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민주국가에서 경제적 합리성이 존중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간명한 지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부나 정당들이 사회복지 정책을 실천하기 위해 재정적자 확대를 쉽게 생각하는지 여부이다. 국민의 복지확대는 민주주의의 목표의 하나이기도 하며, 국민은 공짜를 좋아한다. 따라서 민주국가에서는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한 정당들 간에 복지확대 경쟁이 쉽게 일어나게 되며, 정당들 간의 복지확대 경쟁이 일단 시작되었다 하면 그것을 쉽게 제동할 수 없다. 주권자인 국민이 복지확대를 좋아하는 데, 민주정치를 한다면서 국민이 좋아하는 것을 반대할 명분도 마땅치 않고, 국민이 좋아하는 복지확대를 반대하면 정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희박해지므로 정당들은 복지확대 경쟁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복지확대 경쟁이 전개되면 정당들은 지지표를 더 많이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복지확대를 주장하게 되고, 심지어는 국민들이 절실히 요구하지도 않는 복지항목까지 개발하여 그것의 실행을 약속하게 된다. 정당들 간에 복지확대 경쟁이 시작되면, 복지확대 속도는 세수 증가 속도를 크게 앞지르게 되고, 복지확대는 곧 재정적자의 확대로 연결된다.
이처럼 복지확대가 재정적자를 초래함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 확대를 무시하고 정당들이 복지확대 공약을 경쟁적으로 남발하게 되면 그 나라의 국민경제는 재정적자를 견디지 못하여 파산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국민경제가 파탄나거나 파탄의 위기에 당면해서야 멈추게 되는 것이 민주정치에 있어서의 정당들 간의 복지확대 경쟁이다.
다른 하나는 기업활동의 자유 제한 정도이다. 기업은 자유롭게 활동할수록 이윤을 증대할 확률이 높아진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기업활동의 자유를 100% 보장하기란 어렵다. 그렇다 하드라도 기업이 자기들의 경영상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들을 고용하거나 해고하는 자유라든가 기업활동을 통해 획득한 이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자유 등과 같은 기업활동의 기초적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국민들 가운데 기업인, 그 중에서도 성공적인 기업인은 매우 적다. 기업인에 비해 노동자의 수는 매우 많고, 기업인 중에서도 성공적인 기업인 수는 많지 않다. 민주정치에서 정권을 장악하려면 정당들은 다수 국민의 지지를 획득해야 되기 때문에 노동자와 성공적이 못한 기업인들이 좋아할 정책을 제시하는 경향이 강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정당과 정부는 성공적인 기업활동에 필수적인 기초적인 자유를 제한하는 법제를 마련하게 된다. 그런 기초적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게 되면, 기업인들은 그 나라에서 기업활동을 포기하고 그런 자유가 보장되는 다른 나라를 찾아가게 된다. 기업들이 다른 나라로 떠나면 그 나라의 경제는 머지않아 파탄나게 된다.
한국에서는 지금 정부와 정당들이 복지확대를 위해 재정적자가 확대되는 것을 매우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 보금자리 주택, 초등학교에서의 전면적 무상급식 실시, 반값 대학등록금, 전면 무료보육 실시 등의 주장은 이 나라 정당들 간에 복지확대 경쟁이 시작되었을 말해주는 신호탄이다. 현재의 것만으로도 복지확대 경쟁이 과잉상태에 있지만, 앞으로 해가 갈수록 그 경쟁의 과잉정도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미 실행되고 있는 사회복지 정책들도 재정적자를 확대시키고 있는데, 그런 점을 고려하지 하지 않고 재정적자를 증가시킬 수밖에 없는 새로운 복지조치들의 약속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은 이 나라 정당들이 복지를 위해 재정적자가 확대되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24일 실시된 각급학교 무상급식실시에 관한 서울시 주민투표의 결과도 이 나라에서 정당들 간의 복지확대 경쟁이 재정적자 확대를 무시하고 과잉경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음을 확인해주는 사건이다.
한국에서는 기업활동의 기초적 자유가 제한되고 있으며, 그런 제한의 정도가 해가 갈수록 확대될 조짐조차 보이고 있다. 기업이 정리해고를 했다고 하여 기업주를 국회청문회까지 불러내서 규탄하고 망신 주는가 하면, 정부의 위원회가 기업이윤 공유제를 도입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이 정리해고를 하는데 있어서 불법적인 요소가 없는 한 그것을 사회적으로 징벌하려 하는 것은 기업활동의 자유를 무시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은 협조해야 하고,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착취는 저지되어야 하나, 실현된 대기업의 이윤을 하청 중소기업과 나누어가지도록 한다는 것은 기업의 이윤처분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대기업의 기업주나 대기업들로 구성된 단체의 대표를 국회청문회에 소환하여 망신 주는 것은 기업활동의 자유를 부정하는 의식의 발로이다. 이런 사회적 징벌 및 인격적 피해를 당하고서도 이 나라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오래오래 기업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대기업의 기업주가 있다면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제적 합리성이 존중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두 가지 지표에 있어서 한국은 매우 열악한 상태에 있다. 정부와 정당들이 사회복지 정책을 실천하기 위해 재정적자 확대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며, 정부와 정당 및 사회분위기가 기업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 나라에서는 지금 국민경제를 망하게 만드는 두 가지 요인이 강하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민주국가의 국민경제를 망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조건에서 이 나라 경제가 앞으로 얼마나 오래 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