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상황실이 ‘출근하지 않은 대통령’에게 올릴 문서 작업에 골몰하는 동안, 결정적인 보고들은 별것 아닌 취급을 받았다. 청와대 상황실이 계속 ‘ENG 영상’을 찾으며 “VIP 보고 때문에 그런데 영상으로 받으신 거 핸드폰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까”를 확인하던 오전 9시42분 무렵, 해경은 이미 “뛰어내린 사람들이 없다”고 보고하며 배가 “좌현 40도 기울어졌다”고 알린다.
이 보고를 듣고 청와대는 “변동 사항 있으면 바로 보고해주십시오”라고만 말한다. 그리고 대통령 보고가 있기 6분 전인 오전 9시54분, 해경은 재차 “배는 60도 정도 기울었다”고 보고한다. 배가 이미 절반 이상 넘어갔다는 보고를 받고도 청와대 상황실은 “승객들을 어디로 뺄 것인지”만 확인한다. 역시, 서면보고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퇴근해버린 대통령’
세월호 이준석 선장이 배에서 내린 시점은 4월16일 오전 9시46분이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많은 사람이 그 배에 선장이 없었음이 치명적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결정권자가 없으면 조직은 선택과 판단을 할 수 없다. 법원은 그 죄를 무겁게 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날 세월호에 선장이 없었던 것처럼, 청와대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없었다. 참사 당일 수석들의 회의가 새벽까지 이어지는 동안 대통령은 누군가의 전화기 속에서만 등장했다. 비서들은 대통령 없이 대통령의 동선과 의전 그리고 경호를 논했다.
박 대통령은 4월17일 진도체육관 방문 이후 또다시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다. 청와대가 ‘비상근무 체제’를 가동하고, 난립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부처별 ‘구조본부’가 세워진 4월18일,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아직도 확인되지 않는다. 청와대는 자료를 내놓지 않고, 당시 언론 보도를 종합해봐도 ‘실종자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한 줄 외엔 공식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그나마 ‘잃어버린 7시간’은 집요한 추적 끝에 시간대별 보고 및 지시 내역이라도 확인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뒤 48시간 동안 대통령이 어떻게 움직였고 무얼 했는지는 한 장의 자료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그 48시간 동안 정부는 탑승자, 구조자, 사망자 정보를 계속 정정하는 극단적 무능함을 질리도록 반복한다.
청와대 상황실 업무는 ‘언론 보도 방어’에 집중된다. 4월18일 하루 동안 청와대 상황실은 해경에 9차례에 걸쳐 언론사 보도를 확인해줄 것을 요구한다. 언론 오보를 11시간 가까이 확인하지 못해 해경과 현장 지휘소를 닦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