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일씨글 인용>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다. 누구에 대한 책임인가? 지지자에 대한 책임이다. 지지자의 목숨과 삶을 보호하고 그들의 신념이 이 땅에서 살아남게 하는 것이
정당, 파티의 근본 목적이다. 근대적 파당은 종교로 부터 시작되었다. 루터파, 칼뱅파, 청교도, 예수회. 그들의 종교적 입장은 곧 목숨을 걸어야했던
것이고 독일인구의 절반을 죽인 30년 전쟁후에야 유럽은 종교의 자유를 선언했다. 자신의 입장과 상대의 입장을 등가적으로 보고 포용하려는 대타협은
그 정도 희생을 치룬 후에야 가능했다. 그 다음은 왕정이냐 공화정의 싸움. 이 또한 죽음을 담보로 해야 하는 싸움. 죽고 죽이는 끝도 없는 혁명과 반혁
명. 여러번의 부침과 국제전쟁끝에 왕정은 패퇴하고 공화정이 세상의 주류가 되었다. 왕정이냐 공화정이냐의 싸움은 등가적으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공
화정의 우위. 역사는 왕정과 공화정 중 공화정을 선택하고 왕정을 패대기 쳤다.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린 왕정. 현재와 미래가 된 공화정. 종교 투쟁과는
다른 역사적 결론. 왕당파와 공화파의 투쟁은 공화파의 승리로 끝났다. 그 다음이 바로 계급 투쟁. 자본과 노동. 노동이 자본을 누르고 승리하여 공산주
의를 세우리라던 19세기의 예언은 20 세기에 틀린 것이 되고 말았다. 자본과 노동은 수정자본주의와 정당 정치 안에서 녹아들어 평화적 권력 교체의 역
사를 인류사에 등장시키며 공존을 선택했다. 그리고 등장한 복지국가. 두차례의 괴멸적인 세계대전 끝에 인류는 자본과 노동 두 정파의 등가적 가치를 인
정하고 공존을 선택했다. 자본과 노동 두 정파의 공존의 배경엔 전체주의라는 극우와 공산주의라는 극좌의 배제란 시대정신이 자리잡고 있다. 중도 좌파
와 중도 우파가 수정자본주의체계를 유지하고 극단의 정치세력을 배척하는 과정에서 발달한 개념이 바로 대연정. 대연정은 모든 걸 끌어안는 것이 아니
라 극단을 배제하는 정신을 담고 있으며 복지국가를 유지하려는 일반적 합의를 전제로 한다. 우리나라의 대연정이 뜬금없는 건 사회를 유지하는 일반원
리로서의 복지국가적 휴머니티가 정치권 전반을 지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에서의 대연정 논의의 얼토당토함을 논하자. 우선 친박과 친문이란 극단을 배제한다는 설정 자체가 오류다.
1. 친박이란 국가주의 사상에 범죄집단이 개입한 집단이다. 역사적으로 공존이 아니 지워야 할 대상이다. 왕당파와 같은 구시대로 사라져야 할 집단이다. 호흡기를 대 줄 이유가 없다.
2. 친문 세력은 그 자체로 중도세력으로서 대한민국의 평균적 시민의식을 반영할 뿐 그 어떤 극단의 정치세력이 아니다. 국가주의와 자본이 결합한 전체
주의 체제 한국의 민낯이 들어난 현실에서 그에 맞서 무장투쟁이라도 했단 말인가? 문재인의 정치세력이 체제 부정세력이라도 되는가?
3. 친박을 한 극단에 두고 친문을 또 하나의 극단에 두고 자신들이 중도인냥 위장하는 세력들이 어떤 자들인가? 지난 한국사회의 튀틀린 정치구도를 반영
한 지역정치세력들 아닌가? 한국에서 지역정치란 무엇인가? 과거의 유물로 되어가고 있고 우리가 그토록 극복하고 싶었던 과거의 유산이 아닌가? 왜 과거의 세력에 인공호흡기를 대줘야 하는가?
빅텐트를 치자는 세력은 구 시대가 낳은 탐욕의 정치인들이다. 스스로를 중도인냥 위장하는 꼬라지를 우리는 이미 다 파악하고 있다. 그런 그들을 우리가 왜 용납해야 하는가? 그들이 문재인을 극단으로 몰고 배제하려는 걸 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 앞에 대연정이란 먹잇감을 던진 안희정 당신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가?
이런 기회주의적 행태들, 그 어떤 정치적 입장도 정립이 안되어 있는 한국정치의 후진적 상황을 이용해서 한 정당의 경선을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역행시
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이용하려는 작자들과 정당주의의 대의와 역사를 안다는 안희정은 어떤 면에서 통하는가? 바로 기회주의다. 정치적 승리라는 달
콤한 유혹이 주는 기회주의란 면에서 서로 통하고 있다. 안희정은 대연정이란 말로 저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저들의 준동에 근거를 제공해선 안된다. 그
것은 역사에 대한 반역이요 이 사회 기층민중에 대한 반역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망에 대한 배신이며 노무현이 꿈꿔온 사람사는 세상의 초입에서 그
대문을 봉쇄하는 역적행위다.
운동권은 역사를 알고 정치 공부를 한 자들이다. 대연정이란 말도 알고 정파란 말도 아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 운동권은 왜 항시 언어의 본류를 교묘히 비
틀어 기회주의적으로 사용하는가? 안희정도 예외가 아니다. 난 안희정이 대연정의 역사적 탄생의 의미를 알고 정당정치의 발달사를 아는 혁명의 시대의
아들이라면 더 이상 기회주의적으로 대연정과 정당정치란 용어를 사용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안희정은 자신의 원칙과 소신이 기회주의적이란 자각을
어서 빨리하고 이 시대의 흐름은 수구세력을 괴멸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이 싸움은 왕당파와 공화파의 싸움이지 자본과 노동의 싸움이 아
니다. 저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할 정치세력이지 의회의 의석수로 계산해서 살려둘 정치세력이 아니다. 3년? 정치가 멈춰도 좋다. 3년 후에 촛
불이 국민이 치워버릴 세력이다. 역사의 흐름앞에 3년은 찰나다. 이 커다란 역사의 변곡점에서 3년의 협치를 위해 저들과 연정을 획책하는 건 그건 역
사의 반역이다. 우리세대의 사람들, 촛불은 그러자고 길거리에 나온게 아니다.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이고 싶지 역사의 수치이고 싶지 않다. 안희정, 기
회주의적 정치언어로 천재일우의 기회, 이 땅의 민중에게 1000년에 한번 오는 기회에 흙을 뿌리지 말라.
내가 사랑하고 믿는 친노의 한축인 안희정이 내가 혐오하고 경계하는 386 운동권 양아치 중 한명으로 격하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의 당신의 정치 행보는 기회주의적 모험주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