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이 된 큰아이와 함께 눈이 내리는날, 버스를 타고
교복을 맞추고 돌아온 그날 오후엔
이제 다섯살이 된 늦둥이와 함께 페파를 즐거워라는 만화를 같이 보았죠.
눈송이는 나비처럼 마구 허공으로 솟구쳐오르고 군청색으로 짙어져가는
저녁시간 우리들은 따듯한 이불속에서 분홍색 돼지 가족들의 일상을 봤어요.
초록색 언덕위에 세워진 자그마한 집.
그리고 비누방울 놀이를 하는 풍경이라던가,
열기구를 타고 연두색 나무위를 둥실둥실 날아가는 장면,
수레위에 황토색 감자를 실고 집으로 돌아오는 페파네 할아버지.
보는동안
마음이 참 따듯해지네요.
처음엔 다섯살짜리 아기가 단조로운듯한 만화를 틀어달라고 할땐
지레 재미없는것 같아 채널을 돌렸는데
같이 보는동안,
"얘는 어떻게 페파가 재미있었던걸 알고있었지?"
저절로 궁금해지더라구요~
제가 늘 뚱뚱하고 배나온줄 알고 있는 큰아이에게
젊은날의 사진들을 보여줬어요.
환한 봄날의 햇빛속에 흰 린넨셔츠를 입고 눈부시게 웃고 있는 이십대의 제가
거기 사진속에 있었네요.
지나간 그 풋풋한 날들이, 그리고 잡티하나 없는 분홍빛을 머금은 흰 피부의 제가
그처럼 아무 걱정없이 머물고 있는데 지나고나서야 그게 바로 청춘인것을
시리게 깨닫네요.
아기엄마가 되고나선 바람결처럼 투명한 희게 빛나는 린넨셔츠를 못입어본것같아요.
매일저녁마다 푸른 나물을 씻고, 식구들을 위해 찌개를 끓이며 행여라도 넘칠까,
조심스레 가스렌지의 불꽃을 바라보며 눈을 맞추고 물기젖은 손끝을 매번 수건으로 닦아내면서도
어느틈엔지 눈물마저도 말라가는듯한 나의 메마른 감성,
오늘 아이랑 함께 지나간 제 젊은날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다가 아, 이렇게 예뻤던 시절도 있었구나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예뻤을때의 나는
가진게 없었고
가난했고,
순진했었네요.
다신 오지 않겠죠~
그래도 전 43세의 나이로
이젠 다섯살 아이랑 페파를 보며
이제서야 이렇게 즐거운 만화를 알게된것을 많이 아쉬워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