가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는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변호사를 시작하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사람에 대해 그런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서서히 알아갔다. 나만 해도 변호사로서 조금 꾀가 나기 시작하자 사람을 가려 판단하고, 지레 선입견으로 말을 자르고, 유불리를 따졌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변호사의 제한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지혜라 여겼다.



하지만 문 변호사는 달랐다. 내가 보기엔 반복되는 쓸데없는 이야기, 순전히 억지뿐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당사자에게도 그는 그렇게밖에 못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읽을 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가족들에게서도 외면당한 사람, 의지할 데 없는 사람, 절망에 빠져 죽음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그를 찾았다. 돈 받고 남의 일 해주는 변호사지만 그렇게 신뢰와 의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를 통해 보았다.



수년 전의 일이다. 우리 사무실에는 아주 질기고 질긴 사건이 하나 있었다. 사건이 그렇게 되는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사건 본래의 성격이 그렇거나, 아니면 당사자가 독특하거나.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건이었고 당연히 문 변호사를 보고 찾아온 의뢰인이었다.


그녀는 도무지 청구취지에 담길 수 없는 내용을 주문했고, 한 가지를 설득시키고 나면 다른 요구사항을 들고 나오는 식이었다. 그녀의 주치의들과 법원 근처의 웬만한 법률사무소들도 이미 두 손을 든 상태였다. 그녀는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고, 불쑥 나타나 오랜 면담으로 업무를 중단시키고도 돌아서면 다시 할 말이 생각나는지 전화로 문 변호사와의 통화를 요구했다. 직원들은 그녀의 성화에 전화를 바꿔주지 않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문 변호사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문 변호사는 그 흔한 “법정 갔다고 그래”라는 핑계도 대지 않았다. 가끔 얼굴을 찌푸리며 담배를 찾을지언정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호소를 끈덕지게 듣고 있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스러운 상황에서조차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



결국에는 문 변호사의 한결같은 태도가 세상에 모든 원통한 일을 혼자 당한 듯이 응어리진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녀뿐만 아니라 우리 사무실 식구들까지도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신사의 품격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데 있고 그 예의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나오는 것임을 오늘도 되새긴다.




※이 글은 제408호(2012년 7월23일자)에 실린 것으로, 필자의 허락을 받아 여기에 다시 싣습니다.
IP : 123.99.xxx.224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345
    '17.5.9 10:41 PM (222.110.xxx.123)

    좋네요 감사

  • 2. ***
    '17.5.9 11:32 PM (119.203.xxx.218)

    파파미신사 문재인
    자랑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10년 동안 망가트린 이나라를
    바로세우는 험한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기에 걱정이 앞섭니다.
    응원합니다.
    문재인 아자!!!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693266 실제 사례계신분 얘기 듣고 싶어요 상속.. 4 ..... 2017/05/30 1,114
693265 [단독]‘블랙리스트’ 김기춘, ‘화이트리스트’로도 추가 기소될 .. 1 깨소금~ 2017/05/30 976
693264 초고추장 양념 ~쫄면, 회덮밥, 골뱅이 무침, 두릅 43 여름임다! 2017/05/30 4,015
693263 롯지가 눌러 붙고 까만색이 음식에 계속 묻어 나와요 4 롯지를 오랫.. 2017/05/30 1,363
693262 48평 살다가 22평 살 수 있을까요? 17 .. 2017/05/30 4,420
693261 문재인 정부의 첫 조각, 그리고 윤서인의 웹튠 18 길벗1 2017/05/30 1,961
693260 이니 하고 싶은거 다해~ 5.29(월) 3 이니 2017/05/30 647
693259 Pt받는데 17 황당 2017/05/30 3,006
693258 예은아빠 트윗- 세월호특조위를 세금도둑이라고 몰아붙이고, 8 ㅇㅇ 2017/05/30 1,306
693257 나이든 아줌마들 에버랜드 잘놀다 올 수 있는 팁 알려주세요 18 백만년만에 2017/05/30 2,281
693256 돼지발정제도 넘어간 당이 8 자스민향기 2017/05/30 1,047
693255 [펌글]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세대는 70년대생들. 35 ㅇㅇ 2017/05/30 4,069
693254 주진형씨 집안은 어떻길래????? 23 ar 2017/05/30 5,930
693253 아파트 상해보험.. 1 ... 2017/05/30 1,212
693252 베이비시터 짜를 일인가요? 8 Dd 2017/05/30 3,070
693251 문재인대통령이 이인걸 행정관을 뽑은 이유 13 ㅇㅇㅇ 2017/05/30 3,196
693250 당일치기 버스여행 단체 이름.. 아시는 분 ? 6 서울에서 2017/05/30 1,278
693249 비행기 안에 주먹밥 가지고 들어갈수 있나요? 4 ㅇㅇ 2017/05/30 3,992
693248 여권 유효기간.. 4 ... 2017/05/30 859
693247 불규칙한 생리 기간을 몇 년이나 거친 후에 폐경이 되는건가요? 3 폐경 2017/05/30 3,077
693246 효도는 셀프 9 부모 2017/05/30 1,677
693245 남자들도 입이 가볍죠? 10 남자들 2017/05/30 2,124
693244 인생에서 자기망치는 특징이나 습관 취미 행동 태도 뭔거같으세요?.. 8 아이린뚱둥 2017/05/30 3,949
693243 이니실록 20일차 35 겸둥맘 2017/05/30 2,734
693242 압도적 민심의 문재인 정부,강경화 후보자를 비롯한 모든 인선은 .. 12 88%의 국.. 2017/05/30 2,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