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의 발언과 역사적 책임 ]
정치인은 어차피 대중과 함께 가는 게 맞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인은 역사를 바라보고, 역사와 대화하는 존재다.
광우병 사태 때 길거리를 가득 메웠던 인파들.
그때 길거리에서 마주쳤던 얼굴들 가운데는 누구라고 딱 짚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어떤 자리에선가 분명히 만났던 그런 얼굴들이 있었다. 아마 80년대 그 어느 현장에선가 함께했던, 그런 경험을 공유했던 인물들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나마 70년대부터 알아왔던 익숙한 얼굴을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얘기했다.
"지금 이 사태는 문제가 있다. 광우병에 대한 의혹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좀 노골적으로 말해서 10여년 뒤에 우리나라에서 광우병 환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진보 진영 전체가 사기꾼 되는 거다. 신중해야 한다."
그때 그 친구는 그랬다.
"지금 대중이 투쟁을 원하고 떨쳐 일어나고 있는데, 과학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나는 이후 진보 진영이 내세우는 어젠다에 대해서는 좀더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 그때 광우병 사태를 주도했던 사람들 가운데 "내가 틀렸다"고 인정한 사례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광우병 당시 나왔던 많은 발언에 대해서 그 뒤 책임을 지는 사람도, 책임을 묻는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의 사태를 바라보고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일을 다 허공에 날려보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오만이자 착각이다.
지금 최순실 박근혜 사태에 대해서 정치인들이 하는 발언은 광우병 당시와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본다. 광우병 당시의 발언은 복잡한 과학적 지식 기반과 판단을 요구하는 사안이어서 과학자 아닌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기가 애매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다르다. 정치와 법률 그리고 전략을 다루는 사람들의 책임 소재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본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발언한 정치인들과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 아마 상당히 오랫동안 그 책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런 책임 논란조차 어디론가 사라지고 실종된다면 그건 이 나라가 말 그대로 무너지고 있다는, 아니 어쩌면 진작 무너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때야말로 지금의 모든 발언과 논란이 역사의 무대로 옮겨가 역사 속에서 검증받게 된다.
그래서 정치인은 대중과 함께 가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역사를 바라보고, 역사와 대화하는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