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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및 결심동기)명절 차례를 없앴습니다.

결심녀 조회수 : 3,505
작성일 : 2017-02-02 17:55:50

외며느리로 22년동안 제사, 명절을 지내왔습니다. 시동생이 있지만 어쩌다 보니 아직 결혼을 못했고, 어머님은 둘째 태어나기전에 돌아가셨지요. 처음 혼자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는 다음날 쓰러지듯이 하루종일 누워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살림이 손에 익고 시간이 지나니 명절 그까짓것 별 것 아닌 게 되더군요. 제사 음식이야 딱 정해져 있으니 한번 익히면 어려울것도 없었지요. 결혼 전 친정에서도 제사를 모셨기에 명절 차례쯤이야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없어지겠만, 내 손으로 명절 차례를 없애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지금껏 명절 차례를 지내왔지요.

지난 어머님 제사에 형님(손위 시누이)께서 어머님 제사를 절에 모시자고 제안을 했어요. 음식 준비 번거롭게 하고 그러지 말고, 절에 모시고, 기일에 맞춰서 절에 가서 인사를 드리자고 했지요. 형님은 집안에서 둘째지만, 모시는 제사가 있는데 절에 모시고 올해 부터는 명절 차례도 준비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시동생은 그건 아닌것 같다며 반대를 했고, 저도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절에서 모시나, 집에서 모시나 제사를 지내는 것은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음식 준비를 하는 번거로움은 없겠지만, 평소 절도 찾지 않는데, 제사라는 짐을 덜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게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차례를 지내고, 아침 식사를 마칠 때 쯤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버님께 명절 차례를 이번 설까지만 지내겠다고, 다음 부터는 음식을 간단하게 해서 성묘할 때 인사로 대신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은 오랫동안 제사를 열심히 모셨지만, 돌아보면 다 필요없는 일이었다고 하시면서, 그래도 제사를 안지내려면 명분이 필요하다면서 교회를 다니라고 하시네요. 아버님은 제사가 필요없다고 하시지만, 기독교를 믿지 않으려면 제사를 그대로 지내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제사는 그대로 지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시동생에게 제 생각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시동생은 내 생각은 다르지만, 형수님이 그리 하신다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동안 혼자 제사 준비하고 그런것에 대해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고 합니다. 아마 시동생이 결혼을 했으면, 본인이 가져가서 지내겠다고 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주관하는 제가 결정을 하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것 같습니다. 여기 글 올릴때만 해도 많이 떨렸는데, 격려에 힘 입어서 조용히 말씀드렸고, 별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네, 저 이제 명절 제사 안지내고 놀게 되었습니다.


제수 음식 때문에 명절 차례를 안지내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다음 추석때부터 명절 차례를 안지내도 된다고 생각하니 왜 이렇게 좋죠? 실실 웃음이 납니다. 항상 명절 며칠 전부터 식재료 준비하고, 전전날은 식재료 정리하고, 다음날은 하루종일 음식 준비를 했습니다. 이제부터 그런 과정이 없다고 생각하니, 또는 여행을 가도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네요.

왜 갑자기 이런 결정을 하고, 가족들에게 통보를 했을까요?

먼저는 제사에 대해 부정적인 시대의 흐름도 한 몫을 한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나는 제사를 지내지만, 물려주지는 않겠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죠. 왜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 근원적인 질문도 많이 하고 있고요. 남의 조상의 제사에 피 한방울 안 섞인 여자들이 준비하는 것도, 그걸 준비하는 동안 스트레스도 대부분 여자들이 받는 구조적인 불만도 있었어요.

  

저는 딸이 둘이에요. 그러니 예전 기준으로 하면, 저희집은 대가 끊긴거죠. 다음 대에 제사를 지내야 할 아들이 없으니 말이죠. 그렇다면 죽을 때 까지 명절 차례, 제사를 지낼 것인가? 그래서 언젠가 문득 그렇게 결심을 했어요. 60이 되면,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겠다. 30년 정도 했으면 할 만큼 한거다라고. 그러다 이번 설이 가까와 오면서 굳이 60까지 미룰 필요가 뭐 있을까? 당장 없애도 되지 않을까 하고,,,실천에 옮겼지요.

원래 명절은 산사람을 위한 날이었지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추석의 유래는 삼국시대에 여자들이 한달동안 길쌈을 하고 마지막에 진 쪽에서 거하게 한턱 내고 즐겁게 노는 날이었다고 해요. 여기 어디에서 제상에게 제사 지내는 날이라고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른 명절도 마찬가지이고요. 다만, 우리 조상들은 조상 제사를 모시는 풍습이 있으니 이런 명절날도 돌아가신 조상님들께 문안 인사를 먼저 드리고 명절을 즐겼지요. 그런데 이게 현대에 이르러서는 설명절, 추석명절이 제사지내는 날이 되어버렸어요. 기제사를 지내는데 명절까지 제사를 지내야 할까요?

