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하늘인들 무심하였으리요.
모든 일을 꾸미고 땀 흘려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을 이루어 내는 것은 하늘이라는 말이 있다.
용비어천가
인류역사상 비교 상대가 없는 성군 세종임금께서는 그때 까지 조선백성들이 쓰고 있던 문자가 우리말과는 전혀 다른 한자(漢字)여서 삶에 바쁜 백성들이 이를 익히지 못해 자기 뜻을 마음대로 펴지 못 하는 것을 안타깝고 불쌍하게 여기시어 우리말에 딱 들어맞는 새로운 글자 28자를 만드시어 세상에 펴내시니 이름하야 “한글”, 즉 훈민정음이다.
인류역사상 비교상대가 없는 성군이 세종대왕이듯이,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모든 발명품이 감히 넘볼 수도 없이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 바로 한글이다.
대왕께서 한글 28자를 다 창안하시고 이의 실용성을 실증해 보고자 3년간 궁내에서 궁녀들로 하여금 이를 써 보게 하는 동시에 반포 1년 전 집현전 학사들로 하여금 조선창업을 찬양 칭송하는 대 서사시를 펴내시게 하였으니 바로 “용비어천가”이다.
오늘날 독재자나 우매한 권력자를 맹목적으로 칭송하는 글을 빗대 용비어천가라고 하나 이는 용비어천가에 대한 말 할 수 없는 모독이다.
봉건왕조시절 후손들이 자기 선대의 개국공적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10책 125장으로 된 대 서사시이자 방대한 역사책이며, 용비어천가의 유일한 흠은 앞 절에 중국의 이적을 찬양하고, 뒤이어 비슷한 조선건국의 이적을 찬양하였다는 점이나, 오늘날 우리가 무슨 큰 국방정책을 수립하려면 미국의 승낙이나 묵인이 없으면 안 되듯이 당시의 주변정세로서는 중국을 무시할 수 없었음으로 불가피한 사정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125장중 유일하게 중국고사를 끌어들이지 않는 장은 제 2장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뮐쌔 곳 됴코 여름하나니/새미 기픈 물은 가믐에도 아니 그츨쌔 내히 이뤄 바라래 가나니” 딱 한 장뿐이다.
이 용비어천가 2장은 우리겨레는 물론 온 인류가 1만년 역사상 쓴 시중 가장 빼어난 시이다.
그 67장을 옮겨본다.
강가에 자거늘 밀물이 사흘이로되 나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잠기나이다.
섬 안에 자실 제 큰 비 사흘이로되 비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마니이다.
앞 절 중국고사의 해설은 생략하고
뒷 절의 해설
고려 말 몽매한 왕 우왕의 장인이자 군통수권자이고 실질적으로 국정을 주관하던 최영장군께서는 이성계에게 요동정벌의 명을 내린다.
이성계로서는 싫었으나 명을 거역할 수 없었음으로 할 수 없이 고려의 모든 군을 이끌고 요동정벌에 나서기 위해 개성서부터 군을 이끌고 북상을 하여 압록강 중간에 있는 위화도에 임시 군영을 설치하고 도강준비를 하고 있었다.
때는 여름 장마철이라 장대비가 계속되고 있었고 이성계나 모든 군사들은 목숨이 위태로운 전쟁을 치르러 가는 것이 내심 못 마땅하였지만 국가의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없어 비가개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강물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이때 이성계가 회군을 결심하게 된다.
즉, 회군은 반역이자 고려조정에 정식으로 반기를 든 요샛말로 쿠데타였다.
모든 병사들도 좋아하며 회군을 서둘렀다.
모든 장병이 배를 타고 출렁이는 압록강을 건너 다시 의주 땅에 상륙을 하여 위화도를 바라보니 바로 그 순간 위화도가 불어나는 강물에 휩쓸려 물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회군 결정이 조금만 늦었어도 고려군은 몽땅 압록강 물고기 밥이 되었을 운명인 것을 이성계가 적시에 회군을 단행하여 모두다 목숨을 건진 것이다.
물밑으로 가라앉는 위화도를 바라보며 모든 병사들이 “이성계 장군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그 즉시 이성계를 앞세운 고려군은 물밀듯이 개경으로 밀고 내려와 최영장군을 처형하고 우왕을 창왕으로 바꿨다 다시 공양왕을 임시로 앉혔다. 마침내 1392고려의 막을 내리게 하고 조선을 창업했던 것이다.
당시의 주변정세
이성계는 할 수 없이 최영장군을 처형하기는 했으나 직전까지 그의 부하였었고 그의 우국충정과 애국심을 결코 부정할 수는 없었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처형은 하였으되 깍듯한 예를 갖추어 성대한 장례를 치르게 했다.
다음으로 중국천하는 원나라가 쫓겨 몽골초원으로 도망갔고,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으나 명나라는 아직 안착이 되지 않아 요동지방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때 만약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단행했더라면 무주공산에 깃발만 꼽으면 우리의 선조 고구려 군이 말 달리던 요동천하는 700여 년 만에 다시 우리의 땅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일이고, 요동고토를 회복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를 이성계의 역심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나서라도 즉시에 요동정벌을 단행했어야 옳다.
-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얘기이고-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서
5천만이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세월호가 마침내 3년간의 긴 잠을 깨고 물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
아-
그 순간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에 해맑은 날이 하루도 없는 한반도의 봄날 강원도 하늘에는 형상과 색상도 분명한 노란리본 구름이 두둥실 떠올랐다.
이게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인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단 말인가?
세월호 인양과 철저한 원인규명
그리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이 땅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건강하고 안전한 나라를 세우는 일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비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일을 지금 사람과, 자연과, 하늘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두둥실 떠올랐던 노란리본 구름!
하늘이 우리국민에게 내보내는 희망의 메시이자 격려입니다.
하늘이 우리를 돕고 있는 데 무엇을 주저하고 망설일 게 있습니까?
우리 흔들림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