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씨앗인 비교 버리기>
몇 해 전, 여성들만 모인 모임에 나갔었다. 다들 그럭저럭 잘 사는 편인데 한 사람이 특히 남들이 부러워 하는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본인은 물론 남편도 잘 나가고 있었고 아이들도 잘 자라준 편이며 본인은 외모도 더 젊고 아름다와졌다.
오랫만의 만남, 유독 그 여성만 빛났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이 반짝반짝거렸다. 그 날 입고 온 옷부터 신발, 가방, 피부 모든게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성공한 여자가 아름답다는 걸 실감했다.
그 날, 나도 나름 갖추어 입긴 했지만 그녀처럼 반짝일 게 없었다. 내세울 것도, 가진 것도, 그렇다고 내면에 자신감도 별로 없었다.
피부도 푸석하고 머리결에 윤기마저 사라진 내 모습은 오히려 초라함에 가까왔다.
그 모임을 다녀 온 후, 우울함이 엄습했다.
그 동안 나도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는 원하는 것들을 얻지 못했는지…특히 선거에서 패한 후 찾아 온 무기력감을 다루는 게 쉽지 않았다.
그 감정은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몽땅 거두어 버릴 정도였다. 어두운 마음에는, 응달에 습기와 이끼가 잘 끼듯, 동작과 만남 등을 기피하게 하는 특성이 들어 있었다.
그 때 그나마 익숙한 책과 묵혀 둔 종이를 다시 꺼내 정리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좋은 글을 써 둔 노트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내가 비교할 것은 옆 친구가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이다(안철수).
나는 그 구절을 보고 나를 점점 초라하게 만드는 상대와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비교해 보자란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내가 가능할 수 있는 작은 목표로 ‘하루에 수영 1킬로미터”로 잡았다. 당시 나는 50미터를 겨우 가는 수준이었다. 50미터는 대학에서 졸업 조건이었기에 가능한 거였다.
그 목표를 세운 다음 날부터 거의 매일 수영장으로 갔고, 100미터씩 늘려 갔다. 목표를 세운 후 서너 달 후 쉬엄쉬엄이지만 1km를 갈 수 있었다.
수영은 호흡이 절반이었다. 물 속에서 숨을 서서히 뱉으면서 오래 수면아래 머물 수 있게 되자 물 속에 있는 게 덜 고통스러워졌다.
어느 날 운동목표를 채우고 나자 뭔가모를 자신감이 솟구쳤다.
락스물때문인지 머리 색깔은 탈색되었고 피부도 눈에 띄게 거칠어 졌지만, 체중이 줄면서 움직임이 경쾌해졌다.
지금 나는 더 이상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나는 수영처럼, 내 속도로 내 목표를 향해 갈 뿐,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
비교는 경험해 보니, 불행의 씨앗이었다. 선거때는 당선된 사람과 비교하니 내가 불행한 사람이 되었고, 나보다 더 가진 사람을 만나면 내 없는 부분들을 그와 비교하여 또 불행해졌다. 그러나 언제까지 남과 비교하며 나를 불행한 사람으로 규정지으며 살 순 없는 일, 그래서는 안되는 거였다.
게다가 인구 대국인 중국을 오가다 보니 사람이 흔함을 피부로 느낄 때가 많다. 복잡한 곳에 가면 여기에 사람이 몰렸으니 다른 곳엔 좀 한적하지 않을까란 기대를 했다. 그런데 어느 관광지도 내가 기대한 한적함은 없었다. 모든 곳(관광지)에 모든 사람이 모인 듯, 북적였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중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 비슷할 진 몰라도 완전히 같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 이 사실은 경이감 그 자체였다. 인구 대국,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에서 오히려 사람이 특별하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은 모두, 다름을 갖고 있는 소중한 존재이니 비교하지 말고 각자 그 다름을 잘 가꾸며 살아야 겠구나…
나는 비교로 지금도 힘들어 할 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이 글을 쓴다. 옆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제보다 나의 기술이 늘고 지식도 늘면서 자기 힘이 생기게 된다. 그 힘은 내면의 힘으로 더욱 자라게 된다.
지금부터 가능한 작은 목표를 세우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새 비교로 인한 불행은 사라지고 적어도 어제보다 강한 나와 마주하게 되리란 말을 꼭 전해 주고 싶다.
출처 :안철수 지지자님 블로그 글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