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 문화일보 논설위원
프랑스인의 크루아상(croissant) 사랑은 유별나다. 프랑스에서 아침 일찍 동네 빵집 앞을 지나가면, 긴 줄을 보기 십상이다. 전날 미리 사두면 안 되느냐고 물으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크루아상은 갓 구워낸 것을 먹어야 하며, 신선한 아침 공기와 향긋한 크루아상 빵 내음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어로 초승달을 뜻하는 크루아상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래됐다. 1683년 오스만튀르크가 빈을 포위했을 당시, 오스만군의 땅굴 작전을 사전에 알린 한 제빵사에게 이슬람 세계를 상징하는 초승달 모양의 빵 판매 독점권을 부여하면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훗날 프랑스 대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된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1770년 루이 16세에게 시집오면서 크루아상을 가져와 유행시켰다는 것이다. 크루아상, 브리오슈, 팽드 쇼콜라(초콜릿을 넣은 빵), 팽오 레쟁(건포도를 넣은 빵) 등 아침에 주로 먹는 빵을 ‘빈에서 온 빵’이란 의미에서 비에누아즈리(viennoiserie)라 한다.
물론 ‘빈 기원설’에 대해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민족주의자들은 732년 프랑스 남부 푸아티에 전투 유래설을, 터키는 자신들의 ‘아이최레이(달빵)’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바삭바삭한 겉면과 부드럽고 달콤한 속을 즐기는 크루아상 애호가가 늘어나고 있다. 각종 레시피가 소개되고 있으며,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브런치의 주요 메뉴로 떠오르고 있다. 심지어 여자 친구에게 사랑받으려면 크루아상을 잘 구울 줄 알아야 한다며 제빵 학원에 다니는 젊은이도 드물지 않다.
그런데 크루아상을 만들어 팔았다는 죄(罪)로 체포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남미의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경제난으로 심각한 빵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밀가루 소비가 많은 크루아상과 같은 고급 빵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가루 90%를 일반 빵 생산에 사용하고, 나머지 10%만을 고급 빵에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이를 어긴 사람들을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부국이다. 그러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경제 파탄을 맞았다. 차베스를 반미 자주화의 상징으로 떠받들던 한국의 일부 진보적 지식인이 최근의 ‘베네수엘라의 빵 전쟁’도 미국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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