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부터
시어머니라는 위치 때문에 악의 축처럼 나오는데...
실제 그녀가 아들에 집착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아니 인수대비 자체가 그렇게 큰 기록이 없습니다
기록에는 그녀의 시어머니이고
최초의 수렴청정 대비 정희왕후가 더 기록이 많습니다
인수대비는 우리 생각보다 기록이 적습니다
사실 인수대비가 폐비 축출에 앞장 선 것 처럼 나오는 건
연산군이 깽판을 쳤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인식되었는데..
사실 당시 대비 중 유일한 생존자가 인수대비였기에
그녀가 오명을 뒤집어 쓴 것에 가깝습니다
실제 폐비 축출은
궐 내 전 여인들이 다 나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대왕대비가
나 사람 잘못봤다 할 정도로 포기 선언을 했고
둔대라 불린 고급 궁녀들
봉보부인 백씨-왕의 유모-로 대표되는 고급 외명부들
후궁들 모두
최소한 지원 사격 정도는 해주었습니다
인수대비도 이러한 지원 사격 이상은 안 했다고 보여집니다
실제 폐비 축출에 있어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바로 남편입니다
성종이 3년 가까이 저 여자랑 못 산다 했으니까요
인수대비는 지원 사격 정도만 했죠
비상을 소지하고 아들 죽엇으면 좋겠다고 한 며느리가 이쁠 시어머니는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