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발전하여 독점화 단계에 이르면 국가권력은 독점재벌의 시녀가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87년 6월 항쟁은 독점재벌이 국가권력의 위에 서는 과정이었다.
87년 6월 항쟁은 시민항쟁이 아니라 군바리세력과 독점재벌들 간의 싸움이었고,
독점재벌들은 자신들의 장학생인 우파 정치인(야당)과 시민들을 동원하였던 것이다.
마치 프랑스대혁명의 경우처럼.
독점재벌은 군대라는 폭력조직을 갖고 있지 못하다.
독점재벌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은 정보와 언론, 돈과 장학생이다.
87년 6월 항쟁은 독점재벌들이 이러한 수단을 가지고서 장학생정치인(야당)과 시민을 동원하였던 것이다.
87년 6월 항쟁이 시민항쟁이었다면 이후 국가권력은 시민 권력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6월 항쟁 이후 국가권력은 부르주아 독재 권력이 되었다.
이는 6월 항쟁이 시민항쟁이 아니라 독점재벌들에 의한 일종의 부르주아혁명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재벌들은 국가권력을 놓고 권력투쟁을 벌였는데 두 주역은 현대와 삼성이었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 삼성의 우위가 굳어져갔다.
이에 현대는 김대중 정부 들어서 삼성에 반격을 가하게 된다.
정주영의 소떼몰이 방북으로 얘기되는 현대의 대북노선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이러한 노력은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송금특검을 통해 삼성은 현대를 아작내고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
노무현 세력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자체가 이미 현대와의 권력투쟁에서 삼성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후 권력은 삼성의 독점 권력이 되었다.
권력을 독점한 삼성가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은 역시 권력투쟁이다.
현대와의 투쟁단계에서는 삼성가가 하나로 뭉쳐 현대와 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삼성이 권력을 독점함으로 해서 새로운 단계의 권력 투쟁이 발생한 것이다.
삼성가 내에서의 권력투쟁.
이씨 집안과 홍씨 집안의 권력투쟁.
정치권력 투쟁이나 재벌가 내의 권력투쟁이나 마찬가지다.
부모 자식이나 형제자매의 우애보다 권력이 우선인 것이다.
이 권력투쟁에서 이재용의 조급함은 박그네정부와 결탁을 하게 되었고, 결탁을 통해 국민연금을 끌어들여서 삼성물산과 재일모직 합병을 성사시켰다.
이를 통해 삼성가의 권력투쟁에서 이재용은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재용의 과욕은 결국 독이 되고 말았다.
홍씨 집안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박그네 정부를 그냥 둔다면 차기 권력 역시 친박세력이 쥐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박그네 정부와 결탁한 이재용이 삼성의 권력을 장악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
재벌 권력도 정치권력과 마찬가지로 권력투쟁에서 패하게 되면 끝난다. 골방신세가 된다.
홍씨 집안으로서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권력투쟁에 나서는 수밖에 없는 것.
만일 삼성가에 권력투쟁이 없다라고 전제했을 경우, jtbc의 행위는 삼성가에 대한 자해행위가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jtbc의 행위는 삼성가에 권력투쟁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만일 이재용과 박그네일당의 결탁에 의한 삼성물산 재일모직 합병이 없었다면 최순실의 국정농단의 전모가 세상에 드러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재용의 구속과 박그네 탄핵, 구속에 이르는 과정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재용과 박그네 구속은 삼성가의 권력투쟁에서 홍씨 집안의 1차 승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삼성가의 권력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재용이 이대로 굴복할리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결이 된다.
홍씨 집안은 문재인을 당선시켜 문재인을 자신의 마름으로 삼고자 할 것이고,
이재용은 안철수를 당선시켜 자신의 마름으로 삼고자 할 것이다.
문재인이 되든, 안철수가 되든 똑같다.
어짜피 정부는 미국의 시녀이고, 독점재벌들의 (특히 삼성가) 마름이기 때문이다.
누가 되든 헬조선은 계속된다.
헬조선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헬조선이란 현상은 민족모순, 계급모순, 분단모순이 심화되어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헬조선에서 벗어나 희망의 나래를 펴기 위해서는
민족모순, 계급모순, 분단모순이 해소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