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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어버이날..엄마의 존재에 대한 생각

... 조회수 : 990
작성일 : 2017-05-08 15:05:47

누구나 가슴속에 돌 하나씩 지고 산다..는 말을 어디서 스치듯 들었어요.

그 뒤로 가슴이 답답하고 허전해 질 때 마다

그 말을 떠올리면 왜 그렇게 위로가 되던지요.


제 친정아버지는 엄마없이 계모밑에서 구박받으며 컸대요.

집도 넉넉했고 공부도 잘했는데, 제 친할머니가 셋째부인이었는데 아빠 낳다가 돌아가시고

자식 줄줄이 딸린 넷째부인이 계모로 들어와서 아빠를 키웠는데

친아버지(저에게 친할아버지)도 계모도 전처소생인 아빠를 많이 구박하며 키웠다고 해요.

공부도 많이 못하셨대요.


제 친정어머니도 나름대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자라셨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면 외할머니가 참 냉정하신 분이예요.

자기 자신이 자식들보다 훨씬 더 우선인 마나님 스타일이랄까..

저도 자라면서도 외갓집 정..이런거 그렇게 못느끼고 컸어요.

아빠가 친가와 연끊고 사셨기때문에 명절이면 외가에만 갔어서 외가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향수는 있지만

외할머니에게 막 정 받고 그랬던 기억은 전혀 없어요.

의사소통이 잘 안되고 나한테 관심이 그닥 없달까..그런 느낌..

돌아가셨을 때 눈물은 났는데 그게 누군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한 서러움이었지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립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런 엄마와 아빠가 결혼해서 저를 낳고 키웠는데..

제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제 부모님을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빠와 엄마는 서로 만나서는 안될 사람끼리 만나서 가정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엄마가 필요한 상황이었거든요.

서로 자기를 끌어안고 보듬어줄 사람이 필요했던거죠.

본인들이 남에게 베풀어 줄 수 있을 만큼 사랑을 충분히 받았던 사람이 아니었던거예요.


저는 한 번도 우리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고

나는 그 사랑의 결실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살아본 일이 없어요.

어쩌다 부모님이 사이가 좋은 상황이 드문 일이라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을 정도로

항상 싸웠고, 서로 비난했고, 결혼은 동정으로 해선 안된다. 너는 아빠닮아서 그모양이다.

너는 생긴것도 하는 짓도 애비 닯아서 엉망진창이다. 밖에 나가면 다 너를 싫어할거다.


저는 공부를 잘했어요. 아주 많이.

성격도 소위 말 잘 듣는 타입이라(성실) 밖에선 항상 선생님들이나 이웃아줌마들이 칭찬했어요.

외모도 나쁘지 않아요.

솔직히 밖에서는 치켜세워주는 말들만 들었는데

어쩌다 그런 소리가 엄마 귀에 들어가면

엄마아빠는 어김없이 니가 진짜 그래서 그런 소리 하는 줄 아느냐, 혹여나 진짜로 알아듣고 잘난척하지마라..

그냥 하는 소리다. 니가 그 소리 듣고 그게 진짜 니가 잘나서 그런줄 알면 그 사람들 다 너 욕한다.


지금 남편인 남자친구를 만났어요. 제가 첫눈에 반했어요.

아주 나중에, 그 남자친구가 저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

저는 사실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더라고요.

진짜일까? 얘도 곧 나에게 실망하지 않을까?


새롭게 만난 친구들이 저에게 호감을 표시하며 다가오면

저는 그게 불안해요. 어차피 나에게 실망하고 떠나갈 수순이라는걸 예감하는 것 같아요.

제 곁에 오래 있어주는 친구들도, 얘가 나에게 많은 걸 참아주고 받아들이고 있을 거라는..

즉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 친구가 참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 내 곁에 있는거라는 생각이 아주 강합니다.

어릴 때는 오히려 위악적으로 굴어서 친구들을 떨궈내기도 했어요.

왜냐면 어차피 떨어질 친구들..빨리 사라지는게 저도 그쪽도 맘편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미친 듯이 육아서와 심리학서적에 빠져들었고

너무 좋은 사람인 지금 남편 덕분에 지금은 그렇진 않아요.

가끔 여기 게시판에 저랑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글들 올라오면 잘난척 댓글도 달아요. ㅎㅎ

관계에 휘둘리지 마세요. 주도권을 가지세요.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내 중심으로 생각하세요..

어쩌면 그 말들은 제가 끊임없이 저에게 하는 말들일겁니다.


남편보다 엄마가 더 좋다는 사람들.

이 세상 마지막 보루가 부모라는 사람들..

저는 솔직히 그 느낌을 남편한테 느끼고, 설사 남편이 절 배신한다 해도 그 믿음엔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어차피 저에겐 마지막 기댈 곳이니까요. 


엄마와의 에피소드들은 이 게시판에도 몇 번 썼어요.

그 중에 제가 못견뎌서 지운 것도 있는데..

그때마다 댓글들이 이구동성으로 어떻게 그런 엄마가 있냐..였어요.

찢어지게 가난했거나 바람을 피웠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예요.

차라리 그런 부모라면 남들에게 얘기하기나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아요.

저에게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 어린애가 감당하기 힘든 떼쟁이 유아였습니다.


마음 기댈 부모가 없다는 건..가슴이 항상 뻥 뚫린 채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 무얼로도 채워지지 않고 그냥 비워놓고 사는거예요.