  

절 연휴가 3일이지만, 며칠전부터 장보기를 시작하고, 하루전날은 종일 음식 준비로 바쁘고 다음날은 차례지내고, 산더미같은 설겆이를 그대로 쌓아둔채로 성묘를 다녀와서 점심을 먹고 또 음식준비를 한두가지 해서 저녁에는 시댁 가족 모임을 가고, 다음날 친정에 점심을 먹고 돌아오면 3일 연휴가 끝나있었죠.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명절을 싫어하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제게는 설 명절이 “명절”이 아니더군요. 지자체에서 엄청나게 많은 축제를 하지만, 축제가 없는 나라. 극 성수기 여름 휴가 3~4일이면 매일 출근해야 하는 회사원으로서 저는 명절이 필요했어요. 죽기전에, 아니 더 늦기전에 명절을 누려야 겠다 싶어서, 올 해 큰 결심을 하게 되었지요.

  

이제 이번 추석부터는 전날 저녁에 친정 가족 모임을 해서 즐겁게 놀다 올겁니다. 다음날에는 아침먹고 성묘를 다녀오고, 쉬었다가 저녁에는 시가 가족 모임에 가면 되겠지요. 당장 차례를 안지낸다고 크게 명절 풍경이 달라질 것은 없지만, 왠지 생각만 해도 즐겁습니다. 제사라는 부담이 없다는 그 자체가 생각만해도 행복하네요. 그리고 이제 복받은 사람만 간다는 명절 여행도 언젠가 가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IP : 218.149.xxx.18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양가 가족모임은
    '17.2.2 6:01 PM (165.246.xxx.60) - 삭제된댓글

    누가 차리고 치우나요?

  • 2. 결심녀
    '17.2.2 6:07 PM (218.149.xxx.18)

    이번 설에 가족모임은 손위시누이 집에서 했지요. 작은 시누이가 잡채와 나물을 가져왔고, 제가 굴무침과 동파육(상에 올린 돼지고기 처리차원)을 준비해가고, 큰시누이가 밀푀유 나베를 했더군요.

    친정에서는 친정엄마가 음식 준비는 다 하셨고, 올케와 남동생이랑 제가 같이 차리고 치우죠. 올케 생각해서 설겆이는 제가 항상 합니다.

  • 3. ...
    '17.2.2 6:08 PM (61.79.xxx.96)

    그동안 고생많으셨네요.
    저라면 지금 추석 해외여행 준비하겠어요^^
    완전 긴 연휴인데...
    하루하루가 신날것 같아요

  • 4. 잘 하셨어요.
    '17.2.2 6:12 PM (210.94.xxx.89)

    제 시댁은 제사는 성당의 연미사로 했고 (제가 성당 안 다녀서 무슨 의미인지 잘 모릅니다. 근데 제삿날이 돌아오면 성당에 미사에 참석하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 명절 차례는 아직 지냅니다.

    그러나 저는 막내 며느리고 지금 일흔 중반의 시어머니께서 하고 계신데 어머니가 못하신다고 해도 제가 할 생각은 없고 그러면 맏며느리인 손윗동서 중심으로 하시게 될 텐데 하셔도 그만 안 하셔도 그만입니다. 차례때도 남편의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 올려 놓고 지내는데 저는 어차피 얼굴도 모르는 분들, 아무런 느낌 없습니다.

    손윗동서가 음식 준비는 하는데 여자는 절도 못 하는 이런 제사 뭐하러 지낼까 하시길래,
    뭐 성씨가 다르니 그렇지요. 그리고 종교적 이유도 있고 굳이 절하고 싶지도 않네요 했고
    형님이 하시면 음식 안 하시고 미사 참석하실꺼라고 해서 형님 원하시는대로 하시라 했습니다.

    아무리 음식을 줄여도 여전히 먹지도 않는 음식 하느라 동동 거리고..그 음식 안 가져 간다고 섭섭해 하시고.. 남자들은 심심하고 지루해서 죽을려고 하고 여자들은 고생에 고생을 하고 그런 명절 뭐하러 필요한가 싶은데.. 정말 바쁘고 일할때는 무조건 참석해야 하고..어쩌면 나이가 더 들어야 저 명절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싶네요.

    저도 명절.. 남자 중심의 문화..진저리나게 싫습니다.

  • 5. ..
    '17.2.2 6:14 PM (151.227.xxx.253) - 삭제된댓글

    숙모들이 모두 교회 핑계를 대서 제사 차례 지내는 거 혼자 지내셨던 저희 친정엄마,
    제가 엄마도 차라리 교회를 다니시라고 권했더니
    일주일에 한번보다 일년에 한번씩이 낫다고 하셨던 게 생각나네요.

  • 6. 위에
    '17.2.2 6:22 PM (203.226.xxx.1)

    잘 하셨어요 님, 저랑 비슷~
    제사도 아무 느낌없고 절하면 따라하고
    일 하면 따라하고~ㅎ
    나중에 형님 어떻게 하셔도 아무 상관없어요.
    집집마다 며느리들이 당췌..이게 무슨..
    제사없애기 계몽은 왜 안할까요?

  • 7. ...
    '17.2.2 7:19 PM (59.15.xxx.86)

    잘 하셨어요!!!
    진정한 명절...밝을 명자 쓸수있는 날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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