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이스 130화 더러운 잠 작가와의 인터뷰 보고 시청소감을 남겨봅니다.
한겨레TV 시청자게시판에 남긴 글인데, 82cook님들 의견이 궁금해서 함께 올려봅니다.
1. 왜 마네의 올랭피아가 아니라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인가
'더러운 잠'은 마네의 올랭피아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패러디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전체의 구성은 마네의 올랭피아를 차용하고 있지만, 박근혜의 얼굴이 달린 누드화는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의 모습을 가져온 것이다. 파파이스에서 설명되었다시피, 마네의 올랭피아는 기존의 화풍을 거스르는 파격적인 작품이다. 기존의 누드화 작품들이 여성의 신체를 관찰하는 남성의 시선으로 제작되었던 반면, 마네의 올랭피아는 나체의 여인이 관객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관객에게 불편함을 준다.
그런데 '더러운 잠'은 왜 마네의 올랭피아의 신체가 아니라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의 신체를 가져왔을까. 이구영 작가는 마네의 올랭피아가 창녀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창녀에 비유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인격모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여, 고민 끝에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의 신체를 활용하였다고 설명한다. 그의 그러한 고민은 사실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 선택이 오히려 더 여성인 대통령을 엿먹인 거라고 생각한다.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의 신체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성의 신체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의 여성의 신체는 마네의 올랭피아의 신체에 더 가깝지만, 남성들이 누드화라고 할 때 떠올리는 여성의 신체는 아마 잠자는 비너스의 신체일 것이다. 쉽게 말하면, 마네의 올랭피아보다는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볼 때 우리는 더 꼴린다.
2. 예술은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운가
일부에서는 우리는 예술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하며, '더러운 잠'은 위대한 예술작품을 패러디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이러한 주장은 '모든 예술은 여성혐오가 아니다.' 또는 '위대한 예술작품이라면 여성혐오가 아니다.'와 같은 주장이 타당할 때 성립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과연 예술은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운가. 나는 예술을 몹시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지만, 예술이 여성혐오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학생들은 '왜 명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벗고 있어요?' 와 같은 질문을 곧잘 하곤 하였다. 대개 미술선생님들은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답변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남아 있는 그림들 중에 특히 여성의 누드화가 많은 것은, 오늘날과 같이 포르노 잡지나 동영상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 귀족들이 이와 같이 이상화된 신체를 가진 여성의 누드화를 소유하기를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3. 여성이기 이전에 대통령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더러운 잠'의 작가가 신중하지 못하기는 했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이기 이전에 대통령이기 때문에 이 정도 풍자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만약에 대통령이 장애인이거나 호남출신이라는 점을 부각하여 풍자했다면, 그 경우에도 일단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 정도 풍자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나는 작가가 대개의 우리 사회의 남성들이 그러하듯이 남성이라는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지위를 남용하였다고 생각한다.
4. 우리나라 진보는 젠더 문제가 쟁점이 되면 주춤하게 된다?
파파이스에서 김어준 총수는 우리나라 진보는 젠더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면 주춤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확실히 우리나라 진보가 새누리당에 비해서는 젠더 문제에 조금 더 찔려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마 그 이유는 우리나라 정치는 진보와 보수를 불문하고 남성 위주이고, 진보주의 남성들조차 젠도 문제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후진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젠더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성이 단순히 약자라고만 생각하지도 않는다. 계층이란 자본가와 노동자,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과 같이 여러 기준에 의해 구분되고, 대부분의 개인들을 그 구분에 따라 기득권과 약자의 지위를 중첩적으로 보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기준의 취약계층을 우선시할 것이냐는 복잡한 문제이다.
다만, 모든 개인은 자신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보유한 영역에 대해서는, 자신의 우월한 지위와 이에 따르는 책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자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표현이 필요하고, 남성의 누드화와 여성의 누드화가 우리 사회에서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듯이, 형식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 평등의 관점이 필요하다.
취약계층에 대한 적극적 배려가 진보가 주장하는 가치가 아니던가. 여성주의 시각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오히려 여성혐오집단에 가까운 모당 일각에서 '더러운 잠' 논란을 키우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이지만, 진보는 이번 논란의 의미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도망치지 말라. 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상당수가 여성으로서의 인권감수성이 예민한 여성이다. 이번 논란이 진보정당이 여성주의 시각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