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의 생년월일은 1962년 2월 26일 입니다.
저는 1963년 4월, 같은 부산입니다.
안철수의 사립국민학교(1996년 초등학교로 바뀜/국민학교세대 입니다.)를 다녔다는 자료를 보고
며칠 동안 느낌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안철수 초등학교 졸업, 안철수 졸업한 초등학교 등의 네이*에 검색어를 넣어 봤지만
거의 검색되지 않고 구글에 검색이 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절 부산 시내 사립국민학교는 중구, 서구 중심 "남성국민학교"
진구, 해운대구, 남구는 "동성국민학교"
동래구 중심 "동래국민학교"
2009년 10월 23일 기준으로 위 학교는 유지되고 있고
분기당 학비가 150~170만원입니다.
안철수 후보 덕분에 공부했습니다. ㅎㅎ
1960년 부산과 경남도 포함 국민학생 인원수는 569,726명, 교사 11,1161명(1반 기준 51명)
1969년 부산시 자료가 안나와 경남도만 614,565명 교사 9991명(61명) / 경상남도교육기록관 참조
1962~63년생은 베이비부머 세대입니다.
물론 안철수 후보의 부친은 의사이기때문에 그닥 해당사항은 없는 걸로 판단되며,
제가 국민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한 반에 62명 정도 였습니다.
부산의 그 당시 국민학교 현황을 찾을 수 없었지만 이미 학교에 학생들이 넘쳐
같은 지역의 다른 국민학교와 학생들을 나누기도 했고,
오전 오후반 수업을 저학년 때 한 걸로 기억합니다.
그 때 남성, 동성국민학교는 의사, 변호사, 국제시장, 부전시장 부자자영업자 자식들 아니면
명함도 못 내밀었습니다. 게다가 저 학교재단은 설립자가 친일한 기독교재단, 5.16 직후 공화당 국회의원이
만든 사학재단입니다. 남성국민학교는 초등학교로 바뀐 이후에도 줄서서 대기했고
제 큰 조카가 80년대생, 남성 들어가려고 대기, 600만원 후원금(일명 뒷돈)주고 입학했습니다.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번화가 지역이 아닌 동네에서 나와 사립국민학교 출신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학 가서 그것도 친구 대신 의대 카니발 가서 파트너인 남학생이 남성국민학교
졸업했다고 자랑해서 무슨 천연기념물 보듯 봤습니다.
그게 제 세대 부산의 교육현실이였습니다.
게다가 부도 가난도 아닌 그 당시 직업대물림은 의사가 단연코 최고였습니다.
의대생들 중 절반이 의사로 추정될 만큼 발에 치인 게
의사아들이였습니다. 1982년 부산대 의예과 정원이 180명으로 기억합니다.
1982년, 안철수 후보는 서울대 의대를 가서 서울대 의예과 커리큘럼은 모릅니다만,
부산대 의예과 컬리큘럼 중 인문학은 본인이 선택해서 가지 않는 한 하나도 없었고
본과는 당연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제 세대의 의사들을 보면 "인문적 교양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수식어가
따라 나옵니다. 이 말에 발끈하여 자신의 인문적 교양을 한껏 내펼친 의사는 딱 한명
의대 해부학 교수였습니다. 나머진 술잔 날라오고 ㅎㅎ
제가 그 때 본 의대생들의 이미지가 하도 개떡같이 남아있기도 하고,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연상되는 안철수가 낫지,
정치인 안철수는 마음이 움직이질 않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안철수 후보가 동성국민학교 도서관 책을 다 봤다구요?
사립학교라 모르지만 그 때 제 기억에 학교 도서관 책 얼마 없었습니다.
책보다 그 시절엔 차별되지 않는 교육환경과 거기에서 배우는 인간관계 입니다.
나와 내 친구들의 20대에는 518이 있었는데
안철수 후보는 왜 지금 518이 보입니까?
사람이 잠시 속일 수 있어도 거의 변하지 않는 게 목소리 입니다.
안철수 후보의 지금 연설 목소리에서 나타나는 억지스러움이,
518묘역에서 비석 쓰다듬는 행동, 팽목항에서 힘내십시요 하는 목소리
당최 안철수 후보에게서 저는 한번도 인간의 체온 내지 온도를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이유는 그에게 내 세대에 있을 법한, 아니 있어야할
민주주의 개인적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의사, IT, 안철수랩, 4차산업, 융합과학기술 등
이런 말들이 안철수 후보를 바로 보는 데 막고 있는
장막으로 추정됩니다.
게시판이 하도 정신 사나워 저까지 한 몫하는 것 아닌지
말 안하면 게시판 제목만 보다 돌 것같아 ㅎㅎ
며칠 동안 생각 정리해봤습니다.
결론,
저는 이래서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