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집회, 어버이연합,엄마부대 관제데모 꼴 정말 보기 싫네요..깡패단체들..
제발 보수집회라고 하지 말아요. 보수를 받는 집회.
친박집회, 어버이연합,엄마부대 관제데모 꼴 정말 보기 싫네요..깡패단체들..
제발 보수집회라고 하지 말아요. 보수를 받는 집회.
어느 때나 관제데모는 있었을 거 같은데,
지금 친박무리들처럼 저열하고 악랄하게 하진 않았을 거 같아요.
유월항쟁 때..
관제 데모.. 들은 적 없는데요..
쁘락지는 있었죠?
쁘락지는 많았으나
관제데모는 없었어요
그당시엔
시위하면 최루탄 지랄탄에 페퍼포그에 사과탄에 백골단몽둥이까지 다칠각오 잡힐각오 도망칠각오; 하고 나가는거니까
관제데모했으면 지들끼리 때려야했겠죠
요즘은 어느시위든 물대포도 없고 평화적 진행이 가능하니 관제데모도 가능한것같아요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래 관제데모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음.
관제데모란게 뭔가요? 권력기관, 국가가 개입해 현장에 출동시키는 데모를 말하는데
6월 항쟁 땐 존재했더라도 산발적이고 규모가 작아 기사화도 안됐지. 지금 같을 수가 없죠.
이건 굳이 사실 여부를 확인할 필요도 없는 상식 차원인데..
그땐 경찰 통제 불능에 머리통 깨지고 돌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사람이 병신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전쟁 같은 상황인데 돈 몇 푼 쥐어 준다고 그들이 나오겠나요? 모이더라도 얼마나 모이겠어요?
그 외 평시 상황에선 관제데모 당근 많았고
또 중요 시기에선 정치인과 결탁한 조폭두목 지령 받은 조폭들이 많이 나섰죠.
4.19 혁명 또한 고등학생였던 김주열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시체가 바다에서 떠오른 게 도화선이 되긴했지만 기폭제는 그 며칠 후 데모하고 귀가하던 고려대생들이 자유당의 지원을 받는 대한반공청년단이란 명칭의 조폭들에게 무지비한 폭행을 당한게 기폭제가 됐고 통일민주당 창당 용팔이 사건도 그러하고.
87년 이전은 이름만 민주주의 국가인 권위와 폭압의 시대였습니다. 데모라는 이름은 민주주의의 편에서 목숨까지 걸고 해야 하는 준전투적인 행위였습니다. 권력의 꼬리에 붙어서 구린내 나는 떡고물을 탐하는 세력들이 그런 행렬에 동참할 리는 당연히 없죠. 이승만 시절에는 관제 데모가 있었죠, 그것이 공권력의 힘을 업은 백색테러로 이어졌구요.
그러나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는 관제 데모, 아니 데모란 것 자체가 정말로 어려웠고, 소수의 학생이나 시민단체의 리더들이 중심이 되어서 하는, 그러다 보니 대중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행위였습니다.
그때는 관제데모가 아니라 주로 운동장, 체육관 이런데서 새마을이니 구국 뭐시기니, 자유 뭐시기니 관제 냄새 훌훌 내는 단체들이 동네 아줌마, 아저씨, 학생 다 동원해 궐기대회라는 이름의 집회를 가졌습니다. 기억나는 주제로는 간첩사건 터지면 반공 궐기대회(김기춘 작품이 많았겠죠), 별일 없어도 이런저런 사안을 내걸며 궐기대회 참 많이 했습니다. 대회가 마치면 길거리로 나와 데모처럼 변하질 않았을 뿐, 본질은 오늘날 저 관제데모와 같아요. 그때는 지자체장이 임명제였고, 구청장급들이 동네 통반장 시켜서 주민들 동원시키기도 했어요. 적십자 단체도 동원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동원된 사람들은 밥값 정도나 받고, 통반장은 5천-1만원 정도 챙기는 거 봤어요.
민주주의의 기본인 집회, 결사, 출판, 언론의 자유는 법조문에만 있을 뿐 실제로는 개무시했던 그 시절의 집회를 오늘날과 같은 선에 두고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아, 그리고 궐기대회는 언론에 크게 크게 보도됩니다. 학생들의 데모는 대학 다니는 언니오빠들이 조심스럽게 말할 때 들었고요. 제가 대학 다닐 때도 학생들의 데모는 폭력의 상징으로 극대화해서 보여줄 필요가 있을 때만 방송에 나왔습니다. 학생들 폭력데모해서 국론을 분열하지 말라는 궐기대회도 있었을 걸요? ^^
김대중 노무현 두정부에서는 관제데모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