그건 실존하는 부모가 아니라(그러니까 생존유무에 상관없이)

부모에게 사랑받았던 기억, 지지받았던 기억들일거예요.


압니다.

이제 성인이면 부모 그늘에서 벗어나야지.언제까지 부모탓할래.

그런데 저는 이미 부모탓 단계(?)는 넘어섰고요..

이유야 어쨌건 평생 뻥 뚫린 가슴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심정을 얘기하는거예요.


저는 금전적으로도 이만하면 만족하고 살고

남편, 너무 좋은 사람이고

아이들, 사랑을 마음껏 주며 잘 키우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그럴듯하고

소위 아주 아쉬울 것 없이 평범하게 잘 살아요.

그래도 가슴속에 있는 돌 하나..그건 친정이네요.


전에 제가 쓴 글에 어느 분이 그런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본인도 비슷하다고..그래서 아이들에게 가슴이 아닌 머리를 한 번 거친 사랑을 주게 된다고.

저도 항상 제 아이들에게 미안하고..저같은 여자 만난 제 남편에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미안합니다.


어버이날 남편이 시부모님이랑 전화통화하는 걸 보니

질투인지 아쉬움일지 모를 마음에 서러워서 글 좀 써봤습니다.

저는 한 번도 엄마랑 마음 푹 놓고 통화한 적이 없거든요.

전화번호만 뜨면 가슴 두근거리고.. 심호흡 한 번 하고 전화를 받아요.


부모님도 부모님 입장이 있겠죠..근데 저는 그걸 받아들일 정도로 부모님을 인간적으로 믿지 않아요.

그냥 당신들이 알아서 삭이시라..하고 싶어요. 저도 제 몫의 돌을 이렇게 삭이고 있으니까요.


그야말로 저도 낼모레 마흔인데..

그냥 안하고 싶은건 안하고 살려고요.

부모님이 낳아서 키워준 건 고맙지만

그건 자식을 낳은 이상 반드시 해야하는 의무같은 것이라고 생각되고요.

같은 논리로 저도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부모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나중에 저를 떠올렸을 때 어떤 이유로든 마음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자식들이.

저를 생각하며 허전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불쌍해하거나 안타까워하지도 말고

우리 엄마아빠, 든든하게 잘 살아서 자식인 내가 걱정할 필요 없는 사람..으로

저는 그런 부모였으면 좋겠네요.


오늘 어버이날,

이유는 달라도 저랑 비슷하게 마음 허전한 분들 많으실 것 같아서

주제넘지만 길게 풀어놓아봤습니다.


IP : 1.233.xxx.70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잘 크셨네요
    '17.5.8 3:44 PM (112.186.xxx.156)

    저도 원글님 못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있어서
    이런 아픔을 딛고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기에
    원글님이 극복해낸 것이 대단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원글님네는 남편 분은 집안이 정상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저희는 남편도 저도 최강 막장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라서
    뭐 좋은 점은 서로의 상처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일지.
    저희는 애들은 다 컷는데 애들이 그래요.
    엄마 아빠같은 원가족의 문제를 이겨내어 우리 가족은 그런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았고
    우리 나름대로의 행복을 일구어서 고맙다고요.
    저희는 애들이 외가이든 친가이든하고 완전한 절연을 원하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못해주는게 좀 미안하네요.
    저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남편도 장남 개룡이라서요.

  • 2. 0000
    '17.5.8 6:13 PM (116.33.xxx.68)

    어버이날 양가에 전화도하시않았어요
    복잡한가정사
    남편은 엄마가 두번째부인 고생만하시다가 돌아가시고
    저는 엄마가 막장남편을만나 이혼하시고 혼자 살고계시는대 막장아들이 있어요 아들바라기로 말이안통해요
    양가 생각만하면 가슴속이 넘답답하구 분노가 치밀고
    우리애들에게 차마 양가복잡한가정사 이야기해줄수가없어서 괴롭습니다
    그래서 남편이나 저나 상처투성이인채 만나 서로의지하고
    우리아이들세대에서 악순환고리를 끊어내는게 목표입니다

  • 3.
    '17.5.8 7:06 PM (182.222.xxx.32) - 삭제된댓글

    다들 크고 작음의 차이지 비슷한 고민과 상처 있을듯 해요.
    저도 결혼전 행복했던 기억이 없어요.
    결혼도 친정에서 벗어나려고 한거였구요.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지금도 답답하고 친정모임이 있으면
    너무 불편하고 가기 싫어요.
    엄마 아빠는 제게 늘 부끄러운 존재고 특히 엄마는 혐오스러워요. 늘 아빠욕을 들으며 자랐어요. 감정컨트롤이 안돼서 길거리에서도 차마 입에 담을수없는 욕을 하는 분이었어요.
    도피처로 선택한게 남편이었는데 그렇게라도 자기랑 결혼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남편이네요.
    남편을 통해 많이 치유되었고 배웠어요. 감사하지만 부끄럽기도 해요.
    그래도 이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려고 노력해요. 이것뿐이 할 수 있는게 없어요. 막상 마주치면 너무 화가나서요...
    그들도 불쌍한 인생이었다는걸 인정하고 기도해주세요.

  • 4. 글 감사합니다
    '17.5.8 11:20 PM (125.184.xxx.67)

    오늘 아주 힘든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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