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수거함이 개인 사유물이라니..
친정부모님이 사주신 남편 정장 바지인데 이렇게 잃어버릴 순 없었다. 부랴부랴 경비실에 내려가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말해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 당연히 각 동에 설치되어 있는 의류수거함이니 경비아저씨가 열쇠를 가지고 관리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빗나가는 순간이다.
"아저씨, 그럼 어떻게 찾아야 해요? 친정부모님이 주신 선물이란 말이예요"
울상이 되어버린 내 얼굴을 보더니 매주 월요일이나 수요일에 수거하는 업체가 와서 가져가니 그 때 와서 말해보라고 한다.
"업체요? 불우이웃 돕기 단체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개인사업자요. 헌옷 수거해다 파는 사람이 다음주 월요일에 와야 이 열쇠를 열 수 있어요. 그 전에는 아무도 손 못대요."
"개인사업자가 헌옷을 여태 수거해 갔다고요?"
큰 망치로 한대 얻어 맞은 사람처럼 머리가 띵 울리던 순간이다. 지금껏 내가 넣은 옷들이 누군가의 영리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니 불쾌함을 넘어 배신감까지 들었다. 헌옷을 버린다는 생각보다는 내게 필요없는 옷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쓰여진다는 생각으로 흐뭇해했던 감정마저 씁쓸함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몇번 입지도 못하고 작아진 옷들은 깨끗이 빨아 예쁘게 접어서 종이가방에까지 담아 의류수거함에 넣었는데 그 수고가 황당해 지기까지 했다. 누구를 위해 그리하였는가.
비록 사용한 옷이지만 받는 사람이 불쾌하지 않도록 때가 지지 않은 옷이나 구멍난 옷은 과감히 버리고 내가 입어도 괜찮을 옷인데 작아지거나 많아서 필요없을 때에만 의류수거함에 넣어왔다. 그 옷이 절실히 필요한 분들의 웃음을 떠올리며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의류수거함의 옷들은 개인사업자의 손에 들어가 중고 옷으로 팔려간다니.
다행히 관리사무소에 개인 수거업자의 전화번호가 있어 근처를 지나던 업자가 잠시 들려 의류수거함의 자물쇠를 열고 잃어버렸던 바지와 와이셔츠는 찾았다.
"진짜 잘못 넣은 거 맞아요? 이렇게 잘못 넣었다고 전화하고선 뒤적뒤적 거리며 다른 것까지 가져가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요. 여기 통에 넣은 후엔 다 우리 거예요."
"전 이게 다 불우이웃 돕기 차원에서 하는 기부 목적인 줄 알고 여태 좋고 예쁘고 깨끗하지만 필요없는 것들을 넣어 왔는데 완전 충격이네요"
"........."
아이들의 작아진 신발을 세탁하여 짝끼리 고무줄로 묶어 놓았다. 의류수거함에는 헌옷 뿐 아니라 신발, 가방, 담요, 커텐, 가벼운 이불 등도 수거한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이제는 의류수거함에 어떠한 물품도 넣고 싶지 않다. 조금 멀더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작은 도움이 정말 필요한 분들에게 갈 수 있도록 직접 전달할 것이다. 세탁소에 가져갈 옷들은 다시 아이 돌잔치용 파티션 위에 걸어두었다. 그래야 다시 남편이 버리지 않을 것이다.
친구에게 기부할 곳을 물었더니 '아름다운 가게' '유엔난민기구' 등을 얘기해 준다. 이제는 내 옷들이 꼭 필요한 분들의 품에 안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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