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복의 표시를 강요하는 사회가 민주사회인가?
1. 요즘 우리나라 언론은 누구에게나 오직 한 가지 질문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신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장일치로 탄핵한 3.10. 헌재의 재판을 승복하느냐?"이다. 이 질문의 답에 따라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은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된다. 자기편과 적으로 구분된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법조인, 언론인, 기업인, 직장인, 학생 심지어는 어린아이까지도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
질문을 받은 시민의 거의 모두가 "만족한다." "당연하다." "승복한다."라고 적극적으로, 자신 있게 대답한다. 지식인이라고 보이는 사람들의 대답은 보다 세련되어 있다. "법치국가니까 판결에 승복해야지요."이다. 판결전엔 탄핵에 반대였지만 헌재에서 전원일치 판결이 났으니까 승복해야 된다는 의미도 되고, 아니면 승복을 하는 것은 법치국가 시민의 의무이니까 이 의무에 반하여 승복을 안 한 사람은 경찰이 잡아넣어야지요. 하는 무서운 위협도 된다. 뉘앙스에 따라 소극적 항복 표시도 되고 반대로 무서운 법적 위협도 되는 이 "양날의 칼"은 이 나라의 최고 경력 법조인들이 며칠 전부터 언론에 공개 발표하여 이 나라의 공식적 답변으로 인허 받은 대한민국의 공식적 답변이다. 질문한 기자는 절대 동감이다. "그래야 법치국가의 시민이지요." 하며 자못 깊은 감명을 받은 표정으로 찬동한다.
극히 드물게 "승복은 무슨 승복이야. 판결은 무효야." 라고 답하는 나이 많은 시민이 보이지만 어김없이 남루한 차림의 주름진 서민이다. 제대로 양복 입고, 얼굴이 매끈한 젊은이는 하나도 안 보인다. 당연히 기자는 '보수 꼴통' 이나, '박사모'의 한심한 노인네로 취급하며 조롱을 보낸다.
2. 이 나라의 언론이 요즘 하는 질문은 순수한 의미의 질문이 아니다. 아군인가, 적군인가를 확인하는 암호, 즉 군호(軍號)이다. 암호에 걸려 적군으로 판명되면, 그날부터 추격을 받아 쫓기는 도망자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3. 국민이 언제 언론기관, 기자님들을 대표자로 선출했단 말인가?
우리나라 헌법상 국민의 대표자는 전국민이 직접, 보통, 비밀, 평등 선거에 의하여 뽑은 직선 대통령 한 분밖에 없다. 국회의원은 지역 주민들이 뽑은 지역 대표이다. 이 지역 대표 300명이 모여 회의체로서 의사를 결정했을 때 비로소 국회의 의사가 되고 이 국회가 국민의 대표자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국회의원 개개인이 국민의 대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적법절차를 거쳐 형성된 국회의 의사가 국민을 대표하는 것이다. 이 이외에는 어느 것도 국민의 대표가 아니다.
국민의 몇 %도 안 되는 촛불 집회가 이 나라의 국회와 같은 대표 기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태극기 집회도 국민의 대표자가 아니다.
항차, 언론기관은 국민의 대표자가 아니다. 언론 기관의 종업원들에 불과한 기자님들은 더더욱 자신이 속한 신문기관을 대표하는 것이지 국민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에 이들이 국민의 대표자로 자기의 지위를 말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대표자라는 국가 공무원 신분을 참칭하는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한국의 언론을 상대하지 않는 것은 저들은 나를 나와 동일한 대한민국의 시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국민의 대표자 즉 대통령이나 국회 같은 권력자로 자격을 참칭하며 질문을 가장한 답변 강요, 즉 수사기관도 할 수 없는 진술 강요의 범죄행위(강요죄)를 멋대로 저지르고 더 나아가 나의 답변이 옳다, 그르다 라고 도덕적, 법적 평가를 내려 나를 재판하려 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이런 불법한 수사, 재판에 증인이 되어 얽히기 싫다. 그래서, 나는 언론의 인터뷰에 일체 응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돈을 내서 광고란을 빌려 말하면 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 길만이 이나라 국민 누구도 위임하지 않은 "국민 대표자" 지위를 스스로 참칭하며 수사권력, 재판권력, 홍보 보도권력을 모두 아울러 행사하는 이 나라 최고의 권력기관, 언론기관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4. 아, 정말 이 나라 국민들이 불쌍하다. 자기들이 위임하지도 않은 자칭 국민의 대표자들로부터 자신들이 원하지 않은 질문을 강요당하고, 저들이 원하지 않는 답변을 표시할 경우 당할지 모를 수모와 이지메가 두려워 억지 웃음을 지으며 비굴하게 원하는 답변에 맞추느라고 고민해야 하는 이 나라 국민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이러한 모습은 주권자의 떳떳한 모습이 아니다. 이러한 모습은 일제 때 신사에 참배를 강요당했을 때 우리 선조들이 지었던 비굴한 모습이나, 독일 나치 정부하에서 "당신은 유태인이 우리와 대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독일언론이 물었을 때 독일 국민들이 표시한 반응이나, 중국에서 문화혁명 기간 중에 "국가주석 유소기를 인민재판하여 주석직에서 끌어내린 것을 찬동하느냐?"고 물었을 때 중국국민들이 보인 반응들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5. 민주주의의 기초는 사상, 언론의 자유이다. 법치주의는 이 사상,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여, 그 침해를 막고, 저지하고, 처벌하는 것이 출발이다. 사상, 언론의 자유에는 반대와 침묵의 자유가 포함된다.
찬동과 승복은 자유라기보다 권리의 행사이다. 민주주의, 법치주의에서 사상, 언론의 자유라고 말할 때에는 반대와 침묵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지 찬동과 승복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와 법치는 소수자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만일 다수에게 찬동하고, 승복하는 것만이 자유와 권리라고 하여 보호되고, 반대로 소수자의 반대와 침묵이 자유와 법치의 보호에서 배제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법치나 민주의 사회가 아니다. 그런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존엄이 부정되는 전체주의 사회이다.
6. 지난 3.10. 소수자의 반대가 표시되지 않은 전원일치의 탄핵인용 결정이 헌재에서 8인의 재판관 이름으로 내려졌을 때, 이 나라의 법치주의, 민주주의는 막을 내렸다.
그 이후 이 사회에는 전원일치 판결에 대한 반대와 침묵은 공적으로 몰려 마치 도망자처럼 되고 있다. (내가 전원일치 판결을 통탄해 한 이유이다. 만일 6:2로 인용되었으면 반대자나 침묵자가 공적으로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 법치주의의 종언을 알리는 저 종소리는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로 치달려가는 것이 내 눈에는 보인다. 그 끝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