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병원에 가서 접수를 한다거나, 빵가게에 들러서 빵을 사는 그 짧은 순간에도
몇마디 대화도 없이 사무적으로 마주친 그 찰나에, 이사람은 어릴때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행복하게 큰 듯한 사람인가보구나 라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그런 사람은 어딘지 기품이 있고 귀여운 뉘앙스가 향수처럼 풍기더라구요.
왜 그런걸까 하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먼저 따듯하게 맞아주고 예의바른 태도가 녹아있어서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하고 언제나 온화함이 그 사람옷깃에조차 입혀져있어서 그옆에만 있어도 따듯한 불앞에 손쬐고 있는 마음도 들어요.
저는, 어떤 사람이었느냐면.
아주 어릴때부터, 엄마아빠의 폭언과 구박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어요.
일곱살때 아빠엄마의 가정불화로 결국은 생계로 이어가던 식당도 문을 닫고 엄마는 혼자 나가셨고 아빠도 저를 고모네집에 맡겨둔채 2년을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빠는, 알콜중독자였어요. 아빠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던 65세까지도 술을 끊지 못하고 마시다 갔는데 술만 마시면 대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오고 밥상 뒤엎고, 어린 우리들앞에서 식칼들고 달려와 엄마를 죽이겠다고 펄펄 날뛰던 날들이 연속으로 이어지던 그 유년시절들이 지금도 여러 기억들과 범벅이 되어 종종 생각나요.
의처증이 있었는데 술을 마시면, 그 증세가 더 심해져서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엄마를 밤 10시까지 기다렸다가
인정사정 볼것없이 머리칼을 움켜쥔채 담벼락으로 끌고 가곤했어요.
그런 아빠가 참 미웠어요. 여자와 북어는 사흘마다 한번씩 패야 한다는 말이 동네사람들 다 잠든 컴컴한 밤하늘을 쩌렁쩌렁 울릴때마다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눈물은 한없이 주룩주룩 흘러내린 자국이 살이 터서 오랫동안 그상태로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그런 아빠가 나중엔 뇌졸중도 걸리고 췌장암도 걸려서 아무것도 못먹고 다리는 초록색으로 갈변한채로 벌벌 떨면서 낡은 마루위에 앉아 있는 이빨빠진 노인이 되어버린 그 세월앞에서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과 , 자식으로써 뭘해줄수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눈물만 마구 솟아나던 그 20대,
이미 7,8년 직장생활하면서 저축한 돈들은 늙고 가난한 부모님께 앞뒤 가릴새없이 빚막음 하느라 두세달 사이에 이미 없어져서
저도 역시 돈없고 가난하기는 별반 다르지않았구요.
제가 이세상에 태어나기전 이미 알콜중독자였던 아빠는 제가 이세상에 태어나 엄마품에 안겨 젖먹고 잠들었을때에도 종종 세들어 살고있던 문을 박차고 들어와 벌벌떨며 기저귀마다 오줌을 뜨겁게 싸고 우렁차게 울어댔다고,그런 아기를 안은채 눈이 시퍼렇게 빛나는 남편눈치를 보며 달래느라 역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몸을 떨던 젊었던 시절의 우리엄마.
그렇게 맘고생하면서 살던 엄마는 지금 73세의 나이에 눈도 귀도 다 잃고 심장수술도 하고 암투병중이에요.
지금은 저랑 같이 살고 있는데 엄마가 고맙고 미안했던지 평생을 지금까지 네게 한번도 사랑한단 말 못했는데 그중 제일 사랑한것은 너였단다라는 말에 갑자기 맘한구석이 노여워지고 차갑게 맘이 돌아섰어요.
이미 시력도 ,청력도 다 잃은 껍데기만 남은 엄마는 말없이 앉아있던 제 등의 촉감만으로도 무슨뜻인지 다 알았는지 힘겹게 일어나 방으로 갔어요.
고모네집에서의 생활도 무척 힘들었어요.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새마을 운동 노래를 들으면서 청소와 빨래, 마당을 쓸어내린뒤 마지막으로 개똥들을 삽으로 치우고 뒤란의 계란을 모아들였어요. 틈만나면 저는 무릎꿇고 앉아 걸레질을 했어요. 반짝반짝 윤이나게 넓은 응접실과 나선형으로 이어진 이층계단들을 닦아올라갔어요. 전 언제나 고모네집의아웃사이더였어요. 저를 향해 흘겨보는 고모부앞에서 억지로 웃었지만 돌아오는건 경련하듯 마구 떨리는 입술끝이었어요.
그런 2년간의 생활끝에 집으로 왔는데 그때에도 심한 구박과 폭언과 배고픔의 연속이 이어지던 날들이었어요.
저도 두아이의 엄마이고 등뒤에 귀신이 와 서있는걸 안다는 42세의 나이기도 한데 가끔은 엄마아빠가 저에게 마이나스 저질이라는둥, 머리에 두부만, 똥만 들었다는둥, 너는 중학교도 보낼수없으니 식모살이나 하라는식의 발언을 촉도낮은 전구불빛 아래에서 한없이 들으면서 풀죽은채 앉아있던 그런 시절들이 어쩔수없이 종종 떠오르곤 해요.
돌아보면 20대의 그 푸른 청춘이었던 때에도 사람들은 너에겐 그늘이 있다고 했어요.
지금은 절 의지하고 같이 사는 눈멀고 청력잃은 엄마가 있고요.
고생많이 한 엄마, 맘아플까봐 따듯한 말로 건네지만 엄마도 촉감으로 알아요.
제겐 엄마에 대한 원망이 앙금처럼 있다는것을.
가끔 제곁의 수많은 사람들은, 어린시절에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일까 혹은 구박을 많이 받은 사람일까
어딜가든 사랑을 받는 사람일까 궁금해요.
차분한편인 저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어쩐지 미움받는 사람인